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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줄로 요약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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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기도로 시편 116편 5절에서 6절 말씀을 듣겠습니다.
“주님은 너그럽고 의로우시며 우리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는 분.
주님은 소박한 이들을 지켜 주시는 분. 가엾은 나를 구해 주셨네.”(시편 116,5-6)
강한 척하며 살아온 우리
자기 돌봄의 첫걸음은 ‘약한 나를 끌어안기’일 것입니다. 자신의 약함을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 때, 자신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고 자기 자신과도 화해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약함의 수용을 통한 나 자신과의 관계 회복이 관건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을 매우 꺼리는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약함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겉으로는 강한 척 살아가지만, 속은 숱한 상처로 가득한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약한 존재이며, 우리의 약함은 언젠가는 드러나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에 약함을 굳이 감출 필요는 없습니다. 모두가 다 약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약함을 인정할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해도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실 자신의 약함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고 수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앞서 언급한 세 차원의 관계, 곧 하느님과 이웃, 나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기에 더욱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상처 없이 살아온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은 약한 존재입니다. 육적으로도 그렇고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먼저 우리의 육적인 약함을 살펴봅시다. 우리 몸에 남은 수많은 상처는 우리가 살아온 삶의 흔적을 보여 줍니다. 상처는 아물어도 흉터는 남습니다. 이는 우리 육신이 얼마나 상처 입기 쉬운 연약한 존재인지를 보여 줍니다.
또한 인간의 육신은 언젠가 쇠하고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병들고, 늙어 가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이유는 약한 육신을 안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플 때, 건강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 병에 걸려 괴로울 때 너무 쉽게 단정하거나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연약한 몸을 지니고 태어난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란 없습니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Hodie mihi, cras tibi’
한 공동묘지 입구에 새겨진 이 문장은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연약한 존재임을 일깨워 줍니다.
우리 몸의 약함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돌봄과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 몸을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대할 수 있고, 더욱 정성껏 돌볼 수 있습니다. 약함은 어쩌면 소중함의 또 다른 표현인지도 모릅니다. 약하기에 더욱 소중하며, 정성스럽게 돌보고 보살펴야 할 몸입니다.
내 마음은 얼마나 돌봄받고 있나요?
그런데 우리 몸만큼, 아니 어쩌면 몸보다 더 쉽게 상처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우리 마음과 영혼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 왔나요? 그만큼 우리는 상처 입기 쉬운 존재입니다. 겉으로는 아무 상처도 없는 듯 강해 보이는 사람도, 실은 남모를 아픈 상처를 깊이 숨긴 채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모두 마음 깊은 곳에 상처의 흔적을 지닌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정해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며 역사입니다. 몸에 남은 상처가 때로는 꿋꿋이 살아온 삶을 기억하게 하듯, 마음속에 남은 상처의 흔적 또한 우리가 그럼에도 꿋꿋이 살아내 온 시간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제 우리가 마음으로 겪어 온 시간들을 돌아봅시다. 지금 내 마음은 어떤 상태인지 조용히 들여다봅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왔나요? 상처 입기 쉬운 연약한 존재인 우리는, 그동안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돌보며 살아왔나요? 우리가 얼마나 상처 입기 쉬운 존재인지를 깨닫는 만큼,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보고 보살필 수 있을 것입니다.
약함을 인정하는 용기
의사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환자가 자신의 아픈 곳과 증상을 상세히 설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말할 수 없다면, 의사는 그 병을 치료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의사의 의술만이 아니라, 병이 치유되고자 하는 환자의 의지와 노력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은 아픈 일이며,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바로 여기서 딜레마가 생겨납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의사를 찾아가 아픈 곳을 보여 주어야 하지만, 그것은 때로 어렵고 두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입니다. 하지만 용기는 내 마음대로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합니다.
이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바로 ‘약함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약함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우리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수용할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을 달리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아픈 과거와 상처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영적 여정은 주님께서 이끄시는 길이기에, 우리에게는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약함은 우리의 삶 전체를 관통합니다. 우리가 겪어 온 모든 일, 삶의 모든 여정 안에는 약함이 스며 있습니다. 우리가 받아온 상처와 아픈 과거, 삶의 괴로움과 고통, 근심과 고민……. 어느 것 하나 자랑스럽게 드러내기 어려운 삶이며, 부끄럽고 초라해 보이기만 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우리의 타고난 약함으로 인한 것입니다. 모두 그렇게 살아갑니다. 다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의 약함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임을 수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영혼의 자유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약함 안에서 큰 힘을 발휘하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현존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약함 안으로 들어오신 예수님
저는 종종 묻습니다. 인간은 왜 이렇게 연약한 존재일까? 하느님께서는 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이렇게 약하게 지으셨을까? 강철과 같이 만드셨다면, 인간이 이렇게 상처 입고 괴로워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질문에 하느님께서는 직접 답하지 않으십니다. 성경도 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성경은, 인간의 약함을 피하지 않으시고 온전히 당신 것으로 받아들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실 때 인간의 약함을 피하거나 없애지 않으시고 온전히 당신 것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약함 안에서, 그리고 그 약함을 통해 구원을 이루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약함은 단순히 피하거나 부정해야 할 것, 혹은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몸소 받아들이신 거룩하고 고귀한 약함입니다. 우리가 그 약함을 인정하고 수용할 때, 우리는 주님의 마음 깊은 곳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약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깨닫는 동시에, 영혼의 진정한 자유로움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나와 같은 약함을 지닌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고 동정하게 됩니다. 약함 안에서 서로가 하나임을 발견하고, 거기서부터 출발하여 타인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깨달음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도 회복하게 합니다. 약함을 취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고 연민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우리가 약함 속에서도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용기와 위로를 건네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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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기 바오로 사도 역시 자신의 약함 안에서 더욱 강하게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을 경험했습니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12장 9절에서 10절 말씀을 읽고, 다음 물음에 답해 봅시다.
1. 나는 나의 약함을 어떤 순간에 깊이 경험했나요? 2. 나는 약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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