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통과하는 방법

영성과 신심

시련을 통과하는 방법

시련 한가운데에서 발견하는 하느님의 손길

2026. 0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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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련은 우리를 멈추게 하는 벽처럼 느껴지지만,

때로 다른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여정을 당신의 파스카로 바꾸어 가십니다.

 


 

신학교에서 사제를 양성하는 소임을 맡은 지 어느덧 5년이 되었다. 신학교는 교육과 수련의 장소이기에 겉으로는 규율과 규칙이 엄격하고 다소 딱딱한 장소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은 울타리 안에서도 여느 공동체와 다름없는 희로애락의 서사가 펼쳐진다. 웃음이 넘칠 때도, 슬픔을 마주하는 순간도 있다.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기쁨도 있다.

 

신학생들과 함께 살아가는 시간은 참으로 소중하다. 누군가 내게 양성자로 지내며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지 묻는다면, 단연 학생들과 마음을 나누며 그들이 사제직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라고 답할 것이다. 이는 비단 나만의 대답은 아닐 것이다. 함께 양성에 참여하는 모든 양성자가, 학생들이 진정한 변화를 통해 그리스도를 닮은 제자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함께 걷는 길

 

우리 신학교는 생활 지도자가 한 학년을 맡아 생활을 동반하고, 영성 지도자는 학년 구분 없이 지정된 학생들의 영적 동반을 담당한다. 생활 동반 사제든 영적 동반 사제든, 신학생과 긴밀하게 마음을 나누며 관계를 맺는 일은 지도자들에게 중요한 과업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마음을 살피는 신학교의 삶은 함께 걸어가는 여정이 된다.

 

그런데 그 여정에 늘 꽃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시밭길을 더 자주 마주하게 된다. 학생들이 가시밭길과 돌길을 만날 때, 그들을 동반하는 사제들도 여지없이 같은 길에 서게 된다.

 

어느 날, 한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생활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해 나가던 친구였는데, 이날따라 표정이 밝지 않았다. 계속 이야기를 나누던 가운데 이 친구가 말을 꺼냈다. 단짝 친구가 성소를 고민하고 있으며, 자신도 덩달아 성소의 고민 앞에 서게 되었다고 했다.

 

가슴이 철렁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기억을 더듬어 보니, 최근 성소를 고민하고 있다는 그 학생의 표정이 좋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를 자책하게 됐다. 혹시나 시간이 흘러 이미 결정을 내리고 마음을 닫은 것은 아닐지, 마음을 나눌 시기를 놓쳐 버린 것은 아닐지 두려웠다.

 


 

 시련의 의미

 

다행히 그날 나를 찾아온 학생과의 대화는 잘 이루어졌다. 이제 그 단짝, 곧 성소를 판단해 버릴 것 같은 그 학생을 만나야 했다. 마음이 조급했다.

 

나는 기회를 보아 그를 대화의 장으로 초대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자신의 생각을 꺼내 놓았다. 이미 마음이 많이 기울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을 내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마음이 여린 친구였다. 그의 어린 시절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성소의 고민 앞에 가정 환경이 주는 어려움이 가장 컸던 듯했다. 그는 온전히 마음 둘 곳 없던 학창 시절을 지나면서도, 진정한 사랑인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며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초대하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이였다. 하지만 신학교의 삶은 그를 자꾸만 답답하고 지치게 했던 듯하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 학생에 대한 안쓰러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신학생 시절의 내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신학생으로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고민을 했고, 신학교를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있었다. 그 시절 나의 가정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너무 힘이 들어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평탄하게 이 길을 걷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느냐고,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을 빨리 알려 달라고 하느님을 재촉하기도 했다.

 

그때가 떠올랐기 때문에 나는 우선 그 학생을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마음에 당장 성소를 판단하는 것은 훗날 후회로 남을 수 있었다. 상처 입은 마음이 먼저 치유된 뒤에 사제 성소의 길을 식별하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생각을 그대로 전했다

 


 

시련은 우리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우리는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성장 과정에 대해 듣기도, 내가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처음 품었던 성소의 마음을 함께 되돌아보며 앞으로 다가올 내일에 대한 희망을 함께 찾아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함께 기도하고자 했다. 하느님께서 과연 어떤 길로 이끄시는지 귀 기울여 보고 싶었다.

 

한 달쯤 지났을까. 그의 표정이 점점 평온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얼마 뒤에 그는 나를 찾아와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당장 정답을 알 수 없는 사제 성소의 부르심이지만, 계속해서 마음을 다해 노력해 보고 싶다고 했다.

 

기뻤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물론 하느님께서 그를 사제 성소가 아닌 다른 길로 부르실 수도 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그 길을 식별해 가는 사람들이다. 다만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기도 전에 충동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위험한 시기를 지나왔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그는 서두르지 않고, 더 깊이 듣고, 더 천천히 응답할 준비를 하게 되었다. 앞으로 그가 어떠한 방식으로 응답하든, 우리는 그 길을 찾아 함께 걸어 나갈 힘을 조금 더 얻게 되었다.

 

어린 시절이 순탄치 않았던 그 학생도, 나도 만일 그때의 시련을 벌로만 여겼다면 견뎌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우리에게 찾아왔던 시련은 벌이 아니라 길이었다. 시련은 우리를 무너뜨리기보다 다른 자리로 이끌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하느님의 더 큰 사랑을 나누고자 했던 어린 마음을 떠올려 보면, 과연 그 길에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련은 멈춤이 아니라 건너가는 사건이다.

 


 

생명으로의 인도, 파스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탈출하며 홍해를 건넜고, 광야에서 40년의 시간을 견뎌 냈다. 그 세월이 단지 시련과 고통으로만 남지 않았던 이유는 마침내 그들이 새로운 땅 가나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광야는 단순한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구원으로 건너가는 시간이었다. 시련은 그렇게 고통에서 구원으로 건너가는 사건이 되었다.

 

우리는 절대자이신 예수님께서도 시련을 겪으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십자가의 시련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계셨다. 다가올 고통을 알면서도 맞이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이었을까.

 

겟세마니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신다. 그 고통이 너무나 극심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기도하신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마태 26,39)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내 아버지의 뜻에 당신을 맡기신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파스카를 완성하셨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게 하셨고,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다. 이것이 진정한 파스카다. ‘파스카는 본래 건너감을 뜻하는 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실패의 자리가 아니라 건너감의 자리였다. 이것이 곧 파스카의 자리.

 


 

하느님께서는 시련을 당신의 파스카로 바꾸신다

 

인간은 하느님의 신비 안에 놓인 존재다. 그리고 하느님의 신비는 우리의 일상을 인도한다. 그러나 그 신비는 언제나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72항 참조). 그래서 우리는 시련 앞에서 자주 좌절한다.

 

육아는 끝이 없어 보이고, 가정 경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배우자에게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집 안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어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한다. 점점 노쇠하시는 부모님의 병환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직장에서 인정받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얼마나 더 애써야 할지 가늠할 수 없어 지치기도 한다. 이런 마음을 안고 주일 미사에 가 보지만, 충분한 위로를 느끼지 못한 채 돌아올 때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련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라는 말은 위로가 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시련을 당신의 파스카로 바꾸신다.”라는 말은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느님께서는 시련을 겪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 시련에서 도망치지 말라고. 그 시련의 고통을 안고 당신 앞에 나오라고 초대하신다. 그리고 붙들라고, 당신의 손을 붙들라고 하신다. 당신의 말씀으로, 성사로, 기도로 붙들라고 하신다. 그리고 기다리라고 하신다. 당장에 어떤 판단을 내리지 말고, 결과를 재촉하지 말고, 고통 속에 함께 계신 당신을 신뢰하며 더 머물러 보라고 용기를 주고 계신다.

 

그렇게 우리는 시련을 건너가게될 것이다. 우리 가운데 파스카가 이루어질 것이다. 고통은 그대로일지라도 마음이 달라지고, 상황은 여전한데도 시선이 달라지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시련은 벌이 아니었음을, 하느님께서 우리를 생명으로 건너가게 하시기 위한 길이었음을.

 


명형진 신부, 문재상 신부, 방종우 신부,

심재현 신부, 은성제 신부, 이한석 신부의 신앙 이야기를 담은

《사제들의 시대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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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인천교구 사제. 로마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에서 교의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에서 교의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자들과 가까워지는 신학을 지향하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공부는 결국 믿는 이들의 기도로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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