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나와 취향이 비슷하셨던 것 같다. 유학 시절 로마에 살면서 내 관심을 사로잡은 사람이 있었다. 나는 매일 한 성당을 찾아 그의 그림을 감상했다. 로마 시내 중심에 자리한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Santa Maria del Popolo) 성당에는 그가 그린 베드로의 죽음과 바오로의 회심을 담은 그림이 있다. 그의 그림은 마치 연극과 같았고, 어둠과 빛을 극도로 대비시켜 나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심지어 나의 석사 논문 주제를 그 성당에 있는 〈카라바조의 ‘바오로의 회심’〉으로 정할 정도로 그의 그림을 좋아했다.
나는 더불어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샤갈의 〈하얀 십자가〉를 정말 사랑했다. 그는 다양한 색을 사용하기로 유명하며, 특히 청색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화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나의 눈을 사로잡은 그의 그림은 화려한 색채로 꾸며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체가 하얀색으로 덮여 있었고 색은 절제되어 있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여러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림으로 〈하얀 십자가〉를 꼽으셨다. 더불어 교황님은 2013년 ‘내셔널 가톨릭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큰 울림을 준 화가로 카라바조(1571∼1610)를, 좋아하는 그림으로 샤갈의 〈하얀 십자가〉를 꼽은 바 있다.
2013년 출간된 《교황 프란치스코: 말로 본 그의 삶》에서도 교황님은 샤갈의 〈하얀 십자가〉를 가장 좋아하는 미술 작품으로 꼽으셨다. 책에는 “십자가 처형을 잔혹하지 않고 희망적으로 표현했다. 평정심을 가지고 고통을 묘사했다. 내게는 샤갈이 그린 그림 중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라고 교황님이 말씀하신 기록이 있다. 이 책에서 교황님은 샤갈을 ‘유대인이면서도 예수의 존재를 믿은 사람’으로 설명했다.
나를 사로잡은 화가, 샤갈
샤갈은 러시아(현 벨라루스)의 가난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시골의 미술 학교를 거쳐 페테르부르크 왕실 미술 학교를 졸업하고, 1910년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아카데미 줄리앙에서 공부하면서 피카소와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다. 빛의 도시이자 무엇보다 자유의 도시인 파리에서 샤갈은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샤갈이 처음에 파리에 도착했을 때, 입체파(Cubism)가 지배적인 예술 형태였으며, 프랑스의 예술계는 여전히 19세기 물질주의에 강하게 영향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러시아에서 익힌 색채 재능과 신선하고 감성에 대담한 반응, 단순한 시에 대한 느낌과 유머를 갖추고 있었다. 그는 여유 시간이 있으면 갤러리나 살롱, 그리고 특히 루브르 박물관에서 렘브란트, 반 고흐, 르누아르, 마티스, 폴 고갱, 밀레, 마네, 모네, 들라크루아 등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연구했다.
샤갈은 독일에서 전시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그 성공을 바탕으로 베를린에서 화가로서 자리를 다졌다. 전시회는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독일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을 호평했다. 그는 야수파의 색채를 자기 나름대로 소화하여 아름답고 아담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고국으로 돌아와 8년간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1922년 파리로 돌아와서 프랑스에 귀화했다. 이후 선명한 색채로 사람과 동물을 결합해, 환상적이며 신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나치가 독일을 점령한 후 그의 그림 세 점이 독일군에 의해 불태워졌고, 독일에 있던 그의 그림은 헐값에 팔려 나갔다. 폴란드 여행 중에는 ‘더러운 유대인’이라는 모욕을 당하며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이후 1941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자 샤갈은 더욱 큰 위험을 느끼고,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다시 미국으로 도피하면서 새로운 언어와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샤갈은 판화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특히 성경 이야기를 소재로 한 걸작 동판화를 남겼다. 그의 작품에서는 러시아계 유대인의 혈통에 흐르는 대지의 소박한 시정을 담은 동화적이고 자유로우며 환상적인 특색과, 자신만의 시적이며 낭만적인 모습도 함께 느껴진다.
고통의 시대를 그린, 하얀 십자가
지금까지 다양하게 해석되는 이 그림은 1938년 11월에 독일에서 있었던 “크리스털 밤(kristallnacht)” 사건을 계기로 샤갈이 그리게 되었다. ‘수정의 밤’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은 1938년 11월 9일 밤부터 11월 10일까지 나치 독일에서 벌어진 유대인 대박해 사건이다. ‘수정의 밤’이란 명칭은 이 사건으로 유대인의 가게와 건물, 회당들의 유리창이 모두 부서진 것에서 유래되었다. 이때 희생된 사망자의 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황상 1~2천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의 첫인상은 샤갈 그림의 독특한 특성으로 몽환적으로 느껴지지만, 작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처참한 고통이 담겨 있다. 샤갈은 유대인으로서 느끼는 시대의 고통을 이 그림 속에 담아냈다.
전체적으로 회색과 백색이 주를 이루는 이 그림 속의 장면들은 대부분 동적(動的)이지만 중앙의 예수님만이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무겁고 음울한 분위기 속에 중앙을 가로지르는 하얀 빛, 그리고 중앙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이 이 그림 속에서 평온해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

샤갈은 당시 시대의 고통과 슬픔을 설명하기에 가장 합당한 상징을 십자가 위의 한 인간에게서 발견했다. 바로 십자가에 처형된 인간 예수다. 예수님께서는 T자 형태의 큰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으로 그림 중앙을 비추는 빛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십자가와 그분이 걸치신 옷가지도 모두 하얀색으로 표현되었다. 십자가 위의 I.N.R.I(Iesus Nazarenus Rex Iudaeorum, 유대인의 왕 나자렛 예수)는 두 번 쓰여 있다. 그 밑에는 히브리어(Jeshu ha-noszrì malchà de-Jeudai)로 적혀 있다. 머리에는 가시관 대신 천(유대인 표식)을 감고 있다. 허리에 두른 천은 전형적인 유대인 장식으로(Tallit Gadol - 유대인이 기도할 때 사용하는 숄) 예수님께서 유대인임을 강하게 드러낸다.
혼돈과 파괴의 장면들이 십자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주변 전체가 혼돈과 무질서 그리고 고통 속에 절규하는 인간들로 가득하다. 십자가 밑에는 위로자이신 성모님과 제자들 대신 박해받는 유대인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그려 놓았다. 기도서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나뒹굴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십자가 아래에는 본래 애통해하는 성모님과 제자들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이 십자가에는 모두가 등을 돌리고 도망치기에 바쁘다. 색은 파괴자와 도망치는 이들에게만 입혀져 있다.
십자가 발치에는 유대 전통의 일곱 촛대(메노라, Menorah)가 놓여 있고, 그곳에서 빛이 퍼져 나온다. 일곱 개의 촛대는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 숲에서 불에 타지 않는 떨기나무에서 나타난 하느님을 상징하고 있다. 탈출기 25장 31절부터 40절에는 성막을 만들 시절의 메노라 제작에 대한 하느님의 지시가 나와 있다. 샤갈은 십자가 앞에 촛대를 안치시키고 높은 곳에서 내리는 빛줄기와 촛불의 광채를 종교적 아우라로 부각함으로써 구세주에 대한 자신의 갈망과 종교심을 고스란히 표현했다. 마치 감실을 밝히는 촛불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촛불은 혼란 속에서도 고요히 타오르고 있다.
십자가 위의 예수, 침묵하는 세상
성경에서 사다리는 구약에서 ‘야곱의 사다리(창세 28,13-22)를 의미하며, 야곱은 꿈에서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하늘로 통하는 사다리를 보았다. 이는 땅과 하늘을 잇는 신성한 통로로 해석되며, 종종 신앙의 여정,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예수 그리스도, 또는 영혼의 상승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사다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그림에서는 타나크(토라 두루마리) 혹은 율법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사다리와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어짐을 통해 그분이 바로 구약과 신약을 이어 주시는 한 분이신 하느님이심을 상징한다.
그러나 십자가 양쪽 옆의 세상은 혼란과 고통에 빠져 있다. 폭동과 약탈과 방화, 살인, 파괴, 강제 추방으로 찢긴 세상이다. 오른쪽에는 파괴된 회당에서 화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나치 군복을 입고 팔뚝에는 완장까지 찬 이가 보인다. 성전 천막에 불을 붙이고 성스러운 집기들도 다 밖으로 던져 버렸다. 성전 앞, 길바닥에는 파괴된 등과 뒤집힌 의자가 나뒹굴고 있다.
그림 왼쪽 윗부분에는 파괴된 마을의 집들이 그려져 있다. 마치 종이로 지어진 집처럼 연약하고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한 이곳은 바로 샤갈 자신이 살았던 유대인 정착촌이다. 그림에는 박해받는 유대인의 고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그 위 배경에는 러시아 혁명 당시 폭도들이 손에 무기를 들고 붉은 깃발과 함께 등장하여 마을을 약탈하고 불을 지르고 있다.
그 아래에는 파도에 휩쓸리며 표류하는 목선 위에 유대인 난민들이 타고 있다. 그들은 배 위에서 도움을 호소하며 손을 흔들고 있으며, 몇몇은 이미 기력을 다한 듯 포기한 모습도 보인다. 노인들과 아이를 안은 여인들도 보이는데, 모두 절망감에 휩싸여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그림 아래쪽으로는 한 늙은 유대인이 피난민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푸른색 옷을 입고 자루를 등에 멘 채 달아나고 있다. 불타는 율법서의 연기를 가로질러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왼쪽에는 ‘나는 유대인입니다(Ich bin Jude)’라는 표시를 목에 건 푸른색 옷을 입은 노인이 두 손을 펼친 채 서 있다. 평화와 안정을 상징하는 푸른색 옷을 입고 자신은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있음을 두 팔을 벌려 확인시키고 있지만, 그 모습은 마치 낙인찍힌 짐승과 다를 바 없다.
그림 가장 하단의 골고타 언덕 구석에는 그림 속 상황과 무관하거나 탈출하려는 듯한 노인과 공포에 질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이 무채색으로 그려져 있다. 아이를 안은 여인의 몸의 절반은 이미 그림 속에서 빠져나갔다. 이를 통해 상황의 심각성과 공포를 함께 느끼게 하고 있다.
그림 가장 위에는 마치 하늘의 천사들처럼 그려진 네 명의 사람들이 보인다. 얼굴을 감싼 채 엄청난 고통으로 울부짖는 한 노인과 하소연하듯 말을 건네는 랍비의 모습을 한 두 노인, 차갑고 옅은 어둠 속에서 소스라치게 놀라는 여인도 눈에 띈다. 어떤 이는 이들보다 훨씬 크게 그려진 한 랍비를 모세라고 주장한다. 그는 초월적 빛의 거의 절반을 벗어난 형태로, 아래를 가리키는 손짓을 하며 놀라움을 표현한다. 그리고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며 이스라엘 후손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있다.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탄식하며 랍비들과 여인을 위로하지만, 그가 모세라는 주장을 뒷받침해 줄 마땅한 근거는 없다.
이 그림은 마치 지금의 현실을 그대로 묘사한 것만 같다. 온 세상이 고통 속에 사는 이들을 외면하고,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그렇게 절망에 빠진 난민들과 어린아이들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화가 샤갈은 그림 속 자유와 생존을 추구하는 유대인들을 통해 생명과 구원을 갈구하는 근원적인 인간 실존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전쟁과 배고픔, 생존을 위해 울부짖는 그 목소리를 애써 외면한다.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 가운데 위치한 십자가 위의 예수님이다. 샤갈은 이 절망적 상황에서 동족과 인간을 구원할 구세주는 십자가 위에 못 박혀 죽은 유대인 예수님밖에 없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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