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맡기는 용기

영성과 신심

내맡기는 용기

응답을 넘어 내맡김으로 나아가는 기도의 여정

2026. 02. 20
읽음 274

6

6

 

혹시 지난 편을 안 보셨다면먼저 읽어 보시길 추천해요.

 '생명을 전달하는 기쁨'

 


 

안녕하세요, 한민택 신부입니다.

베드로 12,23-25 말씀으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분께서는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당신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었지만, 이제는 여러분 영혼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께 돌아왔습니다.”

 

성소의 길,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은 하느님 앞에서 진정한 자유를 지향합니다. 하느님과 무상의 관계, 아무 보답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관계를 맺기 위해 넘어야 할 마지막 관문은 포기입니다. 포기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옮기시려는 순간 가지셨던 마음이며, 겟세마니 동산에서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가지셨던 마음입니다. 그것은 하느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내맡길 수 있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포기는 무상의 관계를 향한 마지막 단계이며, 생육성generativity’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합니다. 창조주께서 창조 세계를 다스리시는 원리와 힘은 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느님의 포기하심을 자신의 것으로 하고자 합니다. 나의 삶을 내맡기는 것에 대한 묵상은 부르심의 매력을 한층 더해 줄 것이며, 나를 버리고 지우는 것에서 진정한 기쁨을 얻도록 이끌어 줄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갈라 5,13)

 

 


 

실패의 경험이 디딤돌이 되어 새로운 길로

 

누구나 시련과 위기를 겪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도전 앞에서 결단을 내리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사제, 수도자 혹은 평신도로 살아오면서 경험한 삶과 신앙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밤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제자들처럼, 우리도 실패의 경험이 있습니다. 좌절과 절망도 겪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저마다 아픈 기억과 상처도 안고 살아왔습니다. 사람들 앞에 내세울 것 없는 삶, 성공하지 못한 초라한 삶이라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은 그 모든 실패와 좌절의 순간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영적 여정으로 나아가는 마음가짐을 요구합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성덕의 길로 이끄시는 곳은 스포트라이트가 빛나는 삶보다는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삶 한가운데입니다.

 

사제 양성에 평생을 헌신하신 프랑스의 조셉 도레 대주교님께서 오래전 수원 신학교를 방문하신 적이 있습니다. 교수 신부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신부님께서 주교님께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학생들이 성소로 고민할 때 어떤 조언을 해야 할까요?” 대주교님은 답하셨습니다. “구체적인 상황이 어떤지 모르기에 즉각적인 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학생이 신부님께 신뢰를 갖고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벌써 그 어려움을 이겨 내고 있는 것임을 말해 주는 것이죠.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겪을 때 중요한 것은 그 어려움을 꺼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어려움을 해결하고 그렇지 못하고는 그다음 이야기입니다신뢰하는 누군가에게 그 어려움과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이미 넘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삶을 너무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지 않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시는 분이시기에, 그분과 함께라면 우리 삶의 부정적인 것들은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되어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이끌어 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놀라운 일이란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도록 하시며(로마 4,18 참조) 새로운 내일을 향해 나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나약함과 한계를 수용할 때 열리는 자유의 길

 

영적 여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각자의 나약함과 한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되어 오실 때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계획은 인간의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찾기 위해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곳을 바라보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당신의 무한한 권능을 떨치시며 놀라운 구원을 이루어 내십니다.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을 각자의 삶 안에서 읽을 수 있는 신앙의 눈이 필요합니다. 구유에 누우신 연약한 아기 예수님에게서 인류의 구세주를 알아볼 수 있는, 십자가 위에 매달려 상처 입고 참혹히 돌아가신 예수님에게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승리를 읽을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자기 낮춤을 통해 죄와 악과 죽음을 이기신 것입니다.

 

교부들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은 인간이 하느님이 되게 하기 위해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460항 참조)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신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한다는 것은, 나약함과 한계가 없는 완전무결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나약한 인성을 취하신 예수님과 일치하여, 그분의 신적인 본성에 참여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나약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구원과 자유의 길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나약함과 한계를 없애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것을 우리 안의 긍정적인 측면, 은총으로 빚어진 재능과 선물에 통합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이는 사제 지망생이 거쳐야 하는 중요한 관문이기도 합니다.

 

직무 사제직을 위한 양성 과정 동안 신학생들은 자기 자신에게 신비이다. 이러한 신비 안에는 통합되어야 하는 인간성의 두 가지 측면이 얽혀 존재한다. 신학생은 한편으로는 은총으로 빚어진 재능과 선물을 드러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한계와 나약함을 드러낸다.”                                     

《사제성소의 선물》 28

 

 


 

시련 속에 피는 꽃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삶에서 닥치는 시련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합니다. 시련은 우리가 겸손을 배우게 하고 약함을 인정하도록 가르치는 학교와 같습니다. 시련은 우리가 진정 아름다운 꽃으로 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양분입니다.

 

시련의 새로운 의미에 눈뜰 때 우리는 진정 변화하고 성장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인격이 맛 좋은 술처럼 익어 가는 것,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것에 비길 수 있습니다. 시련은 우리 인격이 맛 좋게 익어 가고 좋은 향기를 내는 데 필요한 누룩일 것입니다. 시련 없는 성장은 모래 위의 집과 같아서 어느 순간 시련이 찾아오면 와르르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동방 박사들에게 닥친 위기는 그들이 알 수 없는 미래를 맞닥뜨리는 법을 배우게 했습니다(마태 2,1-12 참조).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걷는 것입니다. 여기서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 없고 절망스러울 때 용기는 빛을 발하며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용기를 강조하시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

 

성경은 위기 없는 평온한 기쁨이 아닌, 위기를 거치며 선물처럼 주어지는 평화와 기쁨을 이야기합니다. 시련과 위기를 거치는 가운데 우리 안에 일어나는 변화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한 번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긴 여정 안에서 무르익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닮아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변해 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9)

 

나자렛 성가정도 이상적인 가정이 아닌 위기 속의 가정이었습니다. 기도하는 가정, 순례하는 가정이었기에 위기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가 우리에게 알려 준 것

 

시련 중에 드리는 기도의 의미와 효력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시련 중에 드리는 기도는 과연 효력이 있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같은 효력은 아닙니다. 믿음 안에서 걷고 성장하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세상이 추구하는 유용성을 넘어서는 다른 차원의 효력입니다.

 

기도에는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과 흡사한 점이 있습니다. 초보자의 기도는 자기가 원하는 것만 일방적으로 나열하는 기도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내가 마음먹은 대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배우며 기다릴 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씩 나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맡기는 법을 배웁니다. 결국 기도를 통해 포기하는 법, 주님께 맡겨 드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정화되고 성숙해 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한, 즉각적인 답을 바라는 기도를 넘어서게 됩니다.

 

기도는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이 아닌, 관계를 배우는 학교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를 가르치시는 양성의 장소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을 사는 것인지를 가르쳐 주시는 학교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친해지도록 합니다. 그분의 침묵과 활동 방식, 지혜와 기다림에 친숙해질수록 그분의 깊은 마음에 길들여집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닮도록 합니다. 생명을 열망하고, 탄생시키고, 돌보고 포기하는 사랑을 배우도록 합니다.

 

한 시골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병문안을 간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 뭐 하고 지내셔요?” 할머니께서 답하십니다.

매일 묵주 알 돌리는겨. 근데 예수님이 잘 들어주지는 않으셔. 그래도 계속 기도하는겨. 들어주실 때까지.”

 

기도는 위기와 시련 속에서도 살아 내는 삶의 방식입니다.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열고 있음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위기와 시련 중에는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길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해 갈 것입니다. 우리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평화로 가득 찬다는 것을 배울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포기내맡김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다시, 우리 삶으로

 

폴 리쾨르라는 프랑스 철학자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어떤 난관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법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가 되어 많은 이들의 삶에 빛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시련과 난관은 닥칩니다. 무릎 꿇고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다시 시작하여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실패는 끝이 아닌 징검다리일 뿐입니다. 진정 빛나는 사람은 아무 어려움 없이 정상에 다다른 사람이 아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전진해서 목적지에 다다른 사람입니다. 우리는 약하고 한계 지어진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보배롭게 빛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내맡기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고비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잘 넘겨 왔습니다. 포기, 내맡김은 생명 전달의 원리이며, 기쁨이라는 선물을 선사합니다. 시련의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뢰와 용기 그리고 항구함입니다. 결국 하느님께서 승리하십니다. 그러니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곁에는 함께 길을 걷는 동료가 있습니다. 시련 중에 우리는 한 배를 탄, 같이 길을 걷는 동료라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닫습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내맡기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우리의 걱정과 근심뿐 아니라 내일의 운명까지도 내맡길 수 있다면, 우리는 성공할 것입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나에게 맡겨진 소임을 기쁨과 평화 안에서 힘차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함께 묵상해요!🙏

 

· 필리 2,1-11

이 성경 말씀을 읽고 자기 비움, 벗어 버림에 대해 묵상해 봅시다. 그리고 내맡길 수 있는 용기를 청해 봅시다.

 


 

🔗함께 읽으면 더 좋은 아티클

 

[허영엽 마티아 신부] 절망 속에서도 부활할 수 있을까?

• [은성제 요셉 신부] 자기를 채워야 산다고 요구하는 세상, 자기를 버려야 산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문재상 안드레아 신부] ‘견뎌 낸다는 것에 대하여

 

Profile
수원교구 사제.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이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습니다. 축구와 글쓰기를 즐기며, 교회 쇄신과 시노달리타스 구현, 젊은이에게 신앙을 전하는 일, 희망의 신학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이 함께 본 콘텐츠

시리즈10개의 아티클

우리 피정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