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라고 말하기

영성과 신심

‘괜찮아!’라고 말하기

나를 향한 하느님의 자비로운 눈길 안에서 다시 시작하는 용기

2026. 0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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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줄로 요약했어요

 

  • 상처 입은 마음을 하느님의 자비로 바라보는 법을 안내합니다.
  • 예수님의 괜찮아.”라는 위로 안에서 다시 시작할 용기를 발견해 보세요.
  • 죄책감보다 자비가 먼저라는 복음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시작 기도로 코린토 213-5절의 말씀을 바치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듯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위로도 우리에게 넘칩니다.”

 


 

위로가 필요한 시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위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25년 정기 희년의 주제를 희망의 순례자들로 정하시며, 코로나, 전쟁, 자연재해 등으로 상처 입고 고통받는 세상에 희망을 전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지난 코로나 시기를 떠올려 봅니다. 길고도 힘들었던 이 시기에 우리의 아픈 가슴을 어루만지고 위로해 주었던 노래가 있으니 바로 나훈아의 〈테스형〉입니다. 이 노래에는 당시 코로나로 인해 여러 어려움을 겪던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마음에 대한 공감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했던 것은 우리의 괴롭고 힘든 마음, 답답한 심경을 알아주고 공감해 주며 그 마음을 표현해 줄 수 있는 이었습니다. 이 노래를 부르며 우리는 함께 외쳤습니다.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희망이 없을 때 다가오는 내일은 너무나 견디기 어려운 시련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힘든 시련 안에 하나 되어 고통을 함께 나눌 때, 우리는 시련을 이겨 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많은 사람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 주는 이가 또 한 사람 있으니, 바로 트로트 가수 임영웅입니다. 저는 신학교 후원회원 모집을 위해 본당을 방문할 때, 신학생 양성의 중요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노래 한 곡으로 마무리하곤 합니다. 그때 제가 부르는 노래는 임영웅의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입니다. 힘들고 지친 마음으로 살아가는 신자들께, 예수님께서 직접 전해 주시는 사랑 고백으로 들어주십사 노래를 불러드리면, 비록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많은 분이 공감해 주십니다.

 


 

괜찮아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과 산문이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주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 작가의 글을 역사적 트라우마와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면서도 시적인 소설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실제로 한강 작가의 작품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폭력성과 인간 삶의 연약함을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그치지 않고, 타인의 아픔과 괴로움을 공감하고 사랑과 희생으로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다움도 그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폭력성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움을 노래하며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자 했던 한강 작가의 메시지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며 사는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한강 작가의 괜찮아라는 시를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시는 아이를 처음 키워 보는 초보 엄마가 겪는 육아의 어려움을 소재로 한 시입니다. 초보 엄마는 아기가 밤마다 울어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아기를 달래 보지만 아기는 울음을 그치지 않고 몇 시간 동안 계속 울어 댑니다.

 

매일 반복되는 아이의 울음으로 인해 지친 엄마는 아기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에게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라는 말을 하게 되었고, 놀랍게도 그날 이후 아기는 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러면서 힘들 때 스스로에게 왜 그래가 아닌 괜찮아라고 하며 자기를 달래는 지혜를 배웠다고 합니다.

 

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강 작가는 마음이 무너지고 괴로울 때 자기 자신을 다독이는 법을 터득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마음이 괴로울 때 스스로에게 괜찮아라고 말하며 자신을 다독이는 것은 심리적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해 주는 괜찮아라는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될까 하고 묻게 됩니다.

 

만약 나보다 먼저 내가 겪는 어려움을 이미 겪어 본 누군가가 나의 어려움을 공감하며 괜찮아라고 말한다면 훨씬 더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가령 친정 엄마가 찾아오셔서 아이를 키우는 딸을 보고 그래, 얼마나 힘드니.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단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다 되더라. 그러니 괜찮다. 다 지나가고 잊히니 힘을 내렴.” 하고 말씀해 주신다면, ‘, 다 그런 거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용기를 내어 그 어려움을 잘 딛고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마저도 인간이 인간에게 해 주는 말이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어 오시어 인간의 모든 것을 경험하신 예수님을 주님이며 구세주로 믿고 있습니다.

 

만약 나에게 건네지는 괜찮아라는 말이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을 나보다 먼저 겪으신 예수님의 말씀이라면, 그래서 심지어 죽음의 골짜기까지 가신 분이라면, 죽음 앞의 번민, 괴로움, 상처, 상실감, 외로움, 버림받음, 마음의 산란함 등 모든 것을 겪으신 분께서, 나에게 다가와 괜찮아라고 말씀해 주신다면, 그 말씀은 나에게 엄청난 위로와 격려가 될 것입니다.

 

심지어 나의 상처는 아물고 무거운 짐은 벗겨져, 이전과 달리 살 수 있을 것이며 새로운 용기를 갖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하느님의 자비로운 눈길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기 위해서는 바로 나를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눈길을 마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자비로운 눈을 나의 것으로 하며 나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나 자신과 화해하고, 나의 결점까지도 인정하며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자신에게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한강 작가가 스스로에게 했던 말과는 다를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느님의 자비로운 눈길을 나의 것으로 하고, 나 스스로 하느님의 자비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인정하고 수용하며 나 자신과 화해를 이룬 후 건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프랑스 유학 시절 영성 지도 신부님께 배운 가장 소중한 교훈은 나를 향한 하느님의 자비로운 시선을 나의 것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오로야. 하느님께서는 네가 죄를 지었든 그렇지 않든,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시며, 너를 보듬어 안아 주신단다. 네가 죄를 짓고 상처를 입고 괴로워할 때, 하느님께서는 그런 너를 손가락질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로 인해 고통받는 너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공감하시고 위로해 주시며, 괴로움에서 벗어나 다시 기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신단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죄를 짓고 상처를 입어 괴로워할 때 손가락질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고통을 깊이 공감하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또한 내가 죄를 뉘우치고 당신과 이웃과 화해하여, 고통스러운 마음에서 벗어나 활기차고 기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용기를 내어

 

사실 하느님의 자비로운 시선을 수용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을 때 나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다그치고, 외면하고, 손가락질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버지의 자비로운 눈을 마주할 수 있었을 때, 이제 나 자신에게 그러지 않아도 됨을 깨닫게 되었고, 그분의 그 눈으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으며, 나를 수용하고 약함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었습니다. 나의 부족하고 가련한 모습이 나의 약함에서 비롯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고, 약함으로 점철된 나 자신과 내가 살아온 삶을 인정하고 보듬어 안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 스스로에게도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괜찮아.” 이는 나의 잘못이나 죄를 정당화하거나 감추기 위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어둠 속에 머물지 않고, 빨리 아버지께 돌아와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이었으며, 나의 괴로움을 하느님께서 잘 아시고 공감해 주신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영적 여정이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용기는 나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닌 나를 자비로운 눈으로 바라보시는 주님의 눈길을 만날 때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일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하느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고 다시 앞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괜찮아. 인간이란 그렇게 약한 존재임을 내가 잘 알고 있단다. 그러니 너무 죄의식에 파묻혀 의기소침해 하지 말고, 나와 화해하고 다시 일어서서 새로 시작하자. 내일은 오늘보다 더 밝고 희망찬 해가 떠오를 테니까.”

 


 

📿묵상하기

 

위로가 필요한 나의 마음을 주님 앞에 내어놓고 묵상해 봅시다.

 

1. 한강 작가의 시 괜찮아를 읽고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괜찮아라고 말해 봅시다.

2. 나에게 다가와 괜찮아라고 자상하게 말씀을 건네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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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수원교구 사제. 수원가톨릭대학교 총장이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습니다. 축구와 글쓰기를 즐기며, 교회 쇄신과 시노달리타스 구현, 젊은이에게 신앙을 전하는 일, 희망의 신학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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