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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애써도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삶을 이끄는 이가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실패의 두려움 속에서 배운 ‘의탁’의 의미를 함께 돌아보세요.🙏 |
‘시련’이라는 말을 ‘실패’와 비슷한 뜻으로 쓴다면, 제가 삶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시련은 독일 유학 시절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사실 저는 ‘실패’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온 듯합니다. 물론 성장 과정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실패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저는 그럭저럭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경제적으로 아주 부유하지도, 아주 궁핍하지도 않은 생활을 했습니다.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였기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선생님들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중학교에서도 고등학교에서도 늘 모범생이었고 성적도 최상위권이었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교수 신부님들의 사랑을 받았고, 일이나 공부나 모두 흠잡을 데 없이 해 왔습니다. 서품 이후에도 보좌 신부로 소임을 맡아 수행하면서 교우분들과 정말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독일 유학 때도 이어졌습니다. 원래 15개월이 걸리는 어학원 코스를 월반해서 12개월 만에 끝냈고, 카리타스학 석사 과정까지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다른 독일 친구들보다도 석사 논문 제출이 가장 빨랐고, 박사 과정을 이어 갈 수 있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박사 과정에 들어가면서 무언가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한 실패
한 학기 동안 준비한 논문 계획서를 들고 지도 교수님을 찾아갔을 때, 교수님께서는 옅은 미소를 머금으신 채 제가 택한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주제를 말씀하셨습니다. 6개월 동안의 노력이 교수님의 말씀 한마디로 완전히 쓸모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다시 6개월 동안 준비한 계획서는 무사히 통과되었지만, 이제는 번아웃 증후군이 저를 덮쳤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누운 채 휴대 전화만 들여다보는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나름대로 집중하려 노력해 보았지만, 한 번 무너진 마음은 좀처럼 다시 쌓아 올리기 어려웠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께서 암에 걸리셨습니다.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른 위암이었기에 위를 전절제하는 대수술을 받으셨지만, 이내 다른 곳에 재발해 빠른 속도로 전이되기 시작했습니다. 번아웃만으로도 힘든데, 휴가차 한국에 와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머리로는 환자인 아버지와 아버지를 돌보는 어머니께서 훨씬 힘드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제 마음은 자신도 좀 돌아봐 달라며 몸부림치고 있었죠.
결국 아버지께서는 처음 암 진단을 받은 이후 2년이 조금 지난 뒤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독일로 돌아온 뒤에는 어떻게든 논문을 끝내려 마음을 다잡고 꾸역꾸역 책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박사 과정을 시작한 지 약 4년이 되었고, 저는 어떻게든 빨리 끝내기 위해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며 본문의 마지막 장을 써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불안해서 도저히 쉴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를 잠시 식히려 산책하러 나가는 것도 불안해서 화장실도 딸려 있지 않은 작은 독방 안을 빙글빙글 돌며 묵주 기도를 바쳤습니다. 자다가도 갑자기 찾아오는 불안감에 놀라 벌떡 일어나는 일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논문 마지막 장의 절반 정도를 썼을 즈음이었을까요, 갑자기 논문의 제2 지도 교수님이 제 논문에 심각한 방법론적 결함이 있다면서 제 작업물이 박사 논문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박사 학위를 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공부하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주위 친구들의 도움과 나름의 노력으로 차근차근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교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제가 생각해 온 모든 것이 허상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패의 가능성’을 마주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계획했던 시간보다 유학 기간이 훨씬 길어지고 있기도 했으니, 저는 이미 절반의 실패를 경험하는 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입에서 나온 ‘방법론적 결함’이라는 말은, 절반의 실패를 넘어 ‘완전한 실패’를 뜻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느님의 일
그 이야기를 듣고 며칠 동안 침대에 쓰러진 채 가만히 누워 있었습니다. 저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독일에서 보낸 7년이 모두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죽은 듯 누워 있다가 결국 일어나서 잡은 것이 묵주였습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이런 기도가 흘러나왔습니다.
“주님, 저의 노력과 의지로 할 수 있는 데까지 이미 충분히 노력했습니다. 저는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만약 이 일이 당신의 교회에 필요하다면 이 공부를 마치게 해 주시고, 그렇지 않다면 그저 이대로 흘러가게 해 주소서. 저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마치 있는 힘을 다해 절규하듯, 저는 마음속으로 하느님을 향해 부르짖었습니다.
셀 수도 없이 그렇게 마음으로 소리 지르고 나니 속이 조금은 편안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컴퓨터를 켰을 때, 처음으로 저는 ‘저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 살아오며 제가 행한 모든 일이 노력과 의지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저의 힘으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저는 하느님께 의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차피 이것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하느님께서 필요하시다면 이루어 주실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해 나 자신을 그분께 내어 맡길 뿐이다.’
저는 그저 이렇게 되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교수님을 찾아갔을 때, 교수님은 포기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 함께 고쳐 나가자고 말씀했습니다. 저희는 1년에 걸쳐 250페이지 분량의 작업물을 하나하나 수정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더 이상 박사 학위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하느님의 일이니 실패하더라도 하느님의 뜻이고, 성공적으로 졸업을 하더라도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실패한다고 제가 부끄러워야 할 이유가 없고, 자랑스러워야 할 까닭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느님의 뜻에 제가 맞갖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내어 드리는 데 최선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지금은 귀국한 지 만 4년이 지났습니다. 현재 저는 신학생을 양성하는 소임을 받아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지내는 삶은 무척 행복하지만 신학생들을 양성하는 일이 언제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은 성급하게 성소를 포기하는 신학생을 만날 때도 있고, 성소 식별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 신학생들도 있습니다. 때로는 건강 문제 때문에 성소를 이어 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신학생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런 그들을 만날 때 저는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저의 욕심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깨닫게 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성소를 심어 주셨다면, 당신의 일을 그 안에서 끝마쳐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설사 그들이 느낀 부르심이 그분의 뜻이 아니었다면, 당신께서 새로운 길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 자리에서 양성자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아 이 자리에 있을 따름이라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저는 오늘도 신학생들을 하느님께 내어 맡겨 드립니다. 몇 년 전, 고통에 신음하며 몸부림치던 유학 시절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시련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분명 우리 모두 시련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하지 않고서는 배우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시련의 시간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아 가는 시간’이자 ‘겸손과 의탁을 배우는 은총의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겪은 이 고통이 제 겸손의 깊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저는 오늘도 그분의 부르심에 저를 내어 맡겨 드립니다.
심재현 신부, 은성제 신부, 이한석 신부의 신앙 이야기를 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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