🌗 이 글은 ‘그가 그분을 만난 뒤로’ 시리즈의 아티클로 "내 이름을 묻지 마세요"에서 이어집니다. 전편을 읽고 오시면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전편 읽기
|
🔎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부활하신 주님을 먼저 알아보았고, 십자가 아래에서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 그는 과연 처음부터 예수님을 따랐던 익명의 제자였을까요?
📖 주님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머물렀던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 봅시다. |
예수님의 품에 안긴 제자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호칭은 최후의 만찬 때인 요한 복음 13장에 처음으로 드러난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요한 13,23)
첫 등장부터 그가 얼마나 예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한편 이 모습은 놀랍게도 요한 복음 서문에 나타난,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연상케 한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의 품에 안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요한 1,18)
우리말 성경에서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으로 번역된 이 부분의 그리스어 원문은 본래 ‘아버지의 품에 안기신’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품에 안기신 외아드님이신 예수님께 당신을 뵙게 하시고 당신에 대해 알려 주신다. 신비롭게도 예수님께서도 당신 품에 안기신 이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당신에 관한 내밀한 사실을 알려 주신다.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요한 13,25-26)
그래서였을까. 그는 이후에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알아뵙는 탁월함을 보인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요한 21,7)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뵙고 그분께 내밀한 계시를 받는 것은 그분께 더 가까이 가고 그분을 더욱 사랑해야만 가능한 일임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그분의 새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증명된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요한 14,21)
여기에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을 알아뵈는 데 성공한 마리아 막달레나가 그분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또 그녀가 이웃들을 내심 얼마나 사랑했는지도 새삼 느끼게 된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요한 20,18)
익명의 첫 제자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을까?
우리는 서두에서, 예수님을 처음 따랐던 제자들 중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제자를 잠시 언급하였다. 이 제자는 과연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였을까?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요한 1,37-40)
이렇게 시작된 복음서의 말미에서,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자신이 이 일들을 증언한 사람임을 다음과 같이 명확히 밝힌다.
이 제자가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1)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요한 21,24)
예수님과의 첫 만남을 이토록 강렬하게 기억하고, 그 이후의 일까지 상세히 기록할 수 있을 정도라면, 그는 처음부터 예수님과 함께했던 제자여야 한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고별 담화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니 나를 증언할 것이다. (요한 15,27)
그래서 이 익명의 제자는 후에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로 불린 그 제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이 제자는 그분과 함께 오랜 기간 지내면서 차츰차츰 그분의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을까. 예수님의 품에 안긴 그 순간부터, 그는 예수님께 사랑받는 제자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1) 여기서 ‘우리’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요한 복음은 첫 목격 제자들이 세상을 떠난 뒤인 90년경에 작성되었으리라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이에 근거하면 여기에서 나오는 ‘우리’는 사랑받는 제자의 뜻을 이어받은 제자들이 그 전승을 한마음으로 증언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5-27).
그는 열두 제자 중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을 곁에서 함께한 유일한 제자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를 이 제자의 어머니로, 이 제자를 어머니의 아들로 주신다. 요한 복음 서문을 보면 새 가족을 만드는 권한은 오직 하느님께 속한 것임이 드러나 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요한 1,12)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당신을 온전히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당신의 이름을 믿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또한 이렇게 어머니와 제자를 새로이 연결해 주심은 어머니의 남은 지상적 생애를 배려하시는 인간적 차원과 더불어, 당신 안에서 새로이 형성된 영적 가족을 이루어 주시는 신적 차원이 함께 담겨 있다.
새로이 형성된 이 공동체는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다. 주님께서 사랑하신 이 제자는 바로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으로 드러나며,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그분을 알아뵐 힘을 얻는 것이다. 그렇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 그것이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복음을 읽는 우리에게 간절히 바란 바이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20,31)
*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를 찾아서' 에필로그로 이어집니다.
🔗함께 읽으면 더 좋은 아티클

![[새 사제 이야기]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webzine/_next/image?url=https%3A%2F%2Fwebzineapi.catholicbookplus.kr%2Fstorage%2Fimages%2Farticles%2Fdc10920cf6635f1b4c3836a22d89eba3.webp&w=1080&q=75&dpl=dpl_9rcNuzZbotcUfThW4A7DgAHDeba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