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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줄로 요약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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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기도로 마태 14,24-33의 말씀을 들어 봅시다.
주님께서 늘 함께하심을 믿지만, 큰 두려움이 엄습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종종 하신 말씀은 “두려워하지 마라.”였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두려움에 빠져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삶에서 다양한 시련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 삶을 위기에 처넣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큰 두려움에 빠지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하시는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두려움을 거슬러 용기를 내어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물 위를 걷는다는 것
오늘 시작 기도로 읽은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걷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셨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예수님께서 실제로 물 위를 걸으신 것일까요? 복음은 이 물음에 직접 답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사도들이 겪은 것처럼, 삶이라는 배가 항해하는 동안 종종 풍랑과 파도를 만나지만,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고 의지한다면, 우리는 무사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용기를 내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주님께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라고 청합니다. 주님께서 “오너라.”(마태 14,29) 하시자 베드로는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갑니다. 그런데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것을 보고 이내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리고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주님께 큰 소리로 외칩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마태 14,30)
우리 삶의 모습은 실로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모든 이가 자기 삶을 평온하고 안정적인 삶보다는 시련과 위기의 연속으로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삶은 도전의 연속입니다. 산다는 것은 물 위를 걷는 것과도 같으며,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도 같습니다. 과연 이 삶을 잘 살아 낼 수 있을까? 성공할 수 있을까? 끝까지 잘 갈 수 있을까? 이대로 끝나 버리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살면서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늘 의구심을 마주합니다. 우리는 늘 의구심과 의혹 안에서 주저하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의심을 거슬러
우리 신앙인은 믿음을 통해 시련을 이겨 내는 법을 배웁니다. 세상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삶을 주님께 의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생명이 하느님으로부터 비롯하기에, 우리 삶을 소중한 선물로 받았음에 감사드리고 그 선물을 잘 사용하여,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되돌려드리고자 계획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시며, 우리를 이끄시기에,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리면 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집착이 생기고 욕심이 과해서, 주님을 잊고 우리 자신이 무언가를 해 보고,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실패하고 지치고 절망합니다. 때로는 하느님을 원망합니다. 하지만 기댈 곳 없는 우리에게 유일한 보루는 주님이심을 알기에, 다시 주님께 다가옵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주님께서는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약함으로 인해 의심은 사라지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흔들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아직 우리 믿음이 단단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마태 14,31)
예수님의 이 말씀은, 베드로 사도에게 하신 핀잔이라기보다는 의심의 뿌리를 파헤쳐 보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왜 의심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의심하고 있습니까?
놀랍게도 의심의 뿌리를 파헤쳐 보면, 엉뚱하고 허무맹랑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악에 편승하여 만들어 놓은 것일 수 있습니다.
사실 의심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속아 넘어간 것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의심합니까? 무엇을 의심합니까? 이제 의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배를 항해하는 분께서 우리를 위해 깨어 계시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의 실체
의심만이 아니라 두려움도 큰 장벽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금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느냐?” 이제 그동안 엄두도 내지 못했던, 두려움의 실체를 파헤쳐 봅시다.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사실 두려움의 실체는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병에 대한 우리의 굳어진 생각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가 마법처럼 작용하여 엄청난 힘으로 우리의 두려움을 자극하며, 우리를 옴짝달싹 못 하게 합니다. 실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허상을 두려워하는 것이며, 그 허상에 사람들이 부여한 과장된 생각과 근심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살아보면 현실은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름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보다 먼저 같은 시련을 경험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그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의 경험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조금씩 두려움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나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혼자가 아니며, 우리가 고통과 시련 안에서 서로 연대하게 되어 있음을 느끼며, 용기를 내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용기는 바로 그분과의 만남, 그분 음성을 듣는 것에서 비롯합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는 이 말씀을 듣고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큰 결단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아주 작은 노력, 다리에 힘을 주고 앞으로 한 발짝 내딛는 노력이 출발점이 되어, 긴 여정을 다시금 떠날 수 있게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 이 말씀을 기억합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니 의심을 버리고 주님께 의탁합시다. 분명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있는 모든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을 걷어 주시고, 밝고 희망찬 내일을 열어 주실 겁니다.
“주님이십니다.”(요한 21,7)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해 허망한 밤을 호수에서 지새워야 했던 제자들……. 그들을 바라보시며 뭍에서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은 채 계셨던 스승을 뒤늦게야 알아본,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가 베드로 사도에게 건넨 말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처한 상황은 우리의 것과 너무나 닮아 있지 않나요?
살아오면서 아무것도 잡지 못해 허망한 삶을 보냈다고 생각하나요? 내 삶이 성공하지 못해 어디에도 내세우지 못한다고 생각하나요? 주님께서 바로 그 삶에 함께하십니다. 우리를 계속해서 격려하고 응원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제 주님을 알아뵙고 우리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시련과 위기를 잘 극복해 왔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 어떤 의심과 두려움도 우리의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셔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두려워하거나 의심하지 맙시다. 주님께 온전히 맡겨 드립시다. 우리의 미래와 운명, 모두 주님께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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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하기
1. 살아오면서 깊은 의심에 빠져본 적이 있나요? 2. 지금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내가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주님과 대화를 나눠봅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