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특집② 가장 넓은 자리를 비워 두고서

영성과 신심

월간 특집② 가장 넓은 자리를 비워 두고서

빈자리에 빵으로 오시는 분

2026. 1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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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 한 조각의 행복”

위내시경으로 공복을 지키던 어느 날, 텅 빈 속으로 모신 성체 안에서 예수님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성심당의 역사부터 아픈 아이와 이웃을 위해 새벽마다 비건 빵을 굽는 친구의 이야기까지.

빵을 굽고 나누는 삶 속에서 감사와 사랑의 의미를 발견해 봅시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루카 24,30-31)

 


 

공복의 성체

 

새벽 미사 반주가 있던 날, 미사를 마치면 곧장 건강 검진을 받으러 갈 참이었다. 위내시경을 해야 했던 나는 전날 저녁 9시부터 금식으로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그러지 않아도 새벽 미사 반주 전날엔 잔뜩 긴장하게 마련인데, 내시경을 위한 금식까지 하려니 몇 배는 더 신경이 쓰였다.

 

우리 본당에서는 반주자가 가장 먼저 성체를 모신다. 신부님이 내려오시기 전 정해진 위치에 서서 빠르게 성체를 영한 뒤 성가 반주까지 착착! 온 마음과 신경을 써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성체를 모시고 오르간 의자에 앉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아뿔싸! 그제야 떠오른 위내시경. 아! 나 금식이었지…….

 

반주 시작과 동시에 머릿속은 하얘졌다. 성체를 도로 입 밖으로 꺼내는 상상도 해 보았지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성가와 함께 나는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

 

‘내 안에 계신 예수님, 당신께서 허락하신다면 건강 검진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검진 전 상담에서 나는 미사 중 모신 성체란 무엇이며, 성체를 입에 넣었던 정확한 시간, 그리고 성체의 성분까지 설명해야 했다. 다행히 검사는 예정대로 진행할 수 있었다. 결과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는 했지만, 뭐.

 

그렇게 나는 생애 처음으로 ‘주님과 함께’ 위내시경을 하게 되었다. 무척 신기한 경험이었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위내시경 전 영성체를 권하지는 않겠다.

 

그러고 보니 그날은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하게 비워진 상태로 성체를 모신 셈이었다. 열 시간 넘게 물 한 모금조차 입에 대지 않았으니 살면서 가장 길게 공복재를 지킨 날이기도 했다. 텅 빈 나의 속에 가장 먼저 들어와 주신 예수님. 실수라 여겼던, 그 ‘아차’ 했던 순간을 특별한 체험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그분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루카 10,41-42)

 

‘예수님의 마음’과 ‘생명의 빵’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빵집이 있다. 대전에 사는 나보다 타지에 있는 친구들이 먼저 묻는 빵집, 성심당.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처음 먹은 성심당 빵은 지인이 대전을 방문해서 사 온, 풍문으로만 듣던 ‘망고시루’였다.

 

상자에서 꺼낸 망고시루를 보았을 땐 그 크기와 모양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아낌없이 들어간 망고며, 8명의 대가족이 둘러앉아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큼 엄청난 크기, 게다가 맛은 말해 무엇하리. 촉촉한 빵 시트와 달콤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생크림, 신선한 망고가 켜켜이 쌓여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맛.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동이 물결쳤다.

 

먹는 사람이 미안해질 정도로 넉넉하고 아낌없이 퍼 주는 맛. 이래서 한 번도 안 먹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먹으면 절대 잊을 수 없어 자꾸만 생각난다는 거였구나. 주님의 사랑이 이런 맛 아닐까.

 

성심(聖心),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 그래서 성심당이구나. 그런데 이 넉넉함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짐을 비우고 사람을 채운 배

 

이야기는 1950년 겨울, 흥남 부두에서 시작된다. 부두에는 화물선 한 척이 서 있었다. 정원이 고작 60명인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장 레너드 라루는 배에 실린 군수 물자를 내리고 그 자리에 1만 4천 명의 사람을 태웠다.

 

기뢰가 깔린 바다를 건너는 사흘 동안 배 안에서는 다섯 아기가 태어났고, 아기들을 포함하여 단 한 사람도 잃지 않은 채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성탄 대축일 아침 거제도에 닿았다. 사람들은 이를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불렀다. 짐을 비우고 사람을 채운 배. 그 배에 훗날 성심당을 세울 임길순 암브로시오가 있었다.

 

빈손으로 대전에 도착한 그는 대흥동 성당에서 밀가루 두 포대를 받았다. 그리고 그 밀가루로 대전역 앞에서 찐빵을 쪄서 팔기 시작했다. ‘성심당’. 허름한 천막 찐빵집에 붙이기엔 상호가 너무 거창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그는 그 이름을 고수했다. 피란길 배 위에서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았음을 잊지 않고 ‘남은 인생은 남에게 베풀기 위해 살겠다’고 한 다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성심당이란 이름은 단순한 가게 이름을 넘어선 신앙 고백이었다.

 

임길순 암브로시오는 하루에 찐빵 300개를 만들어 그중 100개는 무조건 이웃에게 나누었다. 300개를 다 팔아 버린 날에는 새로 반죽해 100개를 더 쪄서 나누었다. 이 나눔은 대를 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팔고 남은 빵을 나누는 게 아니라 나눌 빵을 처음부터 따로 굽는 일. 누구나 넉넉히 맛볼 수 있도록 큼직하게 내놓는 시식 빵과 근처 포장마차 상인들이 쓸 수 있도록 끌어다 준 수돗물까지. 미담이 끊이지 않으니, 이야기를 들은 사람마다 ‘돈쭐’을 내러 줄을 서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한 사람이 비운 자리에 사랑이 채워지고, 그렇게 채워진 사랑은 다시 누군가에게 나누어졌다. 비움에서 채움으로, 채움에서 나눔으로. 그 사랑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 성심당 망고시루를 먹으며 비움과 채움, 나눔의 역사를 맛보는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새벽에 굽는 엄마의 빵

 

우리 동네에도 내가 무척 사랑하는 빵집이 있었다. 나의 서점과 한 골목 건너에 있었던 ‘세이비건’. 자영업의 ‘자’ 자도 모르면서 겁도 없이 덜컥 서점을 열었던 꼬꼬마 시절, 세이비건 사장님은 나의 첫 자영업자 친구가 되어 주었다.

 

한동네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가게에 방문하게 되었고, 아이들 나이도 비슷했던지라 우리는 ‘자영업 하는 엄마’라는 동지애로 금세 서로에게 마음을 내주었다. 그녀는 아픈 아이를 위해, 그리고 아이처럼 밀가루나 우유가 든 빵을 먹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비건 빵집을 열었다.

 

타고난 먹보에 빵순이인 나는 맛있다는 빵집은 모두 가 보는 편이었다. 그런 내가 그녀의 빵을 처음 먹었을 때, 솔직히 많이 놀랐다. 신선한 문화적 충격. 그간 내가 먹어 온 빵과는 결이 달랐다. 단정하고 소박하면서 진솔한 맛이 느껴진달까.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 있었고, 먹고 나서도 속이 편안했다.

 

무엇보다 빵 맛 너머, 빵을 만든 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후로 그녀의 빵을 먹을 땐 자세부터 달라졌다. 이 빵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진심을 담아 만들었는지 잘 알기에, 절로 두 손을 모으고 감사를 담아 기도하게 되었다.

 

이웃했던 그녀의 빵집은 선화동으로 터를 옮겼다. 처음 빵집을 열었던 그 마음만은 잃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였다. 예전처럼 지나가다 들를 수 없어 너무나 아쉽지만, 한 번 이어진 마음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그대로다.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 내다가도, 가끔 헛헛하고 기운이 빠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어느 날 불현듯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잘 지냈냐는 인사에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늘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대단하다고 응원해 주는 사람. 그녀는 여전히 아픈 아이를 위해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비건 빵을 굽기 위해 새벽부터 열심이었다.

 

그녀가 말하길, 얼마 전에는 빵집 차단기가 내려가 남은 작업을 다 못 할 뻔했단다. 두꺼비집 스위치를 아무리 올려도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고, 급기야 한전에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직원을 기다리기엔 작업이 너무 밀려 있었다.

 

그때 옆 가게에서 선뜻 전선을 끌어다 쓰게 해 주었단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고, 그녀는 몇 번이나 말했다. 위기 앞에서도 원망보다 감사를 먼저 꺼내는 사람. 그런 그녀 곁에는 늘 좋은 이웃이 있었다.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그녀의 빵을 한입 가득 문 듯 따뜻한 기운이 퍼져 갔다. 건강하고 씩씩한 에너지와 감사의 마음이 어느새 내 안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입꼬리가 올라간 나. 어? 방금까지 나를 잠식하던 그 헛헛함은 어디로 갔지?

 

한 아이를 건강하게 먹이려는 엄마의 마음은 작은 빵집이 되었고, 빵을 타고 한 골목 건너 나에게까지 닿았다. 이제는 빵 없이 목소리만으로도 전해진다. 성심당이 그랬듯, 좋은 마음과 정성이 담긴 빵은 누군가의 빈자리에서 시작되었다.

 

피란민의 빈손, 아픈 아이 곁에서 애태우던 엄마의 마음, 그리고 헛헛하던 나의 어떤 하루. 하느님은 그 빈자리마다 빵을 보내 채워 주셨다. 밀가루 두 포대로, 옆 가게에서 끌어온 전선 한 줄로, 잘 지냈냐는 전화 한 통으로.

 


 

같은 빵, 같은 식탁

 

빵을 나누는 자리에서 마음이 열리는 일. 2,000년 전에도 그랬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길을 함께 걸으면서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의 눈이 열린 건 그분이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실 때였다(루카 24,30-31 참조). 주님은 늘 빵을 나누는 자리에서 당신을 드러내신다.

 

나는 성체를 모시고 자리에 앉는 순간을 좋아한다. 한 손을 가슴에 얹고 눈을 감으면, 내 안에 오신 그분으로 가득 차오르는 것만 같다. 충만한 기쁨과 함께, 부족한 내게 와 주신 그분의 사랑과 감사로 채워지는 순간 나는 다시 용기를 내게 된다. 받은 만큼, 아니 받은 것보다 조금 더 나누며 살아가겠노라고.

 

11월, 추수의 계절이다. 올해 거둔 것들을 헤아려 본다. 올봄엔 우리 집 둘째가 첫영성체를 했다. 새로 오신 보좌 신부님과 전교 수녀님, 그리고 교리 선생님들의 아낌없는 사랑으로 아이들은 서서히 마음을 열었고, 성당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교리가 있는 날이면 부모들은 성당 주방에 모여 밥을 짓고 마음을 나누었다. 첫영성체 날에는 남편이 만든 노래를 아이와 함께 부르며 성당으로 향했다. 두 손을 모으고 나아가던, 동그란 빵 안에 숨어 계신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시던 아이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아이가 이제 복사복을 입고 제대 옆에 선다. 첫영성체 교리를 시작할 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오르간 앞에 앉아 제대 옆의 아이를 바라본다. 같은 빵을 먹고 같은 식탁에 둘러앉은 우리. 이보다 넉넉한 추수가 또 있을까.

 

그리고 비워 둘 자리를 헤아려 본다. 다시 새벽 미사 반주를 하러 가는 길, 이번에는 금식이 아니라 마음을 비울 차례다. 가장 먼저 오시는 그분을 위해, 가장 넓은 자리를 비워 두고서.

 

 

Profile
마음독립서점 대표. 생명, 자연, 치유, 나다움, 기쁨을 나누고 싶어요. 읽고 쓰고,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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