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연습

영성과 신심

나를 사랑하는 연습

자신을 들여다볼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영적 쇄신과 진보의 의미

2026. 0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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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 3, 마음을 온전히 정돈하는 시간

 

영적 진보는 삶의 자리에서 멀리 떠나야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약점조차 다 받아주시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시작해 봅시다. 🌙

 


 

요즘은 무엇이든 AI에게 물으면 그럴듯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나 역시 문득 궁금함이 생겼다. 내가 만나는 청소년들과 교우들에게 더 본질적인 도움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고민을 AI에게 던져 보았다. ‘신앙인들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AI는 이 질문에 조금도 지체 없이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깊게 체험하고, 그 관계 속에서 삶을 살아가며 이웃을 돕는 것으로 요약됩니다.”라고 말했다. 참으로 명쾌한 요약이고 대답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 질문은 바로 우리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깊이 체험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기도에 앞서 '나는 누구인가?'를 묻다

 

아마도 모든 신앙인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보다 더 깊어지고, 이를 통해 하느님 체험을 하기를 원할 것이다. 질문을 던져 보자.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 체험을 할 수 있을까? AI는 기도를 통해서 이것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기도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주어진 기도를 열심히 하지만 그것이 그저 반복되는 일상이 되어 버려 앵무새처럼 읊기만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기쁘고 순수하게 기도하다가도 어느 순간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해야 할 일로 가득 찬 바쁜 일상에서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틈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 모든 기도를 귀찮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한적하게 피정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분들이 종종 있다. 심지어는 그중에는 개신교 신자들도 있다.

 

나는 이런 질문을 하는 이들에게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가 아니라 나는 과연 누구인지를 먼저 생각하라고 말한다.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도를 위해 무엇을 행할지보다 먼저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라고 자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는 것을 자기 성찰이라고 한다. 자기 성찰은 자기 검열이 아니라 자기 관찰이라 할 수 있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은 아무리 하늘 높이 올라간 영혼이라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바라보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 내가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고 내가 어디에 속박되어 있는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내가 어떤 욕구에 갇혀 있는지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 분심을 일으키는 것과 내가 하느님께 바라는 것을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나아가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바라시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하고자 하는것의 힘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습이 어떻든 다 받아들여 주신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것만 받아들이려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이를 깨닫고 이겨 내야 한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기도가 나를 위한 혹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하느님 중심이 아니라 나 중심의 기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를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나 자신을 제대로 볼 때 비로소 우리는 영적 진보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기도가 나만을 중심으로,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요청에만 머문다면, 기도는 하느님의 뜻을 듣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답을 확인받는 시간에 그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바라보고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훈련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훈련하지 않으면 그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다. 영성도 훈련하지 않으면 깊어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침묵도, 묵상도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바로 하고자 하는우리의 마음과 노력에 달려 있다.

 


 

‘3분 루틴부터 시작하기

 

사제로서 가끔씩 신자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나에게 자신의 어려움과 고민을 상담할 때는 더욱 그렇다. 사제로서 할 수 있는 경험에도, 건넬 수 있는 공감과 위로의 말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한계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해 영적 동반을 해야 할 때 느끼는 한계다. 어디서 들어본 좋은 말밖에 할 수 없을 때도 있는데, 이럴 때는 정말이지 숨고 싶어지고, 경험을 쌓고 함께 길을 찾는 사람으로서 도움을 주기 위해 어떤 일이든 영적인 눈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훈련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따로 시간을 내거나 오랜 시간 삶의 자리를 떠나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적 진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 맺을 수 있는 결실이다. 예컨대 잠들기 전 딱 3분만이라도 자기 성찰을 꾸준히 한다면, 영적 진보의 길을 걸을 수 있다.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은 말했다.

 

하루 중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마음을 정돈하고 하느님의 현존을 살피는 시간을 갖지 못한다면, 영적인 진보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영적 진보를 위해서는 자기 성찰과 꾸준한 훈련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잠들기 전 3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다음과 같은 간단한 루틴부터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하나의 방법으로 참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1분 동안 오늘 하루를 돌이켜 본다. 그다음 1분 동안 오늘 무엇이 나와 하느님을 멀어지게 했는지, 오늘 하루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는지, 정말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었는지 살펴본다. 마지막 1분은 오늘 경험한 일을 통해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바라시는지 성찰하고, 다음날 하루를 잘 시작하고 끝맺을 수 있도록 청해 본다. 3분이라는 시간에 너무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성찰하고 있음에 더 큰 의미를 두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 따라, 성령의 인도 아래 해 나갈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고 은총을 청해야 할 것(에페 6,18 참조)이다.

 


 

성령과 함께 다시 시작할 것

 

영적 쇄신과 영적 진보는 잘 살거나 더 잘하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 이는 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일이며, 성령과 함께 성령의 이끄심대로 살아가는 삶이다. 우리가 성령께 귀 기울일 때 우리는 영적 쇄신과 영적 진보를 통해 성화의 길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바오로 사도께서도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간다면 그 어떤 육적인 욕망도 이겨 낼 것이라 말씀(갈라 5,16-25 참조)하셨다. 따라서 영성 생활은 성령과 친교를 나누며 살아가는 삶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친교를 통해 우리는 나 자신을 드러내는 삶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이 실천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주님, 제가 저 자신을 알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을 알게 하소서.”(아우구스티노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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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으로, 현재 '서울시립청소년드림센터 교육팀'에서 청소년들과 동반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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