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는 어떻게 십자가와 이어질까?

교리와 전례

성체는 어떻게 십자가와 이어질까?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례 유산 9

2026. 0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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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줄 요약

 

1. 성체는 십자가와 분리된 상징이 아니라예수님께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신 사랑의 현존입니다.

2.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표식이기보다죄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3. 성체를 모신 우리는 그 사랑을 기억하며삶에서 자신을 내어 주는 길로 초대받습니다.

 


 

떼어 나누는 바로 그 빵이 의미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이며, 아버지를 향한 사랑에서 나오는 순종의 희생 제사입니다(프란치스코, 《나는 간절히 바랐다》 7).”

 

지난 글에서 함께 숙고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상징인 십자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교황의 말씀을 거칠게 요약하면,성체는 곧 십자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20171122일 일반 알현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습니다.

 

성찬례는 언제나 하느님의 구원 행위의 정점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우리를 위해 쪼개진 빵이 되신 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당신의 모든 자비와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의 마음, 우리의 현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는 방식과 더불어 형제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도 새롭게 해 주십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과월절 양으로서 희생되신(1코린 5,7) 십자가의 희생 제사가 제단에서 거행될 때마다 우리의 구원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인류의 빛》 3).’”

 

이처럼 교황께서 몸소 신자들에게 그 의미를 잘 풀어 주었지만, 우리 스스로 주의 깊게 귀 기울이지 않으면 성체십자가의 관계를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분주하고, 모두 고민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각자 서로 다른 어려움을 지니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 우리는 어느 정도(어쩌면, ‘매우’) 타인보다 자기 자신에게 우선 집중하고, 자신의 문제에 먼저 몰두하기 때문에 이 거룩한 신비의 의미가 어렵게 다가옵니다.

 

주일 미사에 참례해서 성체를 영하는 우리 마음을 각자 떠올려 봅시다. ‘오늘 나는 영성체함으로써 주일의 의무를 완수했다라고만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또는 주님의 몸을 영해야만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여기지는 않나요? 성체를 영하며 받은 깊은 위로의 은총에 감격한 나머지 늘 그와 같은 감각적 위안만을 추구하지는 않는지요? 그리고 설마, 주님께서 그 은총을 나에게만 특별히 주신 것처럼 느끼는 일은 없겠지요?

 


 

그리스도의 형상이 있는 십자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몸을 내어 주는 것(성체성사)”과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시는 것은 순전히 죄인인 우리를 위한 것임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를 위해 당신 전부를 내어 주신 것입니다. 성체성사 거행을 통해 빵(성체)을 떼어 나누는 행위는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성체성사의 신비와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비는 내어 주는 신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황이 말하듯, 우리가 그리스도교라는 일종의 (squadra)’에 속해 있음을 표현하거나 소속감을 드러내려고 십자가를 지니는 것은 십자가 상징의 본질적인 활용법이라 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나 대신 예수님께서 죄인이 되어(교황은 가 되었다고까지 표현합니다) 희생 제사를 완수하셨음을 나타내는 상징이며,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신 분께서 지금도 미사 거행을 통하여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심을 확신하게 하는, 곧 부활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상징은 그리스도 몸소 자신을 내어 주신 삶 그대로, 성체를 받아 모신 우리 역시 자신을 내어 주는 선교적인 삶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는 미사를 거행하는 제대 위나 그 주위에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형상이 있는 십자가를 놓도록 규정합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117). 교우들이 이를 바라보며, 주님 수난을 묵상하며 주님의 구원 업적을 되새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08). 무엇보다도 제대는 십자가 희생 제사가 성사적 표지로 재현되는 곳임을 분명히 드러내고자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96).

 

그래서 교황은 예수님께서 달려 계시지 않은 단순한 십자가 모양(la croce)이나 아름답게 장식된 십자 문양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형상이 있는 십자가(il crocifisso)’가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반 알현을 마치며 다시금 강조했습니다.

 

미사는 골고타 언덕의 재현이지,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닙니다(La Messa è rifare il calvario, non è uno spettacolo).”

 

우리 모두 거룩한 성체를 내 안에 모실 때마다,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 희생하신 주님의 끝없는 사랑을 잊지 맙시다.

 


 

참고 문헌
  • Ettore Malnati, Il cuore della Chiesa. Catechesi di Papa Francesco sulla Messa, Roma 2018.
  • Papa Francesco, «La Santa Messa: 3. La Messa è il memoriale del Mistero pasquale di Cristo (Udienza generale, Piazza San Pietro, Mercoledì, 22 novembre 2017)»,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it/audiences/2017/documents/papa-francesco_20171122_udienza-generale.html, [accesso: 18-01-2026]
  • Papa Francesco, «Omelia a Santa Marta (4 aprile 2017)», https://www.youtube.com/watch?v=xWG9v9LxyX8, [accesso: 18-01-2026]
  • 프란치스코, 〈나는 간절히 바랐다〉,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68(2023),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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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했습니다. 현재 서울대교구 대신학교 전례-행정 담당으로, 귀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전히 배울 것이 많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맡은 자리에서 부제님들과 학사님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나누고 싶고, 더 나아가 평신도들이 전례 거행 안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찾도록 돕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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