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줄로 요약했어요
|
20여 년 전, 사제가 되어 처음으로 미사를 집전하며 떨리는 두 손으로 성체와 성혈을 영했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특히 부제 때부터 여러 번 신부님을 보좌하며 영했던 성혈은 그 어떤 때보다도 강렬했다. 내 입을 통해 나오는 성체 성혈 축성 기도문으로 제병이 성체가 되고, 포도주와 물이 성혈이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주님의 사랑과 희생이 얼마나 위대하고 거룩한데, 하찮은 내가 과연 그분의 몸과 피를 전할 자격이 있을까? 이 질문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시기 우연히 김수환 추기경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겨 이 질문을 드린 적이 있었다. 추기경님께서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도 아직까지 그 질문을 드립니다.” 하곤 밝게 웃으셨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당신의 사제직에 부름받았으니 조금이나마 더 그분을 닮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그것이 우리가 주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방법일 겁니다. 그러니 우리 같이 노력해 봅시다.”
그것이 풋내기 신부였던 내가 오랜 세월 주님의 사제로 살아오셨던 추기경님께 마지막으로 들었던 가르침이었다.
언제나, 그리고 매 미사 때마다 끊임없는 성찰과 노력으로 주님을 닮아가려 노력하는 것이 사제의 삶이자 우리의 삶이다. 그래서 성체 성혈의 의미를 되새기며 삶을 성찰하고 그 모범을 따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제단화를 한 점 소개하고자 한다.
북유럽 최고의 제단화
이 제단화는 6월 7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맞이하며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바로 벨기에의 성 바프 대성당에 걸려 있는 <겐트 제단화>다. 이 작품은 총 12개의 패널로 구성되어 있으며, 얀 반 에이크와 후베르트 반 에이크 형제가 그린 북유럽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제단화는 펼쳤을 때 가로가 520cm, 높이가 375cm에 달하는 커다란 작품이다.

제단화는 천상과 지상으로 나뉜다. 화면 상단의 중앙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홀을 쥐고 오른손을 들어 축복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하느님께서 정면으로 앉아 계신다. 교황의 삼중관을 쓰신 하느님의 발 앞에는 다른 왕관이 놓여 있다. 이는 그분께서 영적으로는 교황의 권위를 지니고 있으며, 세속적으로는 왕 중의 왕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좌우에는 왕관을 쓰고 책을 읽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있고, 책을 무릎에 놓고 하느님을 가리키는 세례자 요한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는 ‘데이시스(Deisis)’를 연상시키는 자세이다. 데이시스는 ‘간청’, ‘기원’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그리스교 미술의 주제다. 옥좌에 앉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을 세워 인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거나 간청하는 구도를 의미한다.
데이시스는 좌우로 확장되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노래하는 천사들과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천사들은 데이시스가 위치한 공간과는 다른 공간에 자리하고 있으며, 여기서도 현실 공간의 깊이에 대한 화가의 집요한 탐구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유화 물감을 능숙하게 사용해 짙게 흠뻑 스며든 색채는 미묘한 빛을 발산하며 상징적 의미로 가득하다.
아담과 하와, 인간 죄의 시작
화면 상단 제일 가장자리에는 원죄의 근원인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은 몸을 가리고 벽감 속에 서 있다. 또 그들 머리 위로는 카인과 아벨의 제사 장면과 카인이 아벨을 살해하는 장면이 부조처럼 묘사되어 있다.
아담과 하와는 반 에이크의 사실주의와 빛의 마술을 가장 잘 보여 준다. 특히 아담의 나신은 빛을 이용해 피부의 세밀한 부분까지도 잡아내는 사실적 묘사가 돋보인다. 원근법을 이용해 묘사한 공간 속 아담의 환상적인 모습과 팔과 다리에 드리워진 그림자에서 화가의 명암법이 빛을 발한다.
아담은 그늘진 벽감 속에서 힘차게 등장하고 있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기색이 역력히 드러난다. 앞으로 내딛는 아담의 오른쪽 다리와 관람자가 있는 공간을 향해 돌출한 발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어린양의 피가 흐르는 제대
제단화 하단 5개의 패널에는 성령을 중심으로 한 하늘을 배경으로 푸른 초원 위에서 어린양을 경배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비둘기 형상을 한 성령은 동산 전체와 멀리 보이는 천상 예루살렘에까지 자비의 빛을 비추고 있다.
그림의 중심에는 붉은 제대가 있고, 제대 위에 어린양이 서 있다. 어린양의 가슴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가 제대 위에 놓인 성작에 떨어지고 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아담의 원죄로부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희생 제물이 되어 성작에 그 피를 흘리고 있다. 제대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
제대 앞에서는 두 천사가 어린양의 희생 제사를 알리기 위해 향을 피우고 있다. 제대 뒤편에는 천사 네 명이 예수님의 수난을 상징하는 물건들을 들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묶여서 채찍질을 당한 기둥과 채찍, 십자가 죽음을 뜻하는 십자가와 가시관과 못,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창, 신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지니고 있다. 나머지 천사들은 제대 주변에서 합장을 하고 무릎을 꿇어 경배하고 있다.
천상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사람들
중심축을 따라 화면 하단으로 내려오면, 팔각형 분수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상징적 의미는 다음과 같은 성경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1요한 5,6-8)
화면 하단 왼쪽에서 제대를 향해 무릎을 꿇고 앉아 예언서를 펼치고 있는 사람들은 예언자들이다. 그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은 구약 성경의 의인들이다. 그중에는 이교도의 시인과 철학자들도 있는데, 흰옷을 입고 월계관을 쓴 사람은 ‘아기의 오심’을 예견했던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이다.
화면 하단 오른쪽에서 검소한 옷을 입고 맨발로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들은 사도들이다. 그들 뒤로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질서에 따라 삼중관을 쓴 교황과 그의 시종 부제들, 주교들과 사제들이 순교를 상징하는 붉은색 제의를 입고 있다. 그중 스테파노 성인은 돌멩이를 제의 앞자락에 받쳐 들고 있고, 리비노 성인은 집게로 뽑은 자신의 혀를 들고 있어 그들이 어떤 성인인지 쉽게 알아보게 했다.
화면 상단 왼쪽 뒤에서 녹색 숲을 배경으로 파란 옷을 입고 제대를 향해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교회를 대표하는 교황과 추기경과 주교와 사제와 수도자들이다.
반대편에서 화관을 쓰고 종려나무를 들고 걸어 나오는 여인들도 있다. 그들은 순교로 신앙을 증언한 동정녀들이다. 그들 아래쪽으로 길게 핀 백합이 이를 상징한다. 특히 맨 앞줄에 서 있는 성녀들은 그들이 들고 있는 상징물로 그 이름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린양을 치마폭에 안고 있는 성인은 아녜스 성녀, 세 개의 창이 뚫린 탑을 들고 있는 성인은 바르바라 성녀, 담비 털로 된 공주 옷을 입고 있는 성인은 카타리나 성녀, 꽃바구니를 들고 있는 성인은 도로테아 성녀다.
하단부의 왼쪽 패널에는 판관들과 그리스도의 기사들이 말을 타고 언덕길을 이동하고 있고, 오른쪽 패널에는 은수자와 순례자들이 자갈길을 맨발로 걷고 있다. 맨 오른편에 붉은 옷을 입고 있는 키가 큰 사람은 여행자의 수호성인인 크리스토폴 성인이다.
우리는 어떻게 주님께 나아가고 있는가
이 제단화에 표현된 인물들은 그들이 속한 시간과 공간의 구별 없이, 사회적 지위와 인종 차별 없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피를 흘린 어린양을 경배하고, 영원한 천상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천상 예루살렘에 모이고 있다.
천상 예루살렘에는 무화과 나뭇잎이 우거지고 포도송이가 탐스럽게 달려 있다. 붉은 석류꽃이 핀 언덕 너머로 멀리 보이는 천상의 도시에서는 15세기 건축 양식으로 된 중앙집중식 팔각형 건물이 우뚝 서 있다.
이 제단화는 종교가 지니는 초월성과 현실성이라는 두 개념을, 풍경화를 통해 하나로 일치시키고 있다. 또한 결국 아담과 하와로 시작된 인간의 죄가 어린양이 흘린 피로 속죄되고, 이러한 구원의 신비를 경배하기 위해 천하 만물이 시공을 초월하여 순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주님의 몸과 피를 기억하며
성체와 성혈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자 사랑으로 이루어진 그 자신이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방향이다. 12폭의 그림 속에서 중앙 하단부는 그 자체로 중심을 이루며 곧 제대의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제대를 향해 우리 신앙의 모범인 수많은 성인 성녀가 걸어오고 있다. 곧 구원에 더욱 가까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린양의 피로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구원을 우리는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 주님에게로 모여드는 성인 성녀들 속에 우리도 함께 자리하기를 기도드린다.
🔗 이 주제가 흥미롭다면, 더 읽어 보기
- [정진만 안젤로 신부] 토마스 아퀴나스, 펠리칸, 성체성사의 신비
- [정현진 라우렌시오 신부] 성체는 어떻게 십자가와 이어질까?
-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