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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생활에도 슬럼프는 찾아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봉사하던 이들도 어느 순간 신앙의 열기가 식어 가는 ‘메마름’을 경험합니다.
🙏 놀랍게도 마더 데레사 성녀께서도 이러한 시간을 겪으셨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선 이를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렇다면 의심과 열정 사이를 오갔던 토마스 사도는, 이 메마름의 시간을 어떻게 지나갔을까요? |
열심 뒤에 찾아오는 신앙의 메마름
나는 교리 교사로 오랫동안 열심히 봉사하다가, 어떤 이유로 더 이상 그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신앙생활을 이어 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종종 보아 왔다. 한편으로는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젊은 날 열정으로 시작한 봉사의 불씨가 약해지면서, 그동안 짊어져 온 무게에 짓눌리는 것일까?
교리 교사나 성가대, 레지오 마리애 봉사를 열심히 할 때에는 책임감과 의무감, 그리고 인간관계의 결속에서 오는 여러 요구로 인해 거의 성당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정작 그 결속이 약해지는 순간이 찾아오면, 오랫동안 쌓인 피로감으로 인한 번아웃 상태가 신앙의 힘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예수님과의 우정을 돌볼 여유 없이 봉사에만 전념하다 보면 이러한 냉담에 빠지기 쉽다.
비단 냉담에 이른 이들뿐 아니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신자들도 이와 비슷한 아픔을 안고 살기 마련인데, 이를 영성적 용어로 ‘메마름’이라고 부른다. 이 메마름은 일종의 ‘신앙의 슬럼프’로, 한때는 뜨거운 열정으로 예수님을 섬기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이들이 기도와 신앙생활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즐거움도 찾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 무미건조한 시기는 성덕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필연적으로 겪기 마련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더 데레사 성녀도 이 아픔을 겪었다고 한다.
이 메마름은 신앙의 성장을 위해 겪게 되는 아픔으로, 베네딕토 16세 교황 또한 이 메마름을 이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토마스, 의심과 열정을 함께 품은 사도
오늘 살펴볼 인물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이 타오르는 열정과 의심이라는 두 가지 면모를 지닌 토마스 사도이다. 그를 그저 의심이 가득한 사도로 기억하기 쉬운데, 사실 이는 토마스 사도의 일부, 아니 매우 지엽적인 면만을 본 것이다. 토마스 사도는 신앙의 슬럼프뿐만 아니라 그만큼의 열정도 품었던, 우리에게 또 하나의 거울이 되어 주는 사도이다. 토마스 사도가 요한 복음에 나타나는 장면을 하나하나 묵상하며 제자로서 그의 모습은 어땠는지 살펴보자.
토마스 사도는 앞서 이야기를 나눈 필립보 사도처럼 요한 복음에서 그 역할이 두드러지는 사도이다. 그는 공관 복음에서 오로지 열두 제자 목록에서만 언급되는 반면(마태 10,3; 마르 3,18; 루카 6,15), 요한 복음에서는 총 네 차례 등장하여 그 내적 변화 과정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그의 발언을 정리하면 더욱 명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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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발언(요한 11,16) :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라자로를 살리러 가시는 예수님 앞에서 제자들이 그분의 신변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 두 번째 발언(요한 14,5) :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고별사에서, 당신이 어디 가시는지 제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상황이다.
- 세 번째 발언(요한 20,25) :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다고 이야기하는 상황이다.
- 네 번째 발언(요한 20,28) :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여드레 뒤 다시 나타난 예수님께서 당신 손과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 보고 믿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상황이다. |
그의 신앙은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열정과 의심 사이를 오간다. 처음에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려 했던 그의 마음은 점차 의심으로 약해지고, 마지막에는 그 누구도 하기 힘든 놀라운 신앙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토마스 사도가 요한 복음에서 중반부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등장한다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가 등장하는 첫 장면은 예수님의 일곱 표징* 중 마지막 표징인 라자로의 소생이 일어나기 전이다. 곧 그는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과 말씀을 충분히 보고 들은 상황에서 우리 앞에 등장하는 것이다.
* 나머지 여섯 표징은 다음과 같다.
1.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심(2,1-11); 2. 왕실 관리의 아들을 치유하심(4,46-54); 3. 벳자타 못가의 병자를 치유하심(5,1-9); 4.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심(6,1-14); 5. 물 위를 걸으심(6,16-21); 6. 태생 소경을 치유하심(9,1-7).
토마스 = 쌍둥이?
우리가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첫 정보는 그가 “쌍둥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이다.
그러자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가 동료 제자들에게,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하고 말하였다(요한 11,16).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인 토마스는 아람어 ‘토마’에서 유래하는데, 이 아람어 단어는 원래 ‘쌍둥이’를 의미한다. 본문에서 ‘쌍둥이라고 불리는’이라고 적힌 부분은 원문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디두모스Δίδυμος)를 표기한 것이다. 곧 이 구절은 토마스의 별명을 따로 적어 놓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어를 읽는 독자를 위해 아람어(토마)를 번역해 준 구절이다.
실제로 그가 쌍둥이 중 한 사람이었다는 가설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쌍둥이’를 뜻하는 그의 이름은, 어쩌면 우리가 서두에서 언급한 동전의 양면 같은 신앙인의 모습, 곧 열정과 의심이 쌍둥이처럼 공존하는 그의 신앙인으로서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는 오늘날 많은 신앙인이 겪는 신앙의 슬럼프와도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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