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제는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요? 저는 신자들의 아픔과 기도를 마주하며,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이들의 곁을 지키는 것이 사제의 사명임을 배워 갑니다. |
안녕하세요. 지난 1월에 사제품을 받은 김지훈 마르코입니다. 새 사제라고 하면 얼굴도 뽀송뽀송하고 산뜻할 것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저는 조금 늦게 신학교에 입학해 중고 신인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나의 성소
저는 중‧고등부 시절 냉담 신자였고, 성소에 대해서는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학창 시절 저의 장래 희망은 군인이었습니다. 특별한 사명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저 군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렇게 장교로 임관하던 날, 저는 이런 다짐을 하였습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 자는 그 꿈을 닮아 가는 말처럼, 주님은 저에게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셨으니, 하느님께서 섭리하신 대로 순명하며 살겠습니다.”
이 포부를 안고 장교로 열심히 살아가던 어느 날, 군종 신부님이 제 마음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지셨습니다.
“너, 신학교에 가서 사제가 되면 좋을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뜬금없는 말이었습니다. 사제가 되는 일은 저에게 합당하지도,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더 놀라운 사실은 제가 그 질문에 차마 대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 말이 이토록 무거운 돌덩이처럼 제 마음에 남았는지, 그리고 그 질문에 답을 내리기까지는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제 성소에 대해 고민하던 가운데, 더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그때, 제 성소에 대한 고민을 들어주시던 군종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20대에는 선택하기가 쉽지만, 나이가 한 살씩 먹을수록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아.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지.”
처음에는 이 말 듣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저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습니다. 제 마음은 뜨거웠지만, 한편으로 조급했습니다. 제게 부족한 것은 차분히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냉철한 이성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이성 사이에서 오랜 고뇌와 성찰 끝에, 마침내 오랜 군 복무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제가 되고 나니
저는 한 신부님이 심어 주신 성소의 씨앗을 잘 품고, 또 다른 신부님의 직언과 많은 이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여기에서만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곳으로 이끌어 가고자 하십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성소에 대한 수많은 고민은 사제가 되기 위한 준비 시간이었고, 새 옷을 입기 위해 단추를 하나씩 채워 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사제품을 받고 나니 뜨거운 열정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부임한 본당에서 첫날 밤을 보내고, 새벽에 일어나 십자가의 길을 따라 돌았습니다. 그 길에서 한 신자를 만났습니다. 추위에 얼굴을 꽁꽁 싸매고 있던 저에게 그분은 '보좌 신부냐'고 물었습니다. 잠시 대화를 나누던 중, 화요일은 새벽 미사가 유일하게 없는 날이지만 그분은 성당에 와서 기도하신다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놓치고 있던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신학생 시절에는 사제품을 받기 위해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열심히 살았는데, 정작 사제가 되어서는 사람들의 축하와 호의 그리고 저를 잘 대해 주는 마음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긴 밤을 지새우며 미사 시간을 고대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사제로서 살아가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미사 안에서 주님을 만나기를 갈망하는 누군가를 위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많은 사람이 미사 시간과 상관없이 성당을 찾아 기도하고, 고해성사를 통해 주님을 만나기를 갈망합니다. 신자들의 아픔에 귀 기울여 주고 하느님의 위로와 은총을 전하는 역할은 사제만이 할 수 있음을 느끼며, 사제 스스로 자신 정체성과 사명감을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더욱 깊이 깨닫는 요즘입니다.
신학생은 신학교에서 사제가 되기 위해 양성 받고, 사제는 신자들과 함께 살아가며 자신이 사제로 살아가는 이유를 배워 갑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끄시고 주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언제든지, 어디서든, 누구를 만나든 사제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늘 기억하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노 사제의 이야기
지난 사제 성화의 날에 서품 50주년을 맞이했던 어느 노 사제의 한 말씀이 떠오릅니다. 사제로 살아간 지 5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부족하게 살아왔다고 고백한 신부님의 솔직하고 담백한 말씀이었습니다. 아직 사제품을 받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저는 그 자리에서 너무나 큰 거리감을 느꼈습니다. ‘나는 아직 1년밖에 살지 않았는데, 얼마나 더 배워야 하는 것인가?’
그 말씀을 곱씹으며 나의 모난 부분이 다듬어지고 없어질 때까지 얼마나 깎여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과정이 두렵기도 합니다. 가까운 동기들부터 선배 신부님을 바라볼 때마다 저는 어딘가 열등감을 느끼곤 합니다. 초롱초롱하고 반짝거리는 눈망울의 신부님들, 말도 잘하고 잘생긴 신부님들을 바라보며 '나는 어딘가 부족한 사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기도와 묵상 가운데 한 가지를 깨닫고 고백합니다. 저는 늘 나약하고, 부족하기에 하느님께 더 기도하고 매달릴 수밖에 없으며, 하느님께서 가장 쓰기 편한 도구라고 말입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지난날, 저에게 사제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전해 준 파란 눈의 외국인 할아버지 신부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신부님은 어린 시절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성탄절이 가까워진 어느 추운 날, 신부님의 어머니가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성당에 있는 마을까지 두 시간을 넘게 걸어가셨습니다. 그러나 성당 주임 신부님이 시간이 늦었다는 이유로 고해성사를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사정을 말했지만, 신부님은 냉정하게 뒤돌아서서 어머니를 내쫓았다고 합니다. 결국 어머니는 다시 그 길로 집에 돌아와, 아들에게 사제가 되거든 성사를 청하는 신자들의 부탁을 외면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신부님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르코, 신부가 된다면 성사를 주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너에게 오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그 안에 담긴 무게를 미처 몰랐습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이 말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때로는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다른 핑계를 대며 사제로서 맡겨진 직무를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지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사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 안에서 무엇을 비우고 버리며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채워 가야 하는지 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 집 안에는 하느님께서 계시고 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머무실 자리를 마련하도록 제 안의 집착, 욕망, 탐욕, 애착 등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것에 마음을 빼앗긴 채, 세상과 뒤섞여 살아가는 사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기도와 성찰 가운데 저를 이 자리에 초대하신 하느님의 부르심에 늘 새롭게 응답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쓰시기에 가장 편안한 도구로 살아갈 힘을 청하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
🙏 함께 기도해 주세요.
<사제의 첫 계절>은 새 사제들의 첫 사목과 신앙의 여정을 함께 나누는 연재입니다. |
🔗 이 주제가 흥미롭다면, 더 읽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