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팝가수이자 지금은 고인(故人)이 된 마이클 잭슨의 노래 중 ‘Man in the Mirror’라는 곡이 있다. 이 노래의 가사가 좋아서 개인적으로 자주 듣는다. 거울 속의 사람은 누구일까? 나 자신이다. 노래 가사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If you want to make the world a better place. Take a look at yourself, and then make a change.”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를 만들어 보세요.]
“I'm starting with the man in the mirror.”
[나는 거울 속의 사람과 함께 시작하려 합니다.]
즉,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싶으면 나 자신부터 시작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이 간절히 바라는 하느님 나라 건설은 다른 누군가가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부터 시작해야 함을 말하고자 한다.
지구상에는 매일 약 75억이라는 엄청난 수의 심장이 뛰고 있다. 그리고 이 엄청난 사람들의 피는 똑같이 붉은색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똑같은 피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말은 우리 각자가 하느님의 숨결을 자신 안에 품고 살고 있으며, 저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하느님의 흔적과 선물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모두 형제다. 그리고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마태 23,8-10)
우리의 모습이 어떻든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는 같은 아버지를 가진 자녀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자신의 꿈과 하느님의 씨를 지니고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길을 걸어가다 잠시 멈추어 서서 사랑 가득한 시선으로 다른 이들을 바라본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하느님의 눈과 손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사람들은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직책에 있지도 않고, 많은 돈이 들어 있는 은행 계좌도 가지고 있지 않을뿐더러 소셜 미디어에 수백만의 팔로워나 구독자를 가진 것도 아니다. 그저 선량함, 관대함, 환대하는 정신, 상냥함, 다른 이들에 대한 깊은 동정심 같은 것만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마음에 품고 아무 대가 없이 헌신하는 이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인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어디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금세 찾을 수 있다. 내 주위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 누가 봐도 착한 사람,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삶의 온기를 나누는 따뜻한 사람…….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 사람들만의 특권이 아니다. 우리 또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2016년 아주 추운 겨울이었다.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끝내고 신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공동체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떤 노숙인 할머니 한 분이 엄동설한에 차가운 바닥에서 얇은 요 하나만 걸치고 추위에 벌벌 떨며 엎드려 구걸하고 있었다.
할머니를 보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따뜻한 국밥이라도 한 그릇 사 드릴 수 있을까 주머니를 뒤졌는데, 주머니에는 교통카드 한 장과 핸드폰만 덩그러니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지나쳐 버스를 기다리려고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할머니가 계속 보였다. 핸드폰을 들고 경찰에 연락해야 할까 생각하던 중, 어떤 이름 모를 수녀님 한 분이 그 할머니에게 다가가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할머니에게 입혀 주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같은 수도자라 알고 있다. 청빈의 삶을 사는 수녀님에게 그 외투는 아마도 추운 겨울을 함께 보낼 하나밖에 없는 외투일 것이다. 수녀님은 자신에게 아주 소중한 외투를 할머니에게 벗어 드리고 얇은 수도복 차림으로 사람들이 많은 명동거리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이 수녀님이 어디 수도회이신지도 모르고 성함도 알지 못하지만, 수녀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나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걱정만 했을 뿐 추위에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외투를 벗어 드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그럴 만한 용기도 없었다.
그 자리에 예수님께서 계셨다면 분명 그 수녀님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수녀님의 선한 모습은 10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났어도 내 머릿속뿐만 아니라 가슴속에 살아 있다. 고작 3분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나는 선량함과 관대함, 삶의 온기를 나누는 따뜻한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수녀님이 보여 주신 모습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인의 모습이었다.
내가 만난 수녀님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수녀님과 같은 좋은 마음을 가지고 선한 일을 하며 관대한 마음으로 온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성인은 꼭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선포되어야만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만났던 학교 선생님일 수도 있고, 부모님일 수도 있고, 직장 상사 혹은 후배일 수도 있으며, 사랑하는 자녀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옆집에 사는 형제자매일 수도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선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 헐벗고 굶주린 이들을 마음을 다해 돌보는 사람,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이들(마태 25,31-46)이 바로 이 시대의 성인이다.
사실 우리는 성인이 되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그래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단순화된 기도 생활이다. 단순화된 기도 생활은 화살기도를 내 삶 안에서 반복적으로 바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긴 시간 앉아서 기도문을 읊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이보다 더 큰 도움을 주는 것은 내가 하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매 순간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성화는 무엇인가 특별한 일을 해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 안에서 단순하고 기쁘게 살아가며 그것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면 된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된다면 우리 눈과 마음은 하느님을 증거하는 눈과 마음이 될 것이다.
각자 몸담고 살아가는 제 삶의 자리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기쁘고 충실하게 수행하며 살아간다면 분명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고유한 방법으로 성덕의 길을 제시해 줄 것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사람, 생각만 해도 마음 따뜻해지는 사람,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 자주 대화를 나누고 함께 차를 마시고 싶은 사람, 거기에 조금 더 보탠다면 매우 큰 사랑으로 사소한 일상을 정성껏 살아가는 사람, 작고 보잘것없는 피조물 안에 깃든 하느님의 손길을 찾는 사람, 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늘 환한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이 곧 오늘날의 성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성화의 길은 미룰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할 일을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실천해야 한다. 성인이 되려면 복음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복음 말씀을 듣고, 들은 것을 머리에 새기고, 머리에 새긴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것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할 때와 마칠 때 성호경을 긋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성호경은 우리의 머리와 가슴 그리고 양어깨에 큰 십자가를 긋는 것이다. 말로만 내뱉는다고 기도가 되지는 않는다. 기도하는 바를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양팔로 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오늘, 이 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성화의 길로 초대하신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나도 성인이 되겠다고 굳게 결심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