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는 어떻게 준비되는가? 천 년 전 유럽의 답!

철학 탐구

새로운 시대는 어떻게 준비되는가? 천 년 전 유럽의 답!

카롤링거 르네상스와 에리우게나의 철학 (1)

2026.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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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교양의 시간” 시리즈의 아티클로 <'마지막 고대인', 보에티우스가 전하는 철학의 위로>에서 이어집니다. 👉 전편 읽기

 


 

📖 서유럽 최초의 르네상스, 무너진 문명에서 다시 피어난 교양의 힘

 

  • 로마 제국이 무너진 뒤, 유럽의 지혜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 수도원에서 지켜 낸 책과 지식, 다시 꽃핀 문명의 역사
  • 서유럽 최초의 르네상스, 카롤링거 르네상스 이야기

  


 

서유럽의 침체기와 문화사의 첫 번째 르네상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문예 부흥과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미술 분야에서의 대천재들이 탄생하고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을 통한 과학 혁명이 생겨난 대략 14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시대를 일컫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이후 ‘르네상스’는 이러한 특정한 역사적 사건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부흥과 새로운 흐름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자주 사용되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반적인 의미에서 서양문화사 학자들이 서유럽 최초의 ‘르네상스’로 꼽는 것은 9세기경의 카롤링거 왕조에 의한 ‘카롤링거 르네상스’입니다. 이는 ‘교양의 역사’에서도 매우 의미 있고 결정적인 사건이 됩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의 수도를 비잔티움이라는 도시로 옮겨 ‘콘스탄티노폴리스’라 명명하고 동로마 제국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후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는 더 이상 라틴어를 사용하는 이탈리아가 아니라,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어 문화권인 비잔틴 세계가 됩니다.

 

반면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기존 로마 제국의 주요 지역은 이제 서로마 제국으로 불리며, 동로마 제국과 직접적인 연결이 있었던 아드리아해 연안의 라벤나를 제외하고는 정치적, 군사적으로 위태로울뿐더러 문화와 학문에 있어서 극히 침체됩니다.

 

로마 시대의 정치, 교육의 질서와 체계가 무너지고, 게르만족으로 대표되는 이민족의 침입으로 사람들은 생존조차 위협을 받았습니다. 로마가 여러 차례 끔찍한 약탈을 당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시기에 베네딕토회를 중심으로 한 정주 수도회의 수사들이 훗날 문화적 발전의 싹을 지킨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이 필사하며 전수한 고대 세계의 찬란한 정신적 유산과 공동체 및 전례 생활을 통해 일군 영성과 신앙의 심화는 훗날 중세 그리스도교 문화가 꽃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서로마 지역의 위기 상황은 게르만족의 가장 유력한 부족 중 하나인 프랑크족의 수장 클로비스 왕이 496년경, 그리스도교 세례를 받고 프랑크족 사이에 그리스도교가 확산되면서 비로소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됩니다.

 

고대 로마의 정신적, 문화적 유산들이 파괴되고 사라지는 위험에서 벗어나 새로운 민족 안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작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문예 부흥은 이후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여기에 수백 년에 걸친 왕권의 교체라는 거대한 정치적 사건이 배경이 됩니다.

클로비스의 후예들이 이어온 메로빙거 왕조가 가진 권한은 7세기경부터 점차 재상직을 대물림하며 맡아온 피핀의 가문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마침내 피핀 3세는 751년에 이미 실질적 권한이 없었던 메로빙거 왕조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으로 오릅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카롤루스가 왕위에 오른 후부터 카롤링거 왕조는 본격적인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이는 문화적으로는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도래이기도 합니다.

 


 

카롤링거 궁정과 학문과 교육의 부흥

 

언어권에 따라서 샤를마뉴, 카를 대제 등으로 불리는 카롤루스는 오늘날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접경 지대에 있는 독일의 도시 아헨에 궁정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800년 12월 25일에 레오 3세 교황은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그에게 대관식을 베풉니다.

 

이로써 교황의 영적, 종교적 지도하에서 세속의 차원에서는 프랑크족의 수장이 서로마 황제로서 서구 그리스도교 세계를 이끄는 중세 세계의 봉건적 질서의 기본이 정립되었다 하겠습니다.

 

이는 프랑크 왕국이 후기 고대 로마 문화와 고대 그리스도교의 유산을 자신들의 것으로 수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카롤루스는 전투와 정치적 업적만큼이나 자신의 궁정에 뛰어난 학자들을 불러 모아 궁정 학교를 만들고 오랫동안 잊혀진 고대 로마와 고대 교회의 학문과 문예, 신학을 부흥시키고 라틴어 교육을 활성화하고자 애씁니다.

 

카롤루스 대제가 시작한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초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학자는 알쿠인(Alcuin)입니다.

 

알쿠인은 영국의 요크 지방 출신의 대학자입니다. 영국에서 이러한 뛰어난 학자가 배출된 것은 사실 베네딕토 수도원 출신의 대 그레고리오 교황(540~604년)이 영국 선교를 명하고, 선교사들에게 각종 교양과 신학과 관련된 서적을 선교지에 가지고 가게 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신앙과 교양의 씨앗을 뿌리는 작업은 수백 년이 지나 유럽에 학문이 다시 부흥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카롤루스 대제는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알쿠인과 만나 깊이 감명을 받고, 궁정 학교를 통해 문예를 부흥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알쿠인은 782년에 궁정 학교의 책임자로 부임해서 796년에 수도원으로 은퇴하기까지 봉직합니다.

 

그는 이 시기 궁정 학교에 고대 교양 교육의 체계를 복원했을 뿐 아니라, 도서관을 마련하고 각 교구 내 교회에 교육 기관을 설립하는 제도를 마련하여, 그 이후 수백 년에 걸쳐 결실을 맺을 중세 그리스도교 세계의 학문 발전의 기초를 세웁니다.

 

이러한 제도적 노력은 〈카롤루스 법령집〉에 집대성되어 있습니다. 알쿠인을 이어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학문적 발전을 이끈 인물은 카롤루스 2세(대머리 왕 카를) 시기에 활동한 요한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Johannes Scotus Eriugena, 810~877년)입니다.

 

사실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실질적 내용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평가가 엇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중세 학문의 전성시대인 12~13세기의 영광은 카롤링거 르네상스가 그 씨앗이 되었다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합니다. 교양은 미래를 준비하는 기초 작업이라는 것 역시 확인하게 됩니다.

 

이제 다음 화에서는 카롤링거 르네상스 시기에 일어난 중요한 교육 개혁과 여러 면에서 흥미로운 에리우게나의 철학과 신학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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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의정부교구 사제. 독일에서 종교 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에서 <최대환 신부의 음악 서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책과 예술, 산책을 좋아하며,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강의하고 글을 씁니다. 제가 쓰고 말하는 일들이 이웃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복음 선포의 활동이 되기를 희망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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