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을 관통하는 믿음, 사랑, 희망

영성과 신심

약함을 관통하는 믿음, 사랑, 희망

향주삼덕으로 바라본 인간 삶의 연약함

2026. 0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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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믿음은 약함을 지나며 자라납니다.
  • 사랑은 불완전함을 품으며 성숙해집니다.
  • 희망은 시련 속에서도 하느님을 바라볼 때 끝까지 이어집니다.

 


 

시작 기도로 코린토 11312~1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양식이 없으면,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겠죠.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믿음, 희망, 사랑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만약 우리 삶에 믿음이 없다면, 사랑이 없다면, 희망이 없다면, 과연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바로 이러한 것들로 인해서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향주삼덕이라고 불리는 믿음, 사랑, 희망이 모두 인간의 약함을 관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살아온 삶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고, 우리가 살아온 삶을 온전히 끌어안을 수 있게 됩니다.

 


 

약함을 관통하는 믿음

 

먼저 믿음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로 모든 것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세례성사는 신앙의 길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첫 관문일 것입니다. 우리 각자 신앙의 길을 걸으며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몸소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우리의 약함과 한계가 결코 걸림돌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것들을 없앨 수도 없을뿐더러, 주님께서 바로 거기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시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유학 시절, 석사 논문 지도교수였던 쇼베 신부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신앙은 위험을 감수하기에, 그 자신의 고유한 약함에서 오는 의심을 끊임없이 관통해야 합니다.”

 

이처럼 신앙은 모험이며, 우리의 약함으로 인한 의심은 늘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의심이나 회의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삶의 수많은 시련과 위기 속에서 하느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한 적이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때로는 신부님도 그런 적이 있는지 묻는 분도 계십니다. 다행히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요!

 

신앙은 실존적 의심을 관통하며 성장합니다. 그렇기에 신앙은 결코 쉽지 않은 모험이며, 용기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기쁨과 환희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조금씩 깨뜨려 가며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면 기쁨과 환희뿐만 아니라 갈등과 번민의 시간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러한 순간들이 결코 지워 버리거나 잊어야 할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유학 시절에 힘이 되었던 것

 

문득 유학 시절이 떠오릅니다. 박사 과정을 밟으며, 끝이 보이지 않아 애를 먹었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의심이 고개를 들자, 평온했던 제 삶은 사라지고 의심과 갈등, 번민이 연이어 찾아왔습니다. 공부를 끝내지 못할 것 같은 의구심, 건강 염려증, 불면증 등이 저를 엄습했습니다. 결국 저는 제 안의 생각과 걱정에 갇혀 혼자서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영성 지도 신부님과의 면담이었습니다. 면담 때마다 저는 신부님께, 왜 제가 공부를 끝내지 못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신부님은 매번, 왜 제가 공부를 잘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이 싸움은 오랜 시간 지속되었고, 결국에는 신부님이 이기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고집을 내려놓고 마음을 다잡아 공부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공부에 흥미를 느끼고 열정을 갖게 되었고, 결국 공부를 잘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순간을 어떻게 지나왔을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 시련의 시기가 오늘의 저를 만들어 준 반드시 필요했던 순간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에게 도움을 준 주님과 이웃들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느낍니다.

 

믿음은 그렇게 성장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오는 어려움은 우리 각자의 약함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중에 돌이켜보면 믿음의 시련과 위기가 오히려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해 주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온전한 확신 속에서만 사는 신앙은 사실 가장 위험한 신앙입니다.

 

어떤 영화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과도한 확신이라고 했던 대사가 떠오릅니다. 맞습니다. 확신은 우리 삶을 굳건하게 해 주지만, 과도한 확신은 광신으로 빠지게 할 수 있고, 우리 눈을 멀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연약하지만 그로 인해 계속해서 성장해 갈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인간적인 신앙입니다.

 


 

약함을 관통하는 사랑

 

사제로서 가장 힘든 것을 들라고 하면, 저는 혼인미사 강론을 들겠습니다. 신학교에 있다 보니 혼인미사 주례는 거의 하지 못했는데, 언젠가 지인의 부탁을 받아 미사 주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강론을 준비하던 중에 문득 인간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유행가 가사를 인용하면 좋겠다 싶어 인터넷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살펴보니, 사랑을 노래하는 대부분의 노래는 실연의 슬픔과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실패한 사랑에 대한 노래는 수없이 불렸으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러한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실패한 사랑일지라도 그 이야기를 읊조리는 이유는, 그것이 각자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추억이며, 자기 삶에서 소중한 일부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부족하고 아쉬워도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인생인 것입니다. 사랑은 그렇게 우리의 약함을 관통합니다.

 

혼인예식 때 부부는 서로의 손에 반지를 끼워 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사랑과 신의의 표지로 당신께 드리는 이 반지를 받아 주십시오.”

 

이 약속은 사랑만이 아닌 신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변치 않는 신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영원히 충실하겠다는 다짐을 지키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잘 압니다.

 

살아가다 보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신뢰를 저버리는 순간도 마주하게 됩니다. 완벽하지 않기에 서로의 부족함과 결점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허니문 기간이 끝나면, 이제 서로의 부족하고 부정적인 모습이 더 분명히 보입니다. 갈등과 번민 속에서 울며 헤어질까, 아니면 이 사랑을 그만둘까 고민하는 것, 남녀 사이의 사랑이란 그런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것 또한 우리의 약함을 관통하는 인간적 사랑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랑의 기쁨》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빛과 그림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 저는 상대방의 사랑의 진가를 알려면 그 사랑이 완벽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은 자신의 능력껏 최선을 다하여 나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그 사랑이 거짓이라거나 참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한계가 있고 현세적이라고 하여도 그 사랑은 참된 것입니다. …… 사랑은 불완전함을 지니고 용서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113)

 

우리는 빛만이 아니라 그림자도 지닌 존재입니다. 때로는 상대방의 결점과 단점이 나에게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안고서도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인간적 사랑은 그렇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팔짱을 끼고 정원을 거니는 노부부의 모습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들의 평화로운 모습이 삶의 세찬 풍랑과 파도를 거치며 지켜 온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제나 수도자로서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제나 수도자는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완벽할 수 없습니다. 약함과 한계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때로는 쓰러지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약함 안에서 당신의 권능을 펼치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희망도 인간의 약함을 관통한다.

 

인간은 크고 작은 희망으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이러한 희망 덕분입니다. 희망 없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의식하지 못하지만, 늘 희망 속에서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희망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코로나 시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내일이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나훈아의 테스형에는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기어이 오고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주어진 것은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이 오늘은 고역이자 무거운 짐일 것입니다.

 

인간은 희망으로 살아가며 희망을 끊임없이 갈구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희망보다는 좌절과 절망일 때가 많습니다. 그로 인해 의기소침과 우울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살아오면서 우리의 희망은 얼마나 많은 시련과 도전을 받아 왔습니까? 또 얼마나 많이 무너져 내렸습니까? 이는 우리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그럼에도 희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은 희망이 무너져도 희망하도록,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도록’(로마 4,18 참조) 이끌어 주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순간들을 오직 당신만을 희망하도록 하기 위한 시련으로 삼으십니다. 인간적 희망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하고, 언젠가는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십니다. 인간적인 희망이 스러져 가는 이유는, 우리가 오직 하느님께만 희망을 두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인간의 희망은 흐릿해지고 흔들리지만, 그러한 시간을 지나며 우리는 오직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법을 배워 갑니다.

 

모든 사람이 그 길을 걸었음을 기억합시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특히 욥이 그러했습니다. 성인 성녀들도 희망의 시련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길을 끝까지 걸으셨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희망이 거짓이 아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희망은 분명 존재한다고, 그러니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하십니다.

 

인간의 희망은 연약함을 뚫고 나아갑니다. 좌절과 절망, 위기와 시련의 시기는 나중에 보면 우리의 희망이 허무맹랑한 것이 아닌 진정한 희망임을 확인하게 하고, 우리가 진정 주님께만 희망을 둘 수 있도록 거쳐야만 했던 디딤돌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연약함이 우리 삶 곳곳을 관통한다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지나온 삶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과거를 새로운 마음으로 마주하며,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진정한 자유를 누릴 때, 우리는 비로소 내일을 새롭게 계획하고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묵상하기

앞서 인용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다시 읽고 답해 봅시다.

 

1. 우리가 빛과 그림자에 얽혀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2. 상대의 약함과 한계를 경험했을 때, 그 사람의 사랑이 진실했다고 인정할 수 있나요? 가령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해 봅시다. 때론 부정적인 감정 속에 파묻어 놓은 부모님에 대한 기억에서 그 사랑의 진가를 다시 발견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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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수원교구 사제. 수원가톨릭대학교 총장이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습니다. 축구와 글쓰기를 즐기며, 교회 쇄신과 시노달리타스 구현, 젊은이에게 신앙을 전하는 일, 희망의 신학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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