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향기로 남아

성경 이야기

사랑은 향기로 남아

그가 그분을 만난 뒤로 -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를 찾아서(에필로그)

 

🌗 이 글은 <주님을 만난 이들: 요한 복음 속 이야기> 시리즈의 아티클로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를 찾아서(1), (2)’에서 이어집니다. 전편을 읽고 오시면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전편 읽기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1요한 1,1-4)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토마스에게 감사를 전했다.

 

용기를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메시지는 그분의 제자가 될 사람들에게 길이 될 것입니다.

 

어머니는 따스한 미소로 그를 배웅하셨다.

 

굳게 닫힌 그의 마음 앞에서 왜 나는 사랑을 이야기했을까. 그는 그분을 사랑하지 않았느냐는 말에 눈물을 보였고, 힘겹게 마음을 열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동안 끊임없이 사랑을 말씀하셨다. 당신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분처럼 우리를 사랑하신 분은 없었기에, 그 누구도 그분처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나타나신 뒤, 나는 그분과 함께했던 일들과 그분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분 품에서 들은 심장 소리와 그 사랑의 온기를 나만 간직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더 많은 사람이 그분의 표징을 체험하고, 더 많은 사람이 그분 가슴에 기대기를 바랐다. 물론 나 혼자만의 이야기로는 부족하다. 그분을 알았던 수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나는 그분 품에 안겨 그분의 사랑을 느낀 제자다. 내 이름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하기 때문이다(요한 3,30).

 

이 모든 기록은 오로지 그분과 여러분의 믿음을 위한 것이다. 그분께서 하신 일들과 전해 주신 말씀은 온 세상의 책으로도 모두 기록할 수 없겠지만(요한 21,25), 그 작은 일부만으로도 그분은 여러분을 충분히 부르실 수 있다. 단 한 번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목자는 수많은 양을 이끌지 않는가(요한 10,3).

 

나는 그분께 이끌리는 이 행복을 여러분도 느끼게 하고 싶다. 그래서 그분의 이야기를 적되, 이름이 있어야 할 빈자리에는 여러분의 이름이 새겨지기를 바란다.

 

처음에 그분을 만났던 제10시경의 순간부터(요한 1,39),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세 번째로 나타나셨던 때까지(요한 21,1-14). 나는 그분과 함께했던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순간들을 되새기며 기록할 만한 일들을 하나하나 추려내었다. 그리고 기억이 닿는 대로 그분을 만났던 수많은 사람을 찾아 헤맸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나에게 예수님께서 결박당하셨을 때 그분을 두둔하다 쫓겨난 두 바리사이를 보았다고 알려 주었다. 나는 수소문 끝에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니코데모라는 최고 의회 의원임을 알게 되었다.

 

아쉽게도 그를 직접 만날 수는 없었지만, 그는 서신을 통해 나에게 그분을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사제와 아는 사이였던 그 어떤 제자는(요한 18,16), 우리 사이에서 서신 교환원으로서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다.

 

나는 그로부터 서신을 받고서야, 그가 예수님을 모시는 동안 곁에서 그를 도운 아리마태아 요셉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였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그는 아리마태아 요셉이 남몰래 그분을 따랐던 이유를 알려 주었고(요한 19,38), 덕분에 나는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이들이 서로 은밀히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이 책에 담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직접 발로 뛰며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지만, 때로는 뜻밖의 손님이 찾아와 큰 도움을 준 적도 있었다. 나와 어머니가 정기적으로 예수님을 기억하며 모이던 작은 공동체에 헤로데 왕실에서 일했던 사람, 곧 주님께서 아들을 살려 주신 이가 아들과 함께 찾아온 것이다.

 

나는 너무나 기쁜 마음에 그와 그의 아들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들을 공동체에 안내하며, 더없이 귀한 분들이니 모두가 따뜻하게 맞아 달라고 청하였다. 그 전직 관리는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자신이 겪은 일을 우리에게 증언해 주었다.

 

이후 나는 벳자타 못가에서 주님께 치유받은 환자의 행적을 알아보려 했지만(요한 5,1-18 참조), 결국 그를 찾을 수는 없었다. 다만 나는 눈을 뜨게 된 태생 소경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공동체 이곳저곳에 다니면서 그분을 체험한 이야기를 담대히 증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눈을 뜨게 된 당시의 이야기와 바리사이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상세히 들려주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그분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하며 그분의 행적이 맞닿아 있는 말씀들, 곧 모세와 예언자들이 남긴 구약의 메시지들을 그때그때 떠올려 전해 주었다.

 

더불어 그는 자신이 아담처럼 다시 창조된 것과 다름없다며, 그분을 어둠 속에서 마주하게 된 빛이라고 하였다. 그 고백은 이 기록의 서문을 쓰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요한 1, 1-5)

 

차츰 작업이 진행될수록, 그분의 행적을 다시 되새기면서 왜 당시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그제야 깨닫는 일이 잦아졌고(요한 2,22), 이는 나에게 더없는 놀라움을 주었다.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신 뒤에, 이 일이 예수님을 두고 성경에 기록되고 또 사람들이 그분께 그대로 해 드렸다는 것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실 때에 그분과 함께 있던 군중이 그 일을 줄곧 증언하였다(요한 12,16-17).

 

그분께 더없이 큰 사랑을 받은 라자로 역시 내가 만나 보아야 할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다행히 그는 건강을 온전히 회복한 상태였고 그의 남매인 마르타 역시 여느 때처럼 분주하게 손님맞이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대화를 나누었을까, 어느새 방 안에서 익숙한 향기가 느껴져 마리아에게 물었다.

 

어디서 익숙한 향기가 나지 않아?”

 

마리아는 웃으면서 예쁘게 꾸민 찬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익숙한 병인데?”

 

맞아요. 그때 제가 그분께 부어 드렸던 그 향유예요.”

 

나는 우리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던 그분이 떠올라 잠시 말을 잃었다.

 

저걸 보관하고 있었어?”

 

그분께서 보관하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기억나지 않으세요?”

 

아 맞다, 그랬지.”

 

근데 모르겠어요. 제가 저 향유를 쓰려고 그분 무덤에 갔을 때, 이미 무덤은 비어 있었어요. 처음엔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케파가 저에게 사정을 잘 설명해 주었어요.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으로 가는 길에 두 바리사이를 만났다고 했는데, 그분들이 이미 예수님을 모셨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좋은 분들이셨나 봐요.”

 

맞아. 나도 얼마 전에 그들을 알게 되었어.”

 

처음엔 제가 한발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잘된 것일지도 몰라요. 마리아 막달레나의 말로는 그분들에게 하인들도 같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저 향유는 다시 쓸 일이 있을까? 분명 그분께서 말씀하신 이유가 있을 텐데……

 

, 모르겠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사용할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런데 신기한 건 저 향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을 잊지 않고 계속 생각하게 되는 거 있죠.”

 

잠시 눈을 감았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던 이 향기…….

 

………

 

그분의 품에 안겨 있을 때 맡았던 그 향기와 같았다.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한없이 포근했던 그분의 품은 어느새 피와 멍, 채찍 자국으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나를 품기에는 그분의 품이 너무 넓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 하나만으로는 그 사랑을 견디실 수 없었던 것이었을까.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어머니는 피눈물을 흘리시며 그분 앞에 엎드려 울부짖으셨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멍하니 그분의 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어느 군사가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한없이 흘러나왔다.

 


 

아들아, 괜찮니? 무슨 고민이 있는 거니?”

 

, 아닙니다, 어머니. 잠깐 그분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이제 필립보와 토마스의 이야기까지 적었으니 생각해 두었던 이야기는 다 적은 셈이다. 하지만 왜일까, 어딘가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그분에 대해 더는 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했는데…….

 

그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대체 내가 무엇을 본 것일까……

 

그러던 중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십니까?

 

문을 여니 머리에 두건을 쓴 중년의 여인이 앞에 서 있었다.

 

여기가, 혹시 예수님이라는 분의 가르침을 전한다는 공동체인가요?

 

, 네, 잘 오셨습니다. 평화를 빕니다, 자매님.”

 

실례하겠습니다. 저는 사마리아에서 온 사람입니다. 그분께 진 빚이 있어서요.”

 

일단 앉으시죠, 자매님, 먼 길 오셨군요.”

 

여인은 지쳐 보였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며 천장을 바라본 뒤 다시 나를 보고 이야기했다.

 

사실 그 누구도 차별 없이 환대해 주신다는 소문을 듣고 용기를 내어 왔어요. 그분은 제게 말씀하셨거든요. 제가 그리짐 산도,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예배를 드릴 것이라고 말이에요. 이곳이 그곳일까요……?”

 

어느새 어머니는 서둘러 우물에서 길은 물을 그녀 앞에 놓으셨다.

 

저희는 그분께서 가르치신 대로 누구에게나 사랑으로 대할 뿐입니다. 그분께서 저희에게 새 계명을 주셨거든요. 혹시 저희에게 더 들려주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이분은 그분의 어머니시랍니다.”

 

그녀는 어머니를 뵙자마자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녀는 입을 막고 울먹이며 말했다.

 

이제 기억나요. 십자가 앞에서 두 분을 봤어요. 그분께서 목마르다고 말씀하실 때…….”

 

그리고 이윽고 그녀는 눈물을 삼키며 어머니가 놓으신 물잔을 바라보았다.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1요한 5,6)

 

창문이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이끌려

그늘이 서린 방 한구석에 빛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해는 우리 위에서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이인섭 신부님의 아티클 더 읽어 보기

 

 

 

Profile
인천교구 사제. 현재 로마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담긴 메시지를 연구하는 것이 제 주된 일이지만, 그것을 넘어 교회 안에는 세속에서 찾을 수 없는 사랑과 배려가 존재한다는 것을 가능한, 많은 이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다른 분들이 함께 본 콘텐츠

시리즈31개의 아티클

주님을 만난 이들: 요한 복음 속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