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베드로인가, 요한인가?

가톨릭 예술

우리는 베드로인가, 요한인가?

외젠 뷔르낭이 그린 부활 아침, 베드로와 요한의 이야기

2026. 04.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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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줄 요약

 

1. 외젠 뷔르낭의 작품은 예수님의 부활 아침, 빈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여 줍니다.

2. 이 작품은 두 인물의 서로 다른 감정을 통해 인간의 믿음과 의심을 생생히 드러냅니다.

3. 이 작품을 통해 우리도 부활의 자리를 향해 나아가야 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명동으로 출근해서 길을 걷다 보면 예외 없이 보이는 사람이 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띠를 두르고 이것을 외치는 이다. 가끔은 예수님 믿으세요. 믿지 않으면 지옥불로 떨어지게 됩니다.”하고 말씀해 주시는 분을 만나기도 한다. 그때마다 저분들은 진짜 모든 것을 바쳐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내 마음도 돌아보게 된다.

 

4, 주님 부활 대축일이 찾아왔다. 원고를 쓰려고 하는데 문득 외젠 뷔르낭의 이 그림이 떠올랐다. 이 그림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다루지만, 동시에 마음 깊은 곳 주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에 대해 성찰하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부활 아침 제자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가는 모습

(Les Disciples Pierre et Jean courant au sépulcre le matin de la Résurrection)

1889, 외젠 뷔르낭, 캔버스에 유채, 80×134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프랑스

 


 

스위스의 화가, 외젠 뷔르낭

 

이 그림의 작가는 외젠 뷔르낭(Eugene Burnand, 1850~1921)으로 스위스의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였다. 그는 주로 자연을 그린 사실주의 화가였다. 그의 작품 상당수는 동물들이 등장하는 농촌 풍경이었지만, 깊은 개신교 신앙심을 바탕으로 사실주의 색채를 더한 많은 종교 작품도 포함되었다.

 

오늘 작품은 요한복음(20, 1-10)의 말씀 중 3-4절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부활 아침에 두 제자 요한과 베드로가 빈 무덤으로 달려가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으며, 예술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매우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요한 20,3-4)

 

그림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소식을 들은 두 제자,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을 향해 뛰어가는 긴박한 순간을 담고 있다. 이 그림의 특징은 부활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무덤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화가는 달려가는 두 제자의 얼굴 표정과 그 속에 드러나는 감정에 집중한다.

 

화면 오른쪽에는 나이가 많은 베드로가, 왼쪽에는 젊은 요한이 배치되어 있다. 두 인물은 화면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역동적인 구도를 형성한다. 휘날리는 머리카락과 옷의 펄럭임, 그리고 인물들을 화면의 앞으로 배치하여 상반신만으로도 관람객에게 두 사람이 달리는 속도감과 현장의 긴박함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화가는 인물들의 상반신과 얼굴 표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근접 촬영과 같은 구도를 선택했다. 배경은 최대한 단순하게 표현하여 인물들의 내면 심리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그들이 뛰어가는 길은 뒤보다 앞을 축소하여 속도감을 주고 있고, 길과 뒷배경을 나누는 것도 얇은 초원뿐이다.

 


 

베드로와 요한, 두 제자의 감정을 그린 최고의 작품

 

이 작품이 걸작으로 꼽히는 이유는 두 제자의 서로 다른 감정 상태를 얼굴 표정과 손동작만으로 완벽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림 오른쪽에 있는 베드로의 주름진 얼굴과 굳게 다문 입, 동그랗게 뜬 눈, 그리고 미간의 주름은 그의 고뇌와 후회, 그리고 당혹감을 보여 준다. 예수를 부인했던 과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과 정말 부활하신 것일까?”라는 희망과 의구심이 뒤섞인 복합적인 표정이다.

 

반대로 어쩌면 정말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이면 어떡하지? 그동안의 내 헌신이 물거품이 되면 안 되는데…….” 하는 불안한 마음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는 손을 가슴에 얹어 터질 듯한 심장 박동과 긴장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가 입은 옷의 색도 그의 양면적 감정을 잘 드러낸다. 옅은 갈색은 노란색과 함께 배반, 배신 혹은 약한 마음(믿음)을 보여 주며, 짙은 남색의 겉옷은 그의 강한 마음과 믿음을 상징한다.

 

베드로보다 앞서 달려가는 요한(성경에는 분명하게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 요한으로 전해진다)은 두 손을 맞잡고 간절히 기도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의 눈에는 슬픔보다는 간절한 느낌과 함께 '믿음''희망'이 가득하다. 베드로가 현실적인 충격에 휩싸여 있다면, 요한은 스승의 부활을 간절히 바라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는 수도자처럼 새하얀 옷을 입고 있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정결함이나 순결한 믿음에 대한 표현이었다. 마르코 복음서에서 무덤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알렸던 젊은이의 의상과 같이 하얗고 긴 겉옷을 입은 이와 동일하게 묘사함으로써 요한의 믿음과 희망 그리고 열정을 드러내고 있다.

 


 

부활을 암시하는 밝은 빛

 

이 그림에서 빛은 매우 중요하다. 빛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노란색을 띠며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다. 그 의미는 새벽 시간이라는 것, 부활의 아침,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려준다. 이에 특히 요한의 얼굴과 하얀 옷이 더 강하게 빛을 받고 있다. 이는 믿음과 깨달음을 상징한다.

 

하얀 옷은 베드로의 짙은 옷과 달리 저 멀리서 비춰오는 생명의 빛을 가득히 받고 있다. 동이 틀 무렵 흐릿한 들판 저 멀리서 비쳐 오는 노란 새벽빛은 어둠에서 '부활'이라는 새로운 희망의 시작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장치이다.

 


 

깊은 감동을 주는 사진 같은 그림

 

뷔르낭의 특징은 극단적인 사실주의이다. 예를 들어 피부 질감 표현, 눈동자의 촉촉함, 숨차 보이는 얼굴, 주름 등 모든 것이 실제 인물을 촬영한 것처럼 정밀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종종 종교화이지만 동시에 사진 같은 그림이라고 평가받는다.

 

뷔르낭은 이 그림에서 초자연적인 기적(천사나 부활한 예수의 모습)을 직접 그리는 대신, 기적을 마주하러 가는 인간들의 정서적 반응에 집중했다. 이러한 사실주의적 접근 방식은 성경 속 인물들을 신격화된 존재가 아닌,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느끼게 하여 감상자에게 깊은 종교적 감동을 준다.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부활 시기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성화 중 하나이며, 인간의 믿음과 의심,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찰나를 가장 잘 포착한 작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나는 베드로인가? 아니면 요한인가?”

 

신앙에는 중간이 없다. 믿는가, 아니면 믿지 않는가만 있을 뿐이다. 요한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과 사랑으로 일관된 사람으로 살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신앙인의 상당수가 베드로와 같은 처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정말로 사랑하신 제자는 요한일 수도 있지만, 천상의 열쇠를 맡기고 교회의 수장으로 삼으신 분은 베드로인 것을‥‥. 수차례 의심하고 배반하며 불신하는 모습을 보였을지라도, 결국 우리가 뛰어가야 하는 곳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곳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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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교회문화유산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이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회 문화유산의 보전과 교회 예술의 진흥을 위해 힘쓰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교회 예술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주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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