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사제 이야기] 사랑하려고 했더니, 사제가 되었습니다

영성과 신심

[새 사제 이야기] 사랑하려고 했더니, 사제가 되었습니다

교사를 꿈꾸던 청년에게 찾아온 뜻밖의 부르심

2026. 10.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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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를 꿈꾸다 삶의 방향을 잃었던 한 청년에게 나가사키에서 뜻밖의 질문이 찾아왔습니다. “라파엘은 사제가 될 생각이 있나?” 그 한마디에서 시작된, 사랑으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응답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사랑받은 만큼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찬미 예수님! 반갑습니다! 저는 지난 12월에 사제품을 받은 수원교구 신성수 라파엘 신부입니다. 어느덧 수품 후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받아 제 첫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에 주님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의 작은 나눔이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하느님을 만나는 하나의 단서가 되길 바라며 한 자 한 자 적어 보겠습니다.

 

어렸을 때, 저의 꿈은 교사였습니다. 교사를 꿈꾸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나름 성실하면서도 까불거리는 학생이었던 저는 많은 선생님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지내던 어느 날, 제 마음 안에 위화감이 들었습니다. 제가 받던 사랑에 대한 질문이 마음속에 생긴 것이죠.

 

‘나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학생은 많은데, 내가 그것을 너무 독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마음이 차올랐을 때, 저는 교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학교 안에서 진정으로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친구들 곁에서 그들을 돕고 사랑해 주는 존재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이 삶이 진정으로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저의 진로는 정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에 진학하여 화학을 전공하고 교사가 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교직 이수를 신청했을 때도, 첫 교편을 잡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미리 준비된 것처럼 모든 것이 술술 풀려 갔습니다. 그리고 27세의 저는 다짐했던 것처럼 뜨거운 사랑을 품은 교사로 살아가리라 마음먹으며 교실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뜨거운 마음만으로는 안 되는 것도 있었다

 

학생들을 사랑하는 것은 참 보람이 가득했습니다. 사랑이 필요한 이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 누군가의 삶에 그렇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제 삶이 너무도 의미 있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너무 강한 것은 부러지기 쉽다고 하지요. 얼마 가지 않아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크게 갈등을 겪다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자신에 대한 성찰보다는 세상을 탓하며, 저는 꿈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청춘을 바치며 달려온 길에서 넘어진 것은 제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제 삶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어둠 속으로 점차 빠져들어 갔습니다. 이제 어떤 꿈을 꾸기보다는 그저 살아가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마치 세상 모든 것이 색을 잃은 채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듯 느껴지며 저는 생기를 잃어 갔습니다.

 


 

“그럼 나의 색은 무슨 색이지?”

 

일단은 미래를 위해 화학 전공을 살려 다른 진로를 준비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손에 잡히지 않았지요. 그래도 해야 한다며 정신을 부여잡고 책상 앞에서 보낸 2년여의 기간, 그 끝에 제 손에 들려 있던 것은 면접을 위한 ‘자기소개서’였습니다. 하지만 자기소개서의 첫 번째 항목인 ‘지원 동기’를 마주한 순간, 번뜩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네가 진정 꿈꾸던 삶은 어떤 것이었니?”

 

이 질문을 저 자신에게 하던 그 순간, 색을 잃었던 세상의 색들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 만물이 가진 색은 자신의 의미를 뽐내듯 화려하게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그랬구나……. 그럼 나의 색은 무슨 색이지?’

 

그 생각에 깊이 잠겨 고민하던 그때, 제게 우연한, 하지만 준비되어 있던 듯한 만남이 주어졌습니다.

 

일본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어머니께서는 가시려고 준비하시던 성지 순례에 함께 가자고 하셨습니다. 제법 오랜 시간 성당에 나가지 않고 있었기에 성지 순례라는 것도 조금 생소했습니다. 그래도 한 번 재충전의 시간을 갖자는 차원에서 흔쾌히 응하고 그 여정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만난 하느님은 어떤 분이었을까?

 

여정의 목적지는 ‘나가사키’ 지역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만큼이나 지독한 박해의 역사를 현지에 파견 중이셨던 수녀님의 안내를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 하나로 잔혹한 박해 속에서도 기꺼이 순교의 칼을 받아들이는 신앙 선조들의 모습. 그 모습은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들의 하느님을 향한 믿음, 그리고그 믿음으로 세상의 위협도 기꺼이 감내한 그 모습 앞에서 저는 그들이 만난 하느님이 궁금해졌습니다. 하느님께서 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이렇게 뜨겁게 사랑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하던 제게 성지 순례의 지도 신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라파엘은 사제가 될 생각이 있나?”

 

이 한마디의 부르심은 갑작스러웠지만 저의 깊숙한 곳에 불을 지피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한 번도 사제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 제게 사제직에 대한 부르심이 다가왔을 때 제 안에 ‘사제는 어떤 삶을 살아가는 존재인가?’라는 근본적인 궁금증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사제에 대한 여러 가지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각종 영상과 책, 또 성당에 다닐 때의 추억 등을 둘러보다가 cpbc에서 방영했던 다큐멘터리 〈사제〉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1부의 마지막, 새 사제가 첫 미사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소감을 말씀하셨습니다.

 

“사제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계속하는 거고, 그리고 그 예수님의 일은 그냥 바보처럼 사랑하다가 돌아가신 일이기 때문에, 저도 그렇게 열심히 살다가 주님 곁으로 기쁘게 가겠습니다.”

 

신부님의 눈물 섞인 이 말씀을 들으며 저 자신도 많은 이들을 사랑하고 싶었던 존재였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과 함께 제 마음 안에서도 뜨거운 감정이 차오르며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사제의 삶이 예수님처럼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정말로 내가 그 삶에 부르심을 받았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부르심에 응답할 것이라고. 그리고 이 부족하고 약한 인간에게 당신을 통해 다시 한 번 사랑할 기회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저의 성소의 길은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다시, 사랑을 선택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4,12)

 

예비 신학생 생활을 시작하고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그리고 서품 성구가 되어 준 소중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갓등중창단의 8집 타이틀곡이었던 〈우리 사랑 안에 하느님 사랑이〉를 통해서였습니다. 후렴 가사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 그분은 우리 사랑 안에 머물러 계시고, 또한 그분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영원한 하느님 사랑 완성되리라.”

 

사랑 그 자체이신 분께서 우리 사랑 안에서 당신의 사랑을 완성하신다는 이 말씀 안에서 저는 다시 한 번 사랑할 힘, 공동체와 함께 사랑하며 지내는 기쁨을 통해 사랑 자체이신 분을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은 예비 신학생이었던 한 사람으로부터 사제직을 살아가는 한 사람에게 이어졌습니다.

 

앞으로 제가 하는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이길 바랍니다. 가장 온전한 분께서 당신 피조물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겸손하고도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함께 나눈 분들도 그 사랑 안에 머무르기를 기도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 사랑 안에서 우리가 만나기를 열망하는 하느님의 사랑은 완성될 것입니다.

 


 

🙏 함께 기도해 주세요.

 

<사제의 첫 계절>은 새 사제들의 첫 사목과 신앙의 여정을 함께 나누는 연재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전해 준 신성수 라파엘 신부님이 사제가 되기까지 품었던 첫 마음을 오래 간직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제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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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수원교구 사제. 정자꽃뫼성당에서 보좌 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에 감동을 받고 음악을 통해 함께 어우러지는 순간을 좋아합니다. 모든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찬미했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을 본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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