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아쿠티스③│카를로의 마음에는 어떤 목소리가 들렸을까?

신학 칼럼

카를로 아쿠티스③│카를로의 마음에는 어떤 목소리가 들렸을까?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한 알의 밀알이 된 소년, 카를로 아쿠티스

2026. 0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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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주님을 향한 사랑을 키워 간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 성체 앞에 머무르며 삶의 중심을 주님께 두었던 그의 신앙을 따라가며, 우리도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요?”

 


 

카를로의 신앙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의 삶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새 계명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의 삶은 말 그대로 이 계명을 실천한 삶이었습니다. 이러한 성인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는지, 또 그의 신앙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을 떠올리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의 가족 모두가 깊은 신앙심을 지녔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의 어머니께서는 자신의 가정이 깊은 신앙을 지닌 가정은 아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카를로의 조부모님께서 신앙심이 깊으시기는 했지만, 성인의 어머니께서는 평생 성당에 세례식, 첫 영성체, 혼배 미사 때 이렇게 세 번밖에 가지 않았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이 가정을 신앙적으로 이끌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의 신앙은 하느님께서 친히 이끌어 주신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화려한 항구에서 들려온 한마디

 

성인은 병환 중 중환자실에서 거의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기도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습니다. 중환자실에 보호자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새벽 1시까지로 제한되어 있어 어머니와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성인은 어머니와 함께 계속 묵주 기도를 바치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의 주님을 향한 열정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었으며, 그의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 해안에 있는 포르토피노Portofino라는 항구 마을에서 있었던 일화는 성인이 얼마나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는지를 보여 줍니다. 성인은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어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면서 불현듯 멍하니 생각에 잠겼고, 다소 우울해 보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가끔 그런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평소보다 다소 이상해 보여 걱정한 어머니께서는 잠시 시간이 지난 뒤, 잠들기 전에 성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성인은 식당을 나설 때 주님의 목소리와 같은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그 목소리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신 다음 말씀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목마르다.”(요한 19,28)

 

성인은 주님께서 포르토피노의 화려함과 부유함, 사치 앞에서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깨닫게 해 주시려는 듯하다고 스스로 해석했습니다. 이러한 부유함과 관련하여 성인은 종종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믿음 안에서 내딛는 한 걸음은 소유함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동시에 참된 나의 존재함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노력했던 성인은 복음서를 즐겨 읽었는데, 특히 이 말씀을 마음 깊이 간직했다고 합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성인은 이 말씀을 성체성사와 연결하여 이해하고 묵상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자라 밀 이삭이 되고, 빻아져 밀가루가 되며, 마침내 빵이 되고, 그리스도께서는 성찬례 안에서 이 빵의 형상 아래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십니다. 성인은 이처럼 밀알의 비유 안에서 성체성사의 신비를 깊이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밀알이 결국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을 향한 봉헌의 삶, 곧 밀알의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묵상 속에서 성인은 메모장에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남겼습니다.

 

예수님, 저를 한 알의 밀알이 되게 하시어, 제가 당신의 성체성사 신비에 도달하게 하소서. 저는 참으로, 실제로 그 신비로 살아갑니다.”

 


 

매일 예수님을 만나러 간 소년

 

이 기도문에서 느낄 수 있듯이 성인의 성체성사 신심은 남달랐습니다. 첫 영성체 직후에는 예수님과 하나 되는 것을 자기 삶의 계획으로 삼았다고 기록했고, 성체를 삶의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매일 미사와 성체 조배를 중요하게 여기며 이를 내면적 성장의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성인은 성체 조배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양 앞에 서면 피부가 그을리지만, 성체이신 예수님 앞에 서면 거룩해집니다.”

 

이처럼 성체 앞에 머무르는 것을 좋아했던 성인은 성체 조배를 할 때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어두컴컴한 방에 가느다란 빛줄기가 들어오면,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를 맨눈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는 공기 중에 떠 있는 먼지들이 빛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므로 빛줄기가 보이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밤하늘에서 달이 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우리의 영혼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성체 조배를 통해 우리는 성체에서 나오는 빛에 비추어져, 평소에는 알아차리지 못하던 영혼의 티끌과 결점, 죄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되며, 그것들이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빛 앞에서 숨길 수 없는 것들

 

성인의 비유는 깊은 감동을 전해 줍니다. 이 비유는 성인이 성체 조배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그리고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머물렀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 비유를 바라보며 저는 그동안 해 왔던 성체 조배가 혹시 허투루 한 것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성인의 깊은 성체 신심은 예수님 곁에서 살았던 사람들조차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분의 몸을 받아 모실 수는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체를 모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지 깨닫게 합니다.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은 분명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한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린 나이에 누구보다 깊은 성체 신심을 지녔다는 사실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내면에 얼마나 깊이 함께하시며 우리를 이끄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동시에 우리가 우리 안에 깊이 함께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또한 우리도 모르게 청소년은 주님의 사랑을 느끼기 어렵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청소년 안에 있는 신앙의 가능성조차 차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목적인 관점에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참고

1) 안토니아 살차노 아쿠티스, 《내 아들 카를로 아쿠티스의 비밀》, 2021.

 


 

*이어지는 네 번째 글은 다음 주에 공개됩니다.

 


  

🌿 평범한 하루, 특별한 신앙

 

<평범해서 더 특별한 성인, 카를로 아쿠티스>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일상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아간 카를로 아쿠티스의 삶과 신앙을 만나는 연재입니다.
심용일 비오 신부님과 함께 평범한 하루하루를 특별한 사랑으로 채워 간 카를로의 삶을 만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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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수원교구 사제. 청소년 사목신학을 공부하며 청소년과 가정, 교회 공동체가 함께 성장하는 길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을 교회의 미래에만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오늘의 교회를 함께 이루어 가는 소중한 구성원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삶과 신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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