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특집① 성심당, 딸기시루,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

영성과 신심

월간 특집① 성심당, 딸기시루,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

빵을 기다리는 마음에도 사랑이 있다

2026. 1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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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 한 조각의 행복”

모두가 대전을 ‘빵의 도시’라 부르는 것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습니다.

자랑스러움과 서운함이 교차하던 마음은 어머니가 건네신 딸기시루와 함께 조금씩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익숙한 빵집 앞에 길게 늘어선 줄과 그 안에 담긴 마음들.

성심당을 통해 발견한 사랑의 의미와 작지만 따뜻한 변화의 이야기를 만나 봅시다.

 


 

대전은 빵의 도시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대전이 ‘빵의 도시’라고 불리게 된 것이.

 

사실 저는 그러한 별명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습니다. 대전에 빵 말고 다른 무언가 특별히 내세울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성심당이 지나치게 유명해지는 것이 제게는 불편했습니다.

 

원래도 유명했던 빵집이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성심당은 인기가 더욱 커졌습니다. 대전역이나 은행동 거리에서는 모두가 성심당 쇼핑백을 들고 다닙니다.

 

덕분에 이제는 성심당에서 빵 하나라도 사려면 무조건 줄을 서야만 했고, 매장에 들어가더라도 인파에 휩쓸려 가까스로 몇 개를 골라 바삐 계산해야만 했습니다. 성심당 케익부띠끄 앞에 늘어선 줄을 바라보며, 감히 마음 편히 케이크 한 조각 살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사랑하는 빵집

 

저는 성심당의 역사가 훈훈한 이야기로 재조명되는 것도 솔직히 기쁘지 않았습니다. 창업주인 고(故) 임길순 암브로시오와 고(故) 한순덕 마르가리타 부부가 흥남 부두에서 기적적으로 피난선을 타고 남한으로 내려오며 ‘이제 평생토록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살겠다’고 다짐했다는 이야기, 거제도와 진해를 거쳐 대전에 터를 잡고 주교좌 대흥동 성당의 오기선 신부님에게 밀가루 두 포대를 받아 역전에서 찐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는 성심당의 시작 이야기, 그때부터 지금까지 성심당이 줄곧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부를 아낌없이 이어 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질수록 오히려 불안해졌습니다.

 

안 그래도 긴 줄이 더 길어질 것이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임영진 요셉 대표가 튀김소보로와 부추빵을 개발하고 최초로 포장 빙수를 개발한 일화, 2005년 화재로 모든 것이 불타 버린 성심당을 직원들이 합심해서 다시 일으켜 한 주 만에 다시 빵을 구워 낸 일화, 방한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드실 빵을 날마다 구워 드린 일화, 교황님께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기사 훈장’을 받은 일화, 딸기시루와 이어지는 시루 시리즈의 대성공 일화, 모범 납세 기업이자 ‘모두를 위한 경제(Economy of Communion)’를 실천함으로써 공동선에 기여하고 있다는 일화, 레오 14세 교황님께도 친필 편지를 받았다는 일화까지.

 

성심당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를 유튜브나 다른 SNS에서 접할 때면, 기쁨과 자랑스러움 이전에 겁부터 덜컥 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늘 함께했던 성심당이 제게서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굳이 힘들여 홍보하지 않아도 ‘성심당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는 것은, 단순히 특별한 빵이 TV에 나와서 일시적으로 인기를 끈다거나, 그저 가성비 좋은 빵집으로 유명해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 성심당을 찾는 고객은 ‘맛있는 빵’을 먹고자 하는 이들이 아니라, ‘성심당이라는 이야기가 담긴 빵’을 먹고자 하는 이들일 테니까요.

 

당연히 대전교구 사제이자 빵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성심당이 유명해지고 성심당의 이야기가 알려지는 것은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솔직히 ‘이제 더는 편히 성심당 빵을 먹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딸기시루가 가르쳐 준 사랑

 

하지만 어느 한 사건을 계기로 저의 이 불만 섞인 마음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몇 해 전 가족 모임 때였을까요, 어머니께서 딸기시루를 구해 오신 일이 있었습니다. 출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께서는 한겨울 이른 새벽에 버스를 타고 나가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 ‘요즘 유명하다는 그 성심당 딸기 케이크’를 사 오셨습니다. 가족 모두 그러지 마시라고 말렸지만, 어머니께선 모든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새벽같이 나가 줄을 서서 딸기시루 구입에 성공하셨고, 저희에게 자랑스럽게 내놓으셨습니다.

 

아마도 어머니께서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그런 수고를 감내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다만 어머니께선 사랑하는 손주들에게, 그리고 다른 가족들에게 ‘그 유명하다는 케이크’를 먹이고 싶으셨던 것이겠지요.

 

솔직히 그때 딸기시루의 맛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별맛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케이크에 담긴 어머니의 사랑이 더 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케이크를 사기 위해 그 추운 새벽에 한 시간 넘게 덜덜 떨며 기다리셨을 어머니의 마음은, 아직도 제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가족을 향한 사랑이,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더 특별한 것을 먹이고 싶다는 그 마음이 어머니를 움직이게 했겠지요. 그 마음을 맛보고 나서야, 저는 겨우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심당 앞에 늘어선 긴 줄은 ‘누군가에게 특별한 것을 먹이고 싶은 사랑의 마음들’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유행에 민감하다며, 남들이 하는 건 무조건 다 따라 해야 한다며, 짐짓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던 저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사 오신 케이크를 바라보며, 그렇게 유행을 따르는 행위도 ‘누군가에게 특별한 기억을 선사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여전히 성심당 앞에 늘어선 줄은 길고, 저 역시 여전히 빵 하나를 사려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긴 줄을 보아도 그다지 싫지 않습니다. 그 긴 줄이 실은 ‘누군가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심당 빵을 사기가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졌고, 어쩌면 앞으로 더 어려워질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길게 늘어선 사랑을 보는 것은 언제나 마음 흐뭇해지는 일입니다.

 


 

추억 속에는 늘 성심당이 있었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 이래로 줄곧 대전에서 살았고, 대전교구 사제로서 여전히 대전과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제게 성심당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장소입니다.

 

중학생 때 친구들과 은행동에 나가면 용돈을 아껴 성심당 본점 2층의 ‘테라스키친’에서 돈가스와 볶음밥을 먹었고, 고등학생 시절에는 본점 지하의 ‘우동야’에서 히레가스 정식을 먹는 것이 저의 유일한 사치였습니다.

 

신학생 시절에는 주일학교 아이들과 여름마다 성심당 포장 빙수를 먹었고, 입대를 위해 휴학했을 때는 지금의 케익부띠끄 자리에 있던 레스토랑 ‘플라잉팬’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여 월급을 본당 교육관 건립 헌금으로 내기도 했습니다.

 

다른 지역의 지인들에게 선물할 일이 있을 때면 늘 성심당의 튀김소보로와 부추빵을 준비했고, 본당에서 사목할 때도 봉사자들에게 종종 순수롤과 마들렌을 선물하곤 했습니다. 저 역시 빵을 즐겨 먹었습니다. 사실, 남들에게 선물한 것보다 제가 먹은 빵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튀김소보로도 맛있지만, 저는 부추빵을 훨씬 더 좋아했습니다. 순수롤도, 명란 바게트도 좋아했고, 크로켓을 무척 좋아해서 여러 종류의 크로켓을 즐겨 먹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 빵들을 예전처럼 쉽게 살 수 없게 되었고, 이런 상황이 전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기다리는 마음

 

저는 여전히 빵을 좋아하고, 특히 오랜 추억이 서린 성심당의 빵을 더욱 좋아합니다. 하지만 저의 불편함이, 저의 기다림이 ‘누군가와의 특별한 순간을 위한 사랑의 마음’에 자리를 내어 주기 위한 것이라면, 그 불편함과 기다림조차도 제게는 기쁨이 됩니다. 물론 그 기다림이 제법 길기에, 저도 이제 저 자신을 위해서 성심당에서 빵을 사지는 않습니다. 다만, 누군가를 위해 꼭 필요할 때는 긴 줄의 맨 뒤로 가서 차례를 기다립니다.

 

제법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지만, 그 시간이 마냥 싫지만은 않습니다. 결국 누군가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모여 그 긴 줄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아니까요. 그 사랑을 바라보는 일도, 그 줄의 일부를 이루는 일도, 제게는 잔잔한 행복입니다.

 

어머니께서 추운 새벽에 버스를 타고 나가 딸기시루를 사기 위해 기다리시던 바로 그 마음이, 거기에 모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Profile
대전교구 사제. 독일에서 카리타스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생을 양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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