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묻지 마세요”

성경 이야기

“내 이름을 묻지 마세요”

그가 그분을 만난 뒤로 -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를 찾아서(1)

✨요한 복음에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한 제자가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불린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는 왜 끝내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을까요?

 

📖오늘은 이 신비로운 제자의 이야기를 따라가 봅시다.

 


 

성경을 관심 있게 읽는 독자라면 요한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신비로운 존재에 대해 한 번쯤은 궁금증을 품어 보았을 것이다.

 

  • 요한의 제자였지만 예수님을 따라간 제자. 만찬 때에 주님의 품에 안겨 있던 이.
  •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께로부터 성모님을 어머니로 선물받은 이.
  • 마리아 막달레나가 전한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함께 무덤에 한달음에 달려간 이.
  • 호숫가에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알아본 이.
  • 이토록 복음서에서 그 누구보다 큰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철저히 익명의 베일에 가려진 제자.
  • 주님의 사랑을 가득히 받고 이 소중한 복음서를 기록하였지만 끝내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했던 신비로운 인물.

 

우리가 마지막으로 살펴볼 인물은 바로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이다.

 

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요한 복음에서 여러 차례 등장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이라는 호칭이 붙지 않은 익명의 제자도 복음서 초반에 언급된다는 점이다.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그곳에 다시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요한 1,35-37)

 

처음에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던 이 두 사람 중 한 명은 이후 안드레아로 밝혀지지만(1,40), 다른 제자는 끝내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 제자를 과연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로 볼 수 있을지는 잠시 접어 두고, 그 제자가 누구일지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왜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로 표현했을까?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할까? 비록 이 수식어는 그가 예수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것처럼 느끼게 하지만, 사실 그가 예수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제자는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를 모두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한 13,1)

 

더불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말씀도 제자들에게 건네지 않으셨는가.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3,34)

 

그렇다면 요한 복음의 저자는 왜 이 제자를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로 기록했을까? 아마도 그가 자신이 예수님으로부터 사랑받았음을 가슴 시리게 느끼고 살았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저자는 이 제자의 실제 이름이 아니라, 그가 예수님과 맺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은연중에 드러내려 한 것이 아닐까? 요한 복음에서 한 인물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것은 그가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누구일까?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 제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혹자는 이 인물을 단순히 상징적 인물로 여기고, 누군가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신다고 언급된 이들 중 유일하게 실명이 밝혀진 라자로로 보며(11,3), 심지어 현대의 어떤 학자는 이 인물을 토마스 사도로 주장하기도 했다.

 

이 제자를 요한 사도라고 처음 주장한 인물은 이레네오 교부이다. 학자들의 논쟁적 영역과는 별개로, 교회의 오랜 전승은 그 이후 요한 사도가 이 복음의 저자라는 공감대를 유지해 왔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20,30-31)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을 알고 있을 정도로 예수님과 가까운 사람이라면, 분명 그는 열두 제자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분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많은 것을 알고 그분과 깊은 교감을 나눈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네 복음서 중 유일하게 요한 복음에서 요한 사도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사랑받는 제자가 요한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물론 이 제자가 요한 사도일지, 아니면 그에 비견할 만큼 예수님과 가까운 제자일지 우리는 명확히 알 수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논쟁이 지속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치게 비판적인 여느 학자처럼 이 인물을 단순히 상상으로 꾸며낸 인물이라고 여기거나, 상징적 존재로 치부하는 것은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런 결론은 요한 복음 안에서 자세하게 언급되는 수많은 세부 내용과 생생한 증언을 하나의 지어낸 이야기처럼 인식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예수님께 사랑받는 제자

 

이 제자가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한 21,24-25)

 

요한 복음의 저자는 다양한 곳에서 매우 자세하고 정확한 서술을 한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그분을 만난 시간이 오후 네 시라고 정확히 기술하고(1,39),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신 때와 장소 또한 매우 자세히 기술한다(4,5-6).

 

그가 등장인물의 이름을 밝히는 것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요한 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을 잡으려다 귀를 다친 인물의 이름까지 말코스라고 정확히 기억하여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18,10). 그의 기억력과 세밀한 성향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잡은 물고기를 콕 집어 153마리였다고 기술한 데에서 절정을 이룬다(21,11).

 

이처럼 자세하게 복음서를 기술한 사람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복음서를 쓴 본인의 강력한 의지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 정확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우리는 요한 복음에서만 나타나는 세례자 요한의 발언으로 이를 간접적으로 추측할 수 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 3,28-30)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은 오로지 신랑이신 그분만이 더욱 크게 드러나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라는 호칭의 익명성은, 그 제자의 위치에 독자인 우리를 이입시키는 효과 역시 지니고 있다. 저자는 우리 역시 예수님을 믿고 그분께 사랑받기를 원했을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이 아티클에 등장하는 성경 인물들이 궁금하다면?

 

 
 
Profile
인천교구 사제. 현재 로마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담긴 메시지를 연구하는 것이 제 주된 일이지만, 그것을 넘어 교회 안에는 세속에서 찾을 수 없는 사랑과 배려가 존재한다는 것을 가능한, 많은 이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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