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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의 핵심 복음서를 기록한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이야기를 남겼을까요? 《알렉산드리아의 사자》를 읽고, 가톨릭출판사 편집자 7인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여러분은 복음서를 쓴 이가 어떤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기록했을지 궁금했던 적이 있나요?
장필리프 파브르의 《알렉산드리아의 사자》는 마르코 복음사가의 상처와 부르심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히시던 밤을 목격했던 그는, 평생 그날의 기억과 상처를 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끝내 자신의 두려움을 넘어, 상처 속에서 깨달은 것들을 복음서로 기록하죠.
오늘날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읽었을까요? 누군가는 마르코의 상처에 공감했고, 누군가는 ‘복음을 기록하는 일’을 오늘날 편집자의 일과 연결했습니다.
가톨릭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일곱 명의 편집자가 이 책을 함께 읽고 마르코의 상처와 믿음, 그리고 오늘 우리의 부르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아래 글은 2026년 5월에 진행한 [가톨릭출판사 편집자 독서 모임] 일부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참석자 : 구구, 나무, 라일락, 루돌프, 초키포키, 풀잎, A (모두 가톨릭출판사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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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책에서 ‘사자’는 무엇을 상징한다고 생각하나요? |
루돌프: 보통 사자는 ‘사막의 왕’이라 불리잖아요. 뭔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거침없는 열정과, 사막을 가로지를 때 느껴지는 고독함을 함께 지닌 존재. 그런 이미지 자체가 이 책 속에서 보이는 마르코의 모습을 잘 상징한다고 느껴졌어요. 또 사자 하면, ‘왕의 사자’라는 표현을 쓰잖아요. 그래서 이 책의 ‘사자’는 복음을 기록하고 전한 마르코를 가리키는 중의적 표현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무: 사자는 두려움을 느끼더라도 끝내 물러서지 않는 존재라는 점에서 존엄성을 지닌 상징 같더라고요. 마르코를 왜 하필 ‘사자’라고 했을까를 고민하면서 책을 읽었는데, 불안정함 속에서도 끝까지 자기 믿음을 지켜 나갔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인물이기 때문에 마르코를 ‘사자’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풀잎: 이 책에서 사자는 단지 ‘동물의 왕’이라는 강함의 상징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과 자신의 나약함을 마주하는 용기를 상징한다고 느꼈어요. 책 속에서 보이는 마르코는 처음부터 용감한 사람이 아니었는데요. 아마포를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달아날 정도로 두려움을 느꼈고 그 사실로 인해 오랫동안 고통받을 만큼 약한 사람이었잖아요. 그럼에도 그 두려움을 넘어서 용기와 성찰로 나아가는 존재로 느껴졌어요. 개인적으로 성찰하는 자가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만약 마르코가 성찰하지 않았다면 주님의 부르심에 다시 응답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거예요.
구구: 초반에 나오는 마르코는 동물 같은 욕구를 지닌, 아직 신앙이 깨어 있지 않은 인물이었어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는 이 책의 표지에서 보여 주듯 진정한 사자로 거듭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용감한 인물로 다시 태어났다고 느껴졌고요. 특히 마르코가 자기를 사자로 묘사하는 장면들이 정말 인상 깊었거든요. 철모르는 어릴 때의 자기 모습을 잘 자각하고 있다고 느껴졌고, 그가 커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어떤 설렘이 느껴져서 흥미롭게 읽었어요.
초키포키: 저는 사자라는 비유를 헤라클레스 신화와 엮어 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었는데요. 헤라클래스가 반인반신이잖아요. 흔히 그를 묘사하는 그림은 자기가 때려잡은 사자의 탈을 쓴 모습이에요. 그 사자가 살아 있을 때는 두려움의 존재였지만, 헤라클래스라는 영웅이 그 존재를 제압함으로써 두려움의 상징이었던 사자가, 영웅의 승리를 드러내는 표징으로 바뀌는 거죠. 근데 이걸 마르코라는 인물에 대입해 보면, 마르코도 훗날 순교하지만, 세속적인 의미로는 승리하지는 못했잖아요. 그가 두려움과 실패의 상징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알렉산드리아 교회에 신앙을 전한 인물, 비록 순교했지만 그의 복음서를 통해 신앙이 싹텄다는 점에서 사자는 결국 승리의 표징이 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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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주인공은 어떤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하나요? 그것은 그의 선택이었을까요? 아니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까요? |
라일락: 선택이자 부르심이었다고 봤어요. 마르코는 연약한 사람이고, 다혈질이기도 하잖아요. 그의 연약함 때문에 바오로와 갈등이 있었고, 알렉산드리아에서도 큰 사건이 일어났죠. 모든 일이 마르코의 선택이긴 했지만, 하느님의 시선에서 봤을 때는 하느님께서 그 선택을 다 이용하셨다고 느껴요. 마르코가 자기 자신에게만 의존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 모든 과정마저 활용하신 셈이죠. 저도 종종 ‘내가 왜 그런 잘못된 선택을 했지?’ 하며 후회하기도 하는데요. 한참 뒤에 그 일을 떠올려 보면, ‘아, 하느님께서 결국 그 모든 선택마저도 당신의 방식으로 이끌어 가시는구나’ 하는 부분을 자주 느꼈거든요. 그래서 이 책을 보며 그런 것들을 다시 체험하는 일이 정말 감동이었어요.
초키포키: 사실 ‘운명’이라는 단어는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아요. 마르코가 끝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부르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라일락 님이 이야기했듯이 인간은 본래 연약한 존재잖아요. 선천적인 결함도 있고, 잘못된 선택을 할 때도 있죠. 그럼에도 그가 끝까지 하느님을 증언하며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부르심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응답은 마르코의 자유의지이지만, 일단 부르심이 선행하는 거예요. 동시에 그가 목격 증인이었기 때문에 훨씬 더 자신의 믿음과 체험에 확신을 갖고 행동했을 것이라고 봤어요.
A: 저는 선택이 4, 부르심이 6 정도인데요. 책 속에서 다양한 지역으로 선교를 떠나는 장면이 많은데, 자기가 가고 싶어도 못 간 곳도 많고 더 머물고 싶어도 떠나야 하는 곳도 있었죠. 어느 정도 선택은 자기가 했지만, 완벽히 선택한 대로는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비율로 떠올려 보았어요. 그래도 무엇보다 복음을 쓰겠다고 결심하고 끝내 그것을 완성해 낸 의지 자체가 대단한 것 같아요.
구구: 둘 중에 딱 선택하기는 어려운데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도 맞고, 마르코의 선택도 맞는 것 같아요. 하느님께서 여러 선택의 순간으로 이끄셨지만, 마르코 역시 그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려 했기 때문에 결국 복음서의 완성에 이를 수 있었겠죠. 결국 인간 역시 스스로 선택하려 할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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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작품에서 주인공을 제외하고,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누구인가요? 그 인물이 보여 준 선택이나 태도 중 무엇이 특히 기억에 남았나요? |
구구: 45쪽을 보면, 마르코가 안드레아 아저씨에게 호감을 갖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를 통해 마르코의 신앙이 형성되고 그의 마음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부분을 보며 제가 처음 세례를 받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때도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안드레아가 마르코의 신앙을 이끈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가 등장하는 장면들을 더 집중해서 읽게 되었어요.
라일락: 저는 등장 분량은 많지 않지만, 마르코의 어머니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요. 165페이지에 “어머니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에 진정 아름다웠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사람은 어려움 앞에서 본모습이 드러난다고 하잖아요. 아들이 어머니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이분이 얼마나 강인한 분이었을까 싶더라고요. 초반부에 보면, 마르코의 어머니가 제자들을 숨겨 주고 안식처를 마련해 주잖아요. 마르코는 어린 시절부터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랐고, 그것이 그의 믿음에도 깊은 영향을 남겼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닮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풀잎: 저는 베드로가 가장 인상 깊었어요. 이 책에서 베드로는 위대한 사도인 동시에 인간적인 모습으로도 그려지잖아요. 특히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기억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끝내 다시 복음을 전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점이 와닿았어요. 403쪽에는 이런 문장이 나와요. “바로 그걸세, 마르코! 대단해! 자네가 이야기를 전개할 실마리를 찾았군.” 이런 식으로 베드로가 자책하고 흔들리는 마르코를 적절한 조언과 위로로 이끌어 주는 태도가 좋았습니다. 베드로 역시 자신의 나약함과 마주하고 자책의 시간을 지나 본 사람이었기에 다른 사람의 약함을 판단하지 않고 오히려 응원과 격려를 해 줄 수 있게 된 것 같았거든요. 결국 베드로의 존재가 마르코에게 복음서를 쓸 용기를 주지 않았을까요.
루돌프: 저는 무엇보다 성경 속 인물들이 하나의 서사로 이어지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특히 마르코 복음서 5장에 나오는 회당장 야이로와 그 딸 탈리아 이야기가 이 작품 안에서 다시 이어진다는 설정이 특히 흥미로웠는데요. 성경에는 사실 “탈리타 쿰!” 이후에 그 가족이 어떻게 살아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안 나오잖아요. 근데 그들이 훗날 예수님을 만났던 기억을 가지고 믿음 안에서 살아갔고 또 마르코와 혼인할 수도 있었다는 상상력이 굉장히 섬세하게 상상해 낸 장면이라고 느껴져 참 인상 깊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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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책을 읽고 가장 좋았던 장면이나 문장이 있다면 함께 나눠 주세요. |
루돌프: 396쪽에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라는 말씀과 함께 베드로가 나오는 장면이 있어요. 이 책을 읽을 때, 성소 주일 독서 말씀으로 베드로 서간이 나왔는데요. 같은 말씀을 책에서도 읽고 성당에서도 들으니 더 깊이 다가오더라고요. 그날도 미사 중에 내가 교회 안에서 잘 쓰였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기도 했는데요. 저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알 수 없지만 저 역시 살아 있는 돌로서, 좋은 집을 세우는 데 보탬이 되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바라게 되었어요.
A: 마르코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쫓겨나잖아요. 그가 떠나기 싫어할 때, 295쪽에 “자네의 혈기 왕성하고 사람들에게 친근한 성격, 선교하는 기쁨으로 눈이 가려져서는 안 되네.”라는 이야기가 나와요. 자신의 감정과 열정만 앞세우다 결국 안타까운 결과를 맞게 되었고 결국 알렉산드리아에서 원치 않게 떠나게 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거든요. 우리가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도움을 줄 때도 많잖아요. 원하지 않는 도움을 줘서 오히려 관계가 안 좋아지는 경우도 많고요. 결국 모두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다가 생기는 일인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눈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 인상 깊었고, 저 역시 선의만으로 행동해서는 안 되겠다고 느꼈어요.
풀잎: 상처와 실패도 모두 주님의 뜻이었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문장들이 곳곳에 있었는데요. 특히 124쪽에 “야이로는 나의 상처가 곧 내가 메시아를 만나는 장소였음을 상기시켰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남았어요. 살면서 가장 절망스러웠을 때, 주님께 진짜 계신 거 맞냐고 원망하고 싶었을 때 오히려 그분을 찾기 위해 성경 공부를 하거나 그분을 갈망했던 제 모습이 떠오르더라요. 그래서 나의 상처가 곧 메시아를 만나는 장소가 되었다는 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마르코는 예수님 앞에서 도망쳤지만 부르심에 응답하여 복음서를 썼잖아요. 인간의 실패나 상처가 끝이 아니고, 오히려 그 상처를 통해 더 깊은 사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말해 주는 것 같았어요. 나의 실패마저도 주님의 계획 아래 이뤄졌다는 것을, 결국 시련 또한 하느님의 은총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시간일 것이라는 점을 다시 믿게 되었어요.
라일락: 393쪽에 마르코와 티모테오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마르코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쫓겨난 후에 더 이상 앞에 설 수 없고 그러고 싶지 않다는 말에 티모테오가 이렇게 말해요. “앞에 설 필요는 없어요.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필요해요.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고 자기 힘으로 세상을 바꾸기를 포기한 사람, 좌절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존재를 느낀 사람 말이에요.” 보통 자기 계발서를 읽어 보면, 내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잘난 사람이 아니고 이 세상을 내 힘으로 바꾸기를 포기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해요. 마르코는 어린 시절에 엄청난 수치를 경험했고, 그게 평생을 따라다녔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상처를 지고 가기를 원하시잖아요. 그래서 자기가 연약하다는 점을 깨닫고 온전히 하느님께 의지하는 사람을 그분께서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인정하시는 것이고요. 그러니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 상처들을 부끄러워하거나,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그것을 스스로 단죄하지 않아야겠다는 것, 또 내 상처까지도 감사하고, 그 상처 속에서도 하느님을 의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시 깨달았습니다.
나무: 이 책은 흔들리고 망설이던 인간이 결국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고 선택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요. 403쪽에 “우리는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라는 구절이 있어요. 안 좋은 상황에서,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남아서 나설 수 있다는 모습 때문에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의미 있는 게 아닐까. 완벽하지 않아도 끝까지 나아가려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용기인 것 같아요.
초키포키: 426쪽에 나오기도 하는데, 마르코 복음 1장 1절 말씀이에요.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책을 읽으면서 ‘여기 등장하는 많은 인물을 결과적으로 하나로 묶어 주는 게 뭘까’ 하는 의문이 남았거든요. 이들에게 각자의 삶이 있었겠지만, 결국 이 소설 속 모든 인물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눈에 띄더라고요. 목격 증인, 사도들, 전 세계로 흩어져 교회를 세운 사람들. 그 모든 사람이 각자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 했을 때 ‘복음의 시작’이라는 이 문장이 가장 가슴에 꽂혔어요.
《알렉산드리아의 사자》 355쪽에서 마르코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렇게 조금 더 지적인 활동을 하는 데에서 진정한 소명을 발견한 것 같아. 목자로서 다른 일을 못해서 마지못해 글을 쓰듯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하는 이 일이 결국은 공동체를 풍성하게 만들 것이라고 확신해.”
마르코의 상처와 믿음이 기록되어 복음서가 되었듯, 우리도 저마다의 마음을 품고 책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상처와 질문, 그리고 삶 속에서 발견한 희망을 단정히 엮어 오늘의 독자들에게 건네고 싶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는 마르코 복음사가의 이야기가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합니다. 각자의 상처를 돌보며,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서 저마다의 응답을 찾아가는 모든 이의 영적 여정을 함께 응원합니다.
📢 오늘 나눈 책 내용이 궁금하다면, 알렉산드리아의 사자를 살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