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함은 하느님을 돕는다

영성과 신심

나의 선함은 하느님을 돕는다

“우리의 선함은 다른 이들의 회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2026. 0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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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홀로 무너지지도, 홀로 다시 일어서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연결과 선행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묵상해 보세요.

 


 

우리는 때로 혼자 살고 싶어 합니다. 혼자서,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혼자 살더라도 홀로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생각, 내리는 결정은 지금 딛고 서 있는 공간과 시간을 담고 있습니다. 스스로 하지 않은 선택과 꿈꾸지 않은 미래가 지금의 우리를 만든 것입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모든 이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의 분노가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누군가의 희생이 우리가 편안하게 누리는 이 시간을 마련해 줍니다. 우리는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 성장할 수 없고, 홀로 실패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단절은 죄의 방식이다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한 사람의 선함, 악함이 누군가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나만 아는 나의 개인적인 죄와 선행도 분명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더 나아가 지구상의 온 피조물은 지금 이 땅에 없는 존재와도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죄는 이 연결을 끊어 내려 합니다. 거짓말, 혐오, 절도, 환경 파괴를 비롯한 모든 죄는 그 한가운데에서 단절을 이야기하며 “나는 너와 관계없다.”라고 소리칩니다. 너와의 관계를 끊고 고립된 채, 자신 앞의 누군가를 도구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루카 15,30)

 

아버지 앞에 선 큰아들은 자신의 동생을 잊었습니다. 그는 동생을 자신의 동생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함께 어울려 눈을 마주하고, 곁을 내어 주었던 같은 지붕 아래의 피붙이를 모른 척합니다. 자신과의 관계는 끊어 버린 채, ‘아버지 당신의 아들’이라며 동생을 밀어냅니다.

 


 

모든 이와 관련이 있다는 것

 

사실 큰아들의 말은 아버지와의 관계도 끊어 버릴 수 있는 말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형제가 함께 관계 맺는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큰아들은 현재 맺고 있는 동생과의 관계를 끊는 것을 넘어, 확인되지 않은 동생의 과거마저 함부로 재단하고 왜곡합니다. 동생이 낯선 곳에서 보낸 시간을 창녀들과 어울려 죄로 가득했던 시간이라 단언합니다. 동생이 아버지의 재산을 나누어 받고, 어리숙하게 애썼던 “방종한 생활”(루카 15,13)을 큰아들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나쁜 행위로 규정합니다. 동생의 과거를 묻기도 전에 이미 단죄한 것입니다. 이렇게 큰아들은 가족이라는 관계를 단절하고 홀로 고립됩니다.

 


 

우리의 ‘선함’은 다른 이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모든 이와 관련 있다는 것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롯이 혼자서, 남몰래 하는 선한 선택도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는 나의 선함이 너의 악함을 되돌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루카 복음서 15장의 다른 비유가 이를 잘 드러냅니다.

 

목자가 되찾은 한 마리의 양은, 그대로 남아 목자를 기다리기로 한 아흔아홉 마리의 양의 선함에 기대어 있습니다. 모질게 말하는 큰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벽에 겨우 일어나 양들을 몰고 나간 그의 성실함이, 뙤약볕의 한낮에도 들에 나가 일한 그의 숨은 부지런함이 그 자신도 모른 채 동생을 환대한 것입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 목자가 없는 틈을 타 들판으로 내달려 도망쳤다면, 되찾은 양과 목자는 돌아갈 곳이 없었을 것입니다. 큰아들이 자신의 일을 성실히 지속하지 않았다면, 아버지도 동생도 풍요로운 가족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선택으로 세상을 완성하시는 하느님

 

물론 큰아들은 그냥 하던 대로 한 것일 수 있습니다. 속으로 동생을 욕하며, 바람결에 들려오는 동생의 소식을 비난하며 하던 일을 부지런히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계속된 성실함이 동생이 돌아올 집을 유지했습니다. 동생은 형의 선함에 기대어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끝일까요? 아닙니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루카 15,32)

 

비유 속의 아버지는 큰아들과 동생의 형제 관계를 회복하려 합니다. 큰아들에게 동생을, 나의 아들이 아니라 ‘너의 아우’라고 확인해 줍니다. 큰아들이 기억하고 있을 동생과의 좋은 기억들, 지금은 외면하고 있는 동생과의 사랑을 다시 떠올리라고 달랩니다. 네가 선택한 성실함의 열매를, 다시 찾은 가족을 같이 환영하자고 초대합니다. 그렇게 가족이라는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우리의 선함은 다른 이들의 회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선함에 기대시어 잃어버린 이를 찾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서도 선함을 택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선행일지라도, 나중에 받을 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잃은 양을 찾는 지향으로 기꺼이 선택합니다.

 

방 안에 혼자 누워 혼자서만 하는 생각일지라도 우리는 선을, 하느님을 택할 수 있습니다. 이 선택을 바탕으로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구하는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조차도 모르는 우리의 기여를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시며, 우리가 했던 남모를 선함을 알아주실 것입니다(마태 25,34-36 참조).

 


 

 

명형진 신부, 문재상 신부, 방종우 신부,

심재현 신부, 은성제 신부, 이한석 신부의 신앙 이야기를 담은

《사제들의 시대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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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로마 교황청립 성서 대학에서 성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라는 말씀을 사제 생활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사랑으로 실현하고자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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