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과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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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과 당부

하느님께 파견된 존재, 자비와 사랑을 전하는 삶

2026. 0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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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난 편을 안 보셨다면먼저 읽어 보시길 추천해요.

 

'생명을 전달하는 기쁨'

 


 

안녕하세요, 한민택 신부입니다.

시작 기도로 요한 21,15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들이 아침을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마지막 강의의 주제는 파견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떠올립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이 시간에는 파견된 존재로서 우리 각자의 신원에 대해 묵상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존재인 동시에, 그분의 자비와 사랑을 전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파견된 존재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어떤 처지에 있든 상관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자비와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로 파견하십니다.

 


 

썩는 밀알처럼 삶을 내어 주는 것

 

저는 유학 시절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수년간 지낼 기회가 있었습니다. 파리외방전교회는 한국 교회와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조선 교구가 처음 설정되었을 때, 조선의 선교를 위해 가장 먼저 나선 선교 단체가 바로 이 전교회입니다. 103위 성인 중 열 분이 조선 땅으로 들어와 활동하고 순교하신 프랑스 주교님과 신부님들이십니다.

 

파리 7구에 위치한 파리외방전교회는 안쪽으로 큰 정원이 있는데, 정원 끝 한편에 작은 성모 경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선교사가 파견될 때 이 경당 앞에서 마지막 기도를 하고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난다고 합니다. 또한 아시아 지역에서 순교하신 분의 소식이 들리면, 전교회 소속 사제들과 신학생들은 이곳 경당 앞에 모여 함께 기도를 바쳤다고 전합니다. 경당 안쪽 벽에는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순교하신 선교사들의 이름과 함께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이 걸려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이 구절은 전교회가 선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잘 나타내 줍니다. 선교는 교세를 부풀리는 행위가 아닌, 파견된 곳에서 그곳 사람들에게 썩는 밀알처럼 삶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님들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 파견되어 현지인을 위해 온 삶을 바치셨고, 썩는 밀알이 되어 그곳에 신앙의 열매가 풍성히 열리게 하셨습니다.

 

제가 유학할 당시 전교회의 총장이셨던 에차렌 신부님은 한 선교 사제의 파견 예식 때, 그곳에 모여 기도하던 아시아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선교 사제는 여러분의 땅인 아시아로 파견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그가 진정한 선교사가 되는 것은 바로 여러분 나라에 가서입니다. 그러니 이 선교 사제가 가서 진정한 선교사가 되도록 아시아 교회 신자 여러분이 도와주고 보살펴 주십시오.”

 

선교사는 가르치는 사람, 무언가를 나눠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파견된 곳에서 그곳 언어와 문화, 풍습과 전통, 종교와 철학을 배우며 그곳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사람입니다. 그는 현지에 살면서 선교사가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그는 완벽히 준비되어 무언가를 주기 위해 파견되는 사람이 아니라, 가서 함께 살기 위해 파견된,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한국에서 선교하신 퀴니 신부님

 

파견된 사람으로서의 신원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지금 사는 곳이 바로 주님께서 파견하신 곳입니다. 우리는 과연 그것을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내가 사는 곳과 일하는 곳, 그리고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며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 바로 그곳이 주님께서 나를 파견하신 곳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던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님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분은 바로 퀴니 신부님입니다. 신부님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1956년의 한국 땅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내던 한국인과 더불어 살도록 파견되어 오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당신의 뜻과는 달리 몇 년 동안만 한국에서 생활하시다 프랑스로 돌아가시게 되었고, 다시는 한국 땅으로 파견되지 못한 채 프랑스에서 전교회의 참사위원으로 활동하시다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몇 년 살지 않으셨음에도 한국을 사랑하고 늘 그리워하셨으며 한국말을 잊지 않기 위해 가톨릭신문, 평화신문 등을 구독하셨습니다. 방에는 늘 평화방송과 아리랑방송이 켜져 있었습니다. 제가 프랑스어로 몇 마디 말씀드리면 신부님, 그냥 한국말로 하시죠.”라고 하시곤 했습니다.

 

신부님과의 많은 추억이 있지만, 특히 파리에서 공부하던 한국 신부님들과 함께 봉헌한 신부님의 송별 미사 때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신부님께서는 당시 80세였는데, 프랑스 지방에 있는 연로한 선교사 신부님들이 머무는 양로원의 부원장으로 부임하시게 되었습니다. 80세에 양로원의 부원장으로 파견된다는 것은 매우 서글픈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달리 생각하셨습니다. 강론 때 하신 다음 말씀은 두고두고 저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저는 곧 이 집을 떠나 연로하고 쇠약해지신 옛 선교사들을 돌보러 가게 됩니다. 그분들이 계신 몽브통(Montbeton, 외방전교회 양로 시설)에서의 삶은 저에게 아시아 교회에 새로운 방법으로 봉사하는 기회를 줄 것입니다. 옛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파견된 여러 나라에서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도록 자신들의 모든 것, 건강까지도 기꺼이 내어 주었습니다. 어떤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가난, 배고픔, 공산주의 치하의 감옥, 게다가 전체주의에 의한 추방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이제 그들에게 가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선교지에서의 평상적인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것임을 알려 줄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더 이상 아시아 교회를 위해 계속해서 봉사할 수 없다고 해도, 이것이 커다란 교회 공동체의 불필요한 구성원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기도 그리고 고통을 용기 있게 받아들일 때 그들은 신비로운 방법으로 아시아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기쁨과 마음의 평화 안에서 그렇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제 새로운 소명인 것입니다.”

 

강론을 마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지나가던 사람이 한 농부에게 당신은 어떤 날씨를 가장 좋아합니까?’라고 묻자, 농부는 그날의 날씨요.’라고 대답합니다. 이처럼 떠나는 것이 제게 행복할까요?’라는 물음에 저 역시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곳이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는 곳이기에, 저는 언제나 그곳에서 행복할 것입니다. 그분께서 보내주시는 어디에서든 말입니다.’”

 

신부님께서는 병중에 계시거나 연로하신 신부님들이 기도를 통해, 그 존재 자체로 선교에 동참하는 것임을 일깨워 주기 위해 양로원에 파견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은 그곳에서 맡겨진 소임을 충실히, 그리고 훌륭히 해내셨습니다. 이후 신부님께서 급성 백혈병으로 선종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 품으로 가셨지만, 그분의 삶과 영성, 그리고 고결한 선교사 정신은 길이길이 제 마음속에 깊이 남아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선교, 풍경의 일부가 되는 것

 

수원교구 월간지 〈외침〉 취재차 캄보디아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 선교사, 현지인들과 며칠을 지내며 그곳에서 교회의 삶을 배우고자 했습니다. 당시 프놈펜에서 활동하시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올리비에 주교님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주교님께 선교란 어떤 것인지 여쭈었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교란 그곳 풍경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선교사가 파견된 곳이 처음에는 낯설고 적대감까지 느껴지는 곳이지만 조금씩 그곳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과 함께 있어도 자연스러워질 때, 그곳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때 선교는 성공한 것입니다.”

 

선교사들은 파견된 곳에서 살면서 선교사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웁니다.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 때, 그곳 풍경의 일부가 될 수 있을 때, 파견된 존재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파견된 존재로 사는 기쁨이 있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러 가는 사람의 발걸음은 남다릅니다. 우리가 파견된 곳에서 그곳 풍경의 일부가 되어 삶을 나눌 정도가 될 때, 가장 소중한 신앙과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를 기쁜 얼굴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삶의 자리, 그곳이 나의 파견지

 

내가 있는 바로 그곳이 주님께서 나를 파견하신 곳입니다. 이러한 선교사 정신을 갖고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사는 곳이 생의 마지막을 보낼 곳이라면 어떨까요? 한 번은 어머니께서 수술 후 요양을 위해 실버타운에 잠시 머무신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어르신들이 모여 살고 계셨습니다. 그분들과 미사를 봉헌하며, 어쩌면 그분들에게는 그곳이 생의 마지막 종착역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문득 그분들의 마음이 서글프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퀴니 신부님의 마지막 강론을 기억하며 마음을 달리 먹게 되었습니다. 삶에 다른 가능성이 사라진다고 해서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존재가 선물처럼 주어진 것이라면, 함께 사는 사람들 역시 선물과 같은 존재라면, 바로 거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신앙으로 주님의 자비와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바로 그곳이 주님께서 당신 일을 위해 나를 파견하신 곳임을 깨달을 수 있을 때, 나의 삶은 완전히 새로워질 것입니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5)

 

사제로 살면서 가끔 회의가 들 때가 있습니다. 특히 사목 현장의 현실이 내가 바라던 이성과 크게 다를 때 그러합니다. 그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학교에 가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저는 심란했습니다. 교구청에서 여러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고 있던 터라 매우 아쉬웠습니다. 그때 조셉 도레 대주교님께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답이 왔습니다.

 

신부님께서 신학교에 파견된 것 그 자체로 교회가 신부님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대주교님의 말씀에서 큰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있는 그곳은 하느님께서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신뢰의 증거인 것입니다.

 

신학교에 살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도 많았습니다. 특히 초창기에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차이에서 오는 회의감으로 힘들어했습니다. 한 번은 프놈펜에서 활동하시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뱅상 세네샬(Sénéchal)신부님이 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신부님과 며칠을 함께 지낸 후, 신부님께서 캄보디아로 돌아가시기 직전에 저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바오로), 혹시 너에게 맡겨진 학생들, 네가 그들과 함께함으로 인해 그들에게 일어나는 변화와 성장을 보면 어떨까?” 신부님의 말씀은 그동안 이상에 파묻혀 나에게 맡겨진 양 떼를 돌보는 일에 마음을 쓰지 못하던 저 자신을 돌아보게 했고, 이후 신학교 생활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 지치고 힘들어하는 저를 발견할 때, 제게 맡겨진 양들이 있음을 기억합니다. ‘누군가가 아닌 무엇(이상, 계획, 생각 등)’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파견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직무(소임)와 함께 직무를 수행할 대상(사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주님과의 관계는 부르심과 응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파견된 삶으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맺는 관계로 이어집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나에게 맡겨진 사람을 다시 바라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명은, 그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생육성에서 양육돌봄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의 성소를 쇄신하는 것은 바로 나에게 맡겨진 사람들입니다. 부부 싸움을 하는 부부가 자녀를 보고 마음을 다잡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과 함께 삶의 고민을 나눌 때, 나는 변화되고 그들과 하나가 됩니다.

 


 

봉사를 통한 내적 변화

 

프랑스 유학생 시절 저의 부제 서품을 주례해 주신 오영진(Olivier de Berranger) 주교님을 기억합니다. 주교님은 한국에 프라도 사제회를 처음 도입하시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셔서 생드니 교구장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주교님과 부제품을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된 저는 유학 후 파리에 갈 때마다 주교님을 뵙곤 했습니다. 한 번은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제는 직무를 통해, 신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성화됩니다. 사제가 고해소를 들어갈 때와 나올 때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성무를 집행함으로써 사제는 성화되는 것입니다.”

 

사제는 신자들의 죄 고백을 들으며 성화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신자들의 죄 고백은, 그 자체로 기도이며 신앙 고백입니다. 고백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마음의 중대한 결심을 내렸다는 증거이며, 하느님의 은총으로 죄와 악의 사슬을 벗어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제는 신자들의 죄 고백을 들으며, 그 안에 담긴 신자들의 마음속 갈등, 번민을 함께 나눕니다. 용서와 함께 주님께서 열어 주시는 새로운 삶을 함께 찾고자 고민합니다. 그 과정에서 사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자와 하나 되며 내적으로 정화되고 성화됩니다.

 

신자들의 죄 고백을 들으면서 오히려 사제가 성화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경험은 사제만의 것이 아닙니다. 사도직을 수행하는 수도자와 신자들도, 맡겨진 소임을 수행할 때 스스로 성화됨을 경험합니다. 봉사는 교회와 타인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봉사의 가장 큰 혜택을 받는 것은 바로 봉사자인 것입니다.

 


 

피정을 마무리하며, 당부합니다

 

떠남의 미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떠남은 여행이나 피정을 위해 일상을 떠난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지만, 반대로 여행이나 피정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에게도 해당하는 말입니다. 피정은 우리에게 크나큰 은총이자 축복의 시간이지만,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을 걸어야 하는 숙제도 남깁니다. 영성가들은 말합니다. 피정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착지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이죠.

 

우리가 살았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피정 중에 주님과 함께 머물렀던 아름다운 시간과는 전혀 다른 환경, 상황,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현기증이나 답답함이 밀려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는 맙시다. 중요한 것은 피정을 통해 우리가 변화했고, 새로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변화된 우리를 통해 우리가 돌아가 만날 사람들, 그곳의 상황 등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자 하십니다. 영성의 향기,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며 일상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일상에서 나에게 맡겨진 소임과 만나야 할 사람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 앞에 어떤 마음가짐과 모습으로 다시 설 것인가요? 이번 피정은 나에게 어떤 마음과 구체적인 결단을 갖고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할까요? 동방 박사들이 다른 길로 자기 고장으로 돌아간 것처럼, 우리도 이제 새로운 결심과 모습으로, 우리 각자의 집과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앞날에 어떠한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실까요?

 

무엇보다 우리가 떠나온 곳이,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파견하시는 곳임을 기억합시다. 피정이 나를 다시 발견하는 시간이었다면, 주님과 관계를 새롭게 하는 시간이었다면, 파견되어 가는 곳에서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삶으로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돌아감은 피정과의 단절이 아닌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피정에서 한 일을 이제 일상에서 이어서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부르심의 매력을 풍기는 사람, 자기만의 고유한 색을 내는 꽃이 되고자 합니다.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닌, 나에게서 풍기는 고유한 향기와 색깔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원에 다양한 꽃들이 아름다운 전체를 이루듯, ‘라는 존재는 혼자가 아닌 다양한 색깔을 띠며 다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더욱 예쁜 색과 빛과 향기를 발산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떤 향기와 색깔로, 어떻게 그들과 어울리며, 아름다운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제 돌아갈 일상이나 그곳에서 만날 사람들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설렘의 대상으로 다가옴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희망으로 부푼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머무르신 주님께서 바로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우리 자신을 기다리고 계실 테니까요.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르 16,7)

 

주님께서 보내시는 그곳, 주님께서 나를 기다리시는 그곳, 이제 그곳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합시다.

 


 

파견된 존재로서의 자각

 

피정을 마무리하며, 우리 각자가 파견된 존재임을 다시 의식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이번 피정을 통해 우리를 각자의 삶의 자리로 다시 파견하십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돌보아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이며,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새롭게 다가가야 할까요? 이는 피정을 마무리하며 각자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 함께 묵상해요!🙏

 

·요한 20,15-19

·1베드 5,2-4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다음의 질문에 답해 봅니다

 

  • 나는 파견된 존재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있나요?
  • 내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 내가 돌보아야 할 양 떼는 누구입니까?
  •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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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수원교구 사제.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이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습니다. 축구와 글쓰기를 즐기며, 교회 쇄신과 시노달리타스 구현, 젊은이에게 신앙을 전하는 일, 희망의 신학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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