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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왜 성모님에 관한 독립 문헌을 만들지 않았을까요? 단 40표 차이로 결정된 이 선택의 의미와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서 이해하는 올바른 성모 신심의 기준을 살펴봅니다. |
1963년 10월 29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던 성 베드로 대성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그날 표결에 부쳐진 안건은 언뜻 단순한 절차상의 문제처럼 보였지만, 교회 역사상 엄청나게 중요한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마리아에 관한 가르침을 ‘독립된 문헌’으로 낼 것인가, 아니면 대신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 인류의 빛(Lumen Gentium)〉 안에 한 장으로 포함시킬 것인가?”에 관한 표결이었습니다.
표결 전 공의회에 참석한 주교님들 사이에서 격론이 오갔고, 결과는 〈교회 헌장〉 안에 포함시키자는 의견이 1,114표, 독립적인 문헌으로 내자는 의견이 1,074표로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불과 40표 차이로 성모님에 관한 내용은 ‘독립적인 문헌’ 대신 〈교회 헌장〉 안에 하나의 장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이 아슬아슬한 투표 결과가 가톨릭 교회의 성모 신심 역사를 통째로 바꾸어 놓게 됩니다.
성모님에 관한 내용이 독립적인 문헌으로 나오기를 바랐던 사람들은 성모님에 대한 공경과 사랑으로 인해 성모님의 특권과 영광, 그리고 그분의 중개에 관한 내용을 따로 부각하고 싶어 했습니다.
실제로 공의회 직전, 일부 주교님들은 성모님께 '공동 구속자'와 '모든 은총의 중개자'라는 호칭을 교의로 선포해 달라고 청원하기도 했습니다(2026년 현재에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교회 헌장〉의 하나의 장에 포함하자는 측의 주장은 명확했습니다. 특권과 영광이 강조되면서 분리되었던 성모님을, 그리스도 안으로, 그리고 초기 교회처럼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공동체인 ‘교회’ 안으로 모셔 오자는 것이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택
가톨릭 교회의 올바른 성모 신심의 방향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시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동정 마리아”라는 〈교회 헌장〉 제8장 제목에 잘 드러납니다.
성모님에 관한 독립적인 문헌이 무산된 것은 결코 성모님의 위치를 아래로 끌어내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과도해질 수 있는 성모 신심에 제동을 걸고, 성모님을 가장 합당하고 올바른 자리에 모시려고 한 공의회 교부들의 신학적 결단이었습니다.
첫째, ‘모든 은총의 중개자’라는 문제를 명확히 해결했습니다. 공의회는 마리아의 중개가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에 온전히 의존하고 종속됨을 분명히 선언하며 오해를 종식시키고자 했습니다.
달빛이 아무리 밝아도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태양 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성모님의 모든 은총과 능력은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나오기에 공의회는 “어떠한 피조물도 강생하신 말씀 곧 구세주와 결코 똑같이 헤아려질 수 없다.”고 명확하게 밝힙니다(〈교회 헌장〉, 62항).
둘째, 은총 분배에서 마리아의 역할을 부풀리던 태도에 맞서, 공의회는 마리아를 우리 위에 군림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구원의 여정을 걷는 ‘교회의 가장 탁월한 지체’이자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전형(typus)’으로 제시했습니다(〈교회 헌장〉, 53․63항).
성모님은 우리와 똑같이 십자가의 어둠 속에서도 끝까지 순명하신, 가장 완벽한 신앙의 모범이심을 일깨워 준 것입니다.
무엇보다 〈교회 헌장〉은 우리의 성모 신심이 빠지기 쉬운 두 절벽을 향해 이중 경고를 보냅니다. 한편으로는 ‘거짓 과장(극대주의)’을,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협착한 마음(축소주의)’을 모두 피하라는 것입니다(〈교회 헌장〉, 67항).
성모 마리아, 교회의 어머니
공의회는 진정한 신심이 쓸모없고 일시적인 감정이나 허황한 맹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참된 신앙에서 나온다는 것을 단호하게 가르칩니다.
성모님에 대한 신심도 이처럼 참된 신앙에서 흘러나와 마리아의 탁월한 덕을 일상에서 본받는 삶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올바른 신심이 완성될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 교회의 성모 신심에 관한 완벽한 이정표를 세웠고, 바오로 6세 성인 교황은 〈교회 헌장〉을 반포하던 날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로 장엄하게 선언했습니다.
다음 4화에서는 이런 공의회의 결정이 이후에 어떻게 교회 안에서 받아들여지고 발전했는지 바오로 6세 성인 교황님과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황님의 문헌을 중심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이어지는 네 번째 글은 다음 주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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