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울 때 어떻게 하느님을 믿을 수 있을까요?

영성과 신심

두려울 때 어떻게 하느님을 믿을 수 있을까요?

“내가 너와 함께 있다.” | 하느님의 현존을 믿는다는 것

2026.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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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줄로 요약했어요

 

  • 힘들고 두려운 순간에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 하느님의 현존을 믿는다는 것은 시련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주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 “내가 너와 함께 있다.”라는 말씀을 붙들 때 우리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시작 기도로 사도 18,9-11 말씀을 듣겠습니다.

 

“어느 날 밤 주님께서는 환시 속에서 바오로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오로는 일 년 육 개월 동안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사도 18,10) 창세기 첫 장부터 요한 묵시록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전해 주는 한결같고 확고한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하시려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니 떨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나약한 우리는 인생에서 밀려오는 파고 앞에서 늘 흔들리고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기와 시련의 때에 주님의 현존을 확신하고, 그분께 매달리고 의탁할 수 있는 내적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그러한 내적 자세는 한 번에 주어지지 않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서서히 우리 안에 쌓여 가는 덕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의 현존에 대한 자각과 확신은, 삶에서 닥치는 시련과 위기 한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격려해 주고 용기를 주시는 주님을 알아보게 하며, 굳건히 일어나 앞을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현존이란 선물

 

‘현존’이라는 말은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같이 있어 줄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 말인가요! 우리가 외롭고 쓸쓸할 때, 큰 병에 걸려 두려움에 휩싸이고 실의에 빠졌을 때, 혼자라고 느낄 때, 배신당해 상처 입고 괴로워할 때,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곁에 함께 머물며 “너는 혼자가 아니야. 내가 함께 있어 줄게. 그리고 끝까지 네 편이 되어 줄게.”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요!

 

한 아동 심리 전문가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기가 혼자서 울고 있을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배고픔이 아니라 홀로 있음이라고 말이죠. 엄마가 식사를 준비하는 사이, 요람에 자고 있던 아기는 잠시 깨어나 이내 큰 소리를 내며 울음을 터뜨립니다. 엄마가 곁에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기의 울음은, 달리 표현하자면 이런 뜻일 겁니다. “엄마, 나와 함께 있어 주세요. 나는 엄마의 현존에 목이 말라요.”

 

인간은 현존을 먹고 삽니다. 돈도 품도 들지 않는 ‘곁에 있음’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실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우리는 종종 경험합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과 재물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현존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현존, 함께 있어 줌입니다.

 

루카 복음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작은아들이 돼지를 치며 겪었던 가장 큰 고초는 육신의 배고픔보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 그의 곁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루카 15,16)

 

육체적으로 함께 있을 수는 없어도 연락을 주고받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응원하며 빈자리를 채워 줄 때, 우리는 서로에게 현존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존재를 우리는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천사와 같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우리 삶이 수많은 천사로 가득 차 있음을, 그 천사들을 통해 우리가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 고되고 무거운 오늘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배려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작은아들은 돼지를 치며 뒤늦게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남아돌 정도로 사랑이 넘쳐난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그 사랑이 그리워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가 만난 아버지는, 타지에서 가장 큰 고초를 겪고 있을 때조차 그와 함께 계셨던 분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아들을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작은아들과 마음으로 늘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루카 15,24)

 


 

“나다”

 

아주 어릴 적, 잠에서 깨어나 엄마가 옆에 계시지 않음을 알고 두려움에 빠진 적이 종종 있습니다. 어느 날 새벽, 밖에서 요란한 사이렌이 울립니다. 깜짝 놀라 눈이 떠진 나는 엄마가 옆에 안 계심을 깨닫고 두려움에 빠져 울기 시작합니다. 그때 들린 엄마의 음성, “엄마 여기 있어.” 그 한마디가 두려움을 깨끗이 지워 버렸습니다.

 

“나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에게 늘 마음을 두시며 우리 삶에 관심을 기울이시고, 우리가 살면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더 많이 성장하도록 기대와 희망을 두고 곁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요한 6,20)

 

큰 바람이 불어 호수에 물결이 높게 일었을 때,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두려움에 빠진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 순간 배는 어느새 제자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세찬 풍랑에도 우리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리고 가실 것이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프랑스의 남동부 지역에 위치한 아르스(Ars)를 순례한 적이 있습니다. 소박하고 가난한 삶을 사셨던 아르스의 성자 비안네 신부님께서 남기신 많은 말씀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거기 계십니다!(Il est là!)”

 

눈을 돌려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보이지 않으시는 주님, 실은 주님께서 바로 거기에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계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스쳐 지나가지만, 믿음의 눈은 우리 안에 늘 함께 계신 그분의 현존을 알아보게 합니다.

 


 

배를 운항하는 선장을 믿기

 

제자들이 예수님과 호수에서 배를 타고 이동할 때, 호수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상황에서도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스승님을 깨우며 모두 죽게 되었다고 말씀을 드리자 예수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에게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라고 하시니 바람이 멎고 고요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믿음이 약한 제자들을 나무라며 말씀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40)

 

이 이야기는 수도 없이 풍랑과 돌풍에 휩싸이는 우리 인생을 빗대어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살다 보면 우리 삶을 뒤흔들고 전복시킬 것만 같은 위기의 순간들이 종종 찾아옵니다. 우리는 겁에 질려 이제 죽게 되었다고 자포자기하거나 실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뱃고물에 누워 쉬고 계시기에 마치 안 계신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그분께서는 바로 거기, 바로 폭풍우 한가운데 서 계십니다. 믿음이란 주님께서 함께 계심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민간 신앙에서 나온 말로 ‘삼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난히 안 좋은 일이 겹칠 때 종종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말에는 삶에서 닥치는 시련을 어쩔 수 없이 받아내야 하며, 삼재가 지나야만 액운이 사라지고 좋은 일이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큰 시련과 위기가 닥치더라도, 매일 새로운 사건이 생기고 새로운 도전이 닥치더라도, 우리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악을 선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혼자라고 느끼며 두려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때 주위를 바라봅시다. 누군가 아주 가까이서 우리와 함께 걷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손을 내미십시오. 주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도움을 주실 것입니다. 그분의 이끄심에 맡기십시오. 그리고 힘을 내어 일어서십시오. 위기와 시련은 지속될 수 있지만, 어느새 꿋꿋이 걸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종종 잊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배를 조종하는 분은 선장이라는 것입니다. 예, 선장님께서 갑판 위에 계십니다. 배의 여러 곳을 살피며 안전하게 항해하고자 깨어 계십니다. 배를 책임지시는 분은 선장이십니다. 우리는 선장이신 예수님을 신뢰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분께서 목적지로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하실 것이니 말입니다.

 


 

✍ 묵상하기

 

1. 나와 함께 계시는 주님의 현존을 체험한 적은 언제인가요?

2. 주님께서 나의 삶을 친히 운항하고 계심을 믿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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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수원교구 사제. 수원가톨릭대학교 총장이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습니다. 축구와 글쓰기를 즐기며, 교회 쇄신과 시노달리타스 구현, 젊은이에게 신앙을 전하는 일, 희망의 신학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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