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회 신자들은 성모님을 어떻게 공경했을까?

신학 칼럼

초대 교회 신자들은 성모님을 어떻게 공경했을까?

올바른 성모 신심을 찾아서 ② 초기 그리스도교의 성모 신심

2026. 10.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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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모님을 어떻게 공경했을까요?

초기 성모 신심이 시대를 지나며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그리고 교회는 성모님에 대한 올바른 공경과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아왔는지 살펴봅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는 기도문인 3세기의 ‘성모님께 보호를 청하는 기도’(Sub Tuum Praesidium, 《가톨릭 기도서》에는 ‘일을 마치고 바치는 기도’라는 이름으로 수록)를 봅시다.

 

“천주의 성모님, 당신의 보호에 저희를 맡기오니 어려울 때에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마시고 항상 모든 위험에서 저희를 구하소서. 영화롭고 복되신 동정녀시여.”

 

박해의 위기 속에서 쓰인 이 기도문은 “나를 구하소서.”가 아니라, “저희를 맡기오니…… 저희의 기도를…… 저희를 구하소서.”라고 고백합니다.

 


 

초기 교회의 성모 신심

 

초기 교회 신자들은 성모님을 개인의 소원을 비는 사적인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극심한 박해와 위험 속에서도 ‘우리’, 곧 ‘교회 공동체’ 전체로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지니신 보호의 망토 아래로 피신했습니다. 성모님을 향한 공경은 결코 그분을 교회 공동체에서 떼어 놓거나 개인주의적인 신심으로 전락시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초기의 성모 신심은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적’이었습니다. 성경이 이를 증언합니다. 성모님은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곤경에 처한 이들을 위해 예수님께 전구하시면서도, 언제나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하시며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아래에서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 하시며 성모님께 ‘교회의 어머니’라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431년 에페소 공의회가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로 선포한 것 역시, 단순히 마리아를 높이려는 목적이 아니라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분이 ‘참하느님’이심을 수호하기 위한 표현, 곧 ‘그리스도론적 선언’이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초기 교회의 교부들 역시 마리아를 하와의 불순종과 대비되는 ‘새 하와’요, ‘교회의 전형이자 모범’으로 칭송하며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신앙의 모범으로 공경했을 뿐, 결코 어떤 여신처럼 숭배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분명합니다. 초기 교회의 성모 신심은 그리스도, 그리고 교회와 결코 분리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성모님을 향한 뜨거운 신심

 

이후 성모님에 대한 신심은 조금씩 깊어졌고, 성모님에 대한 칭송과 표현 역시 풍성해지기 시작합니다. 그 시대와 문화 안에서 통용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해 성모님을 강조해 왔지만,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과 여러 차례의 전쟁 등 가혹한 현실 속에서 성모님을 향한 뜨거운 신심과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 사이에 조금씩 틈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의 마음에는 하느님을 향한 경외심보다 심판을 향한 공포가 더 크게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면서 ‘엄격하고 무서운 재판관이신 그리스도’와 그 진노를 달래 주시는 ‘자비로운 어머니 마리아’라는 대조적인 이미지가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성모님이 우리의 죄를 덮어 주시고 하느님의 심판과 분노를 막아 주신다는 생각이 대중들 사이에 퍼져 나갔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종교 개혁과 바로크 시대를 지나며 절정에 이릅니다. 종교 개혁 시기에 마리아의 지위를 축소하려는 개신교의 움직임에 대항하여, 가톨릭 교회는 이에 맞서는 호교론적 방어 기제로 성모님의 특권과 능력을 더욱 극적으로 강조하였고, 그 결과 성모 신심은 점차 그리스도와 교회에서 분리되는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주님의 기도만 바치고 성모송이나 묵주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이단의 징조”라는 극단적인 말이 돌 정도로, 성모님께 과도하게 집착하는 이들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모님을 그리스도와 교회로부터 분리시키고, 지나친 공경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자리마저 위협하던 시기를 거치면서 가톨릭 교회는 잃어버린 균형을 되찾아 성모님을 성경과 전례 안의 ‘올바른 자리’로 다시 모시기 위해 치열하게 성찰하며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안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다음 3화에서는 공의회가 어떻게 마리아론의 궤도를 바로잡고 성모 신심의 참된 본질을 우리에게 되찾아 주었는지, 그 위대한 쇄신의 여정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어지는 세 번째 글은 다음 주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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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현재 레지오 마리애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 지도 신부를 맡고 있습니다. 성소를 고민하던 시절, 프랑스 떼제 공동체에서 봉사하며 만난 "For to me to live Christ"라는 구절은 훗날 저의 서품 성구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필리 1,21)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그리스도께서 내 삶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고자 합니다. 하느님 말씀부터 빅데이터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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