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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모습만으로 다른 이의 노력을 판단한 적이 있나요? 많은 경우, 같은 자리에 서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시련이 우리 안에 만들어 내는 공감의 깊이를 헤아려 보세요.🤍 “어쩌면 우리가 겪은 고통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깊이가 되는지도 모릅니다.” |
저는 어린 시절부터 감수성이 참 풍부했습니다. 소설책이나 만화책을 읽으며 툭하면 눈물을 흘렸고,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조금만 감동적인 장면이 나오면 울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아마 ‘감성이 풍부하다는 것’과 ‘타인을 잘 이해한다는 것’은 같은 뜻이 아닌 듯합니다. 저는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타인의 마음을 잘 받아들이고 어루만져 줄 수 있었지만,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들어가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신학생 시절, 몇몇 동기들을 보며 늘 의아하게 생각한 점이 있었습니다. 시험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자신이 공부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오후가 되면 밖으로 나가 마냥 축구하던 동기 신학생들을 볼 때마다 궁금했습니다.
‘대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물론 육체적 건강 역시 신학교에서 요구하는 중요한 덕 가운데 하나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니까요. 저에게는 시험을 며칠 앞두고도 공부하지 않는 몇몇 친구들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그 친구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여러 차례 심판하기도 했습니다. 신학생의 본분에는 주어진 공부를 충실히 하는 것도 포함되는데, 저렇게 노는 것은 신학생답지 못한 일이라고 스스로 판단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친구들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 모습을 내심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들과 다르다는 우월감 속에 빠져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너져 내린 시간의 끝에서
그로부터 한참 뒤인 유학 중에 이런 제 생각이 깨졌습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카리타스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에 들어갔을 때, 갑자기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너무 자신을 몰아세우며 달려왔던 탓에, 번아웃 증후군이 찾아왔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때의 저는 마치 건전지가 닳은 시계처럼 멈춘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논문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책상 앞에 앉기는 했지만,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보며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멍하니 앉아만 있더라도 하루나 이틀이면 이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그러기를 반복하면서 그 기간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루, 다음에는 이틀, 그러다가 일주일이 되고, 그다음에는 한 달이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책상에 앉을 힘조차 없어서 그냥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누워서 휴대 전화만 붙잡고 있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처럼 방 안에 틀어박힌 채, 하염없이 유튜브만 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 번 리듬이 깨지니 일상은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미사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평일 미사는 거의 하지 못했고, 주일 미사도 하고 싶지 않아서 끝까지 미루다가 주일 밤 11시 40분이 되어서야 마지못해 해치우듯 미사를 드린 일도 여러 차례였습니다. 아주 가끔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날 때면 아무런 문제없이 지내는 척 연기했지만, 사실 저의 마음은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요, 문득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아, 그때 공부는 안 하고 축구하던 친구들을 속으로 비난했는데, 어쩌면 그 친구들도 시험공부를 안 했던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는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의지적인 노력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문자 그대로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저 운이 좋아서, 혹은 기질이나 성장 과정의 영향으로 ‘의지적인 노력’을 남들보다 아주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상황 속에 계속 놓여 있던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혔을 때, 저 역시 하염없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공부하지 않았던 친구’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처음으로 ‘공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였습니다. 의지와는 무관하게 공부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토록 사람을 불안하고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마음
물론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서 상황이 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부할 수 없는 상황은 계속 이어졌고, 그 깨달음이 소진된 저의 마음을 치유하지는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체험은 타인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전이라면 속으로 비난했을 타인의 나태함, 혹은 노력의 부족으로 인한 실패를 이제는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누군가를 볼 때면, 이제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노력을 할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혹은 ‘노력을 할 수 없는 환경’ 속에 오래도록 놓여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고통으로 스스로 들어가 보기 전까지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모든 죄와 고통을 받아들이기 위해 십자가 죽음에까지 내려가시지요. 어쩌면 우리가 겪은 고통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깊이가 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시련은 당연히 그 자체로는 피해야 할 대상이겠지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과정이지 않을까요?
물론 시련을 체험하는 일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이러한 시련을 겪었으니, 너 역시 그런 시련을 겪는 것이 마땅해.”라며 고통을 대물림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내가 이런 시련을 이겨 냈으니, 너 역시 우는소리 하지 말고 그 시련을 극복해야 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시련이 찾아왔을 때 그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시련과 고통을 통해 타인의 아픔을 더 잘 이해할 수도, 아니면 자신이 경험한 시련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평가절하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레위기의 성결 법전에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방인을 마치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요구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 역시 이집트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던 만큼, 남의 땅에 몸 붙여 사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지 알았던 까닭입니다. 역지사지의 마음이 바로 이러하겠지요.
“너희와 함께 머무르는 이방인을 너희 본토인 가운데 한 사람처럼 여겨야 한다. 그를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레위 19,34)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경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의 40년 동안 한 명 한 명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에 들어선 세대는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전승과 율법이 남아 있었습니다. 선조들이 전해 준 이야기와 하느님께 받은 율법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작업을 통해, 옛 이집트에서의 체험이 그들의 삶 안에 현재화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신학생들과 함께 살아가며, 제가 경험했던 그 무력감과 고통을 잊지 않으려 늘 노력합니다. 아무래도 학생들을 양성하는 소임을 맡다 보니,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타인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제 기준을 관철하려는 유혹이 찾아옵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사제가 아닌,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제’를 만들기 위해 힘쓰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완벽하고 이상적인 사제를 키워 내려는 마음이 저의 욕심이자 유혹임을 알지요. 그러기에 저는 다시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의 저를 떠올리며, 제게 맡겨진 신학생들을 하느님께 맡겨 드리려 합니다.
명형진 신부, 문재상 신부, 방종우 신부,
심재현 신부, 은성제 신부, 이한석 신부의 신앙 이야기를 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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