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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국민 가수로 잘 알려진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가 예수님의 사랑을 노래한 곡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아름다운 노래와 가사 속에 담긴 예수님의 작은 음성을 들어 보아요. |
가요인가, 성가인가
TV와 라디오에서 자주 들었던 심수봉 씨의 노래 ‘백만 송이 장미’는 제게 늘 묘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분명히 국민 가수가 부른 대중가요인데 들을 때마다 어딘가 성스러운 울림이 배어 나왔기 때문입니다. 장르도 독특합니다. 트로트 정서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1980년대 일렉트로팝 리듬을 사용하여 특유의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사가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남녀 간의 흔한 사랑 노래 같지만, 끝부분으로 갈수록 단순한 감정을 넘어 더 깊은 차원의 사랑으로 나아가는 전개를 보여 주는데 저는 이 지점에서 이 노래가 단순한 트로트 대중가요가 아니라고 확신했습니다.
“제가 체험한 예수님의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어느 날 심수봉 씨가 콘서트 실황 영상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가 체험한 예수님의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그 한마디는 그동안 풀리지 않던 제 의문을 단번에 해소해 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녀는 그리스도인이었고, 공연 앵콜 요청에 찬송가를 부를 정도로 신앙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가수 심수봉
1978년, 심수봉 씨는 대학 가요제에서 ‘그때 그 사람’으로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가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10·26 사태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활동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불교 신자였던 그녀는 절망에 빠진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사주와 점술에 매달리며 방황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 지인에게 “네 운명을 바꾸는 길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는 결정적인 조언을 듣게 됩니다.
신앙인 심수봉
1985년, 그녀는 충현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본격적인 신앙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사흘 동안 눈물을 쏟은 그날을 회상하며, “잃어버린 부모님을 되찾은 듯한 심정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이후 이혼과 재혼이라는 시련을 겪었으나, 신앙은 오히려 더 단단히 뿌리내려 갔습니다. 그리고 5년 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큰 인기를 얻으며 재기에 성공합니다.
백만 송이 장미
심수봉 씨의 대표곡 ‘백만 송이 장미’는 원래 유럽 ‘라트비아’의 민요로, 구소련 치하에서 맞이하는 민족의 비극적 운명을 모녀의 관계에 빗대어 노래한 곡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소련 출신 여가수가 남녀 간의 사랑 노래로 번안해 부르며 유명해졌습니다. 이후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번안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심수봉 씨가 ‘백만 송이 장미’라는 제목으로 번안하여 발표했습니다.
이 곡이 단순한 가요가 아니라, 개인이 체험한 예수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빚어낸 노래라는 사실을 알고 다시 들어 보면, 신학적, 문학적으로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더구나 ‘백만 송이 장미’라는 모티브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묵주 기도를 연상하게 해 친숙함을 줍니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인간은 단순히 우연히 생겨난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생명을 불어넣으신 영적 존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먼 옛날 어느 별’은 문자적인 표현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가 하느님께 뿌리를 두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사랑입니다. 다만 그 부르심은 요란한 북소리가 아니라 ‘작은 음성’으로 다가옵니다. 엘리야가 체험했던 것처럼, 그분의 목소리는 거센 바람이나 지진, 불길 속에서가 아니라, ‘조용한 미풍 속에’ 들려옵니다(1열왕 19,12 참조). 폭풍우 같은 시련이 지나간 뒤, 고요한 내면의 침묵 속에서 우리는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성소(聖召)입니다.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워 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하느님의 사랑’, 그리스어로 ‘아가페ἀγάπη(라틴어로는 카리타스caritas)’는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저 주어지는 은총이자,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가장 큰 영적 열매입니다. 따라서 그분께서 바라시는 사랑은 다만 일곱 송이 정도를 피워 내는 제한적 사랑이 아닙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수 ‘백만’ 송이는 완전한 사랑의 삶, 곧 끝없는 자비와 용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참된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상대가 알아주지 않아도, 미움 없이 계속 내어 주는 사랑이야말로 참된 사랑입니다. 백만 송이는 단순한 수의 총합이 아니라 무한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내가 너보다 몇 번 더 참고, 얼마나 더 사랑했느냐는 산술적인 셈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 순간 사랑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내 별나라’ 곧 하느님 나라로 돌아갈 희망을 얻게 됩니다.
“진실한 사랑은 뭔가 괴로운 눈물 흘렸네,
헤어져 간 사람 많았던 너무나 슬픈 세상이었기에.”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순수한 마음이 외려 조롱과 냉소로 돌아오기도 하고, 진심이 이용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단 한 송이의 장미조차 피워 내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절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낸 양’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사랑을 한다는 것은 영적 전투이며, 때로는 큰 상처를 감수해야 하는 길입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루카 10,3)
“수많은 세월 흐른 뒤 자기의 생명까지 모두 다 준,
비처럼 홀연히 나타난 그런 사랑 나를 안았네.”
인간적 사랑은 약점투성이지만 희망이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목숨까지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백만 송이’를 다 피워 내지 못하더라도, 매 순간 사랑의 결단을 내리지 못하더라도 괜찮습니다. 그분의 완전한 사랑은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십니다. 그 사랑은 갑작스레 내리는 비처럼 은총으로 스며들어, 불가능한 사랑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이젠 모두가 떠날지라도 그러나 사랑은 계속될 거야.
저 별에서 나를 찾아온 그토록 기다리던 이인데”
가족을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는 결국 끝이 나고, 언젠가는 ‘모두가 나를 떠나거나, 내가 모두를 떠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이에게는 다릅니다. 존재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고, 그분이야말로 영혼이 갈망하던 구원자이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그리워하듯, 하느님도 우리를 그리워하시기에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요한 6,38)
“그대와 나 함께라면 더욱더 많은 꽃을 피우고,
하나가 된 우리는 영원한 저 별로 돌아가리라.”
완전한 사랑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할 때, 우리 사랑은 성령의 열매를 맺어 더 이상 인간적 한계에 갇히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랑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은총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이 열매는 마침내 ‘백만 송이 장미’를 피워 냅니다.
인생은 곧 사랑의 여정이며, 하느님과 하나 된 우리를 영원한 본향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이 노래에 숨겨진 메시지는 바로, 그리스도와 결합된 사랑이 우리를 영원한 하느님 나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문화를 통해 이루어 가는 복음화의 소명
“제가 체험한 예수님의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이 한마디 덕분에 ‘백만 송이 장미’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음악 피정을 할 때 이 노래를 즐겨 부르곤 합니다. 노래를 마칠 때면 농담처럼 이렇게 덧붙입니다.
“앞으로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실 때는 꼭 성호경을 긋고 부르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성전 울타리가 아니라, ‘죽음의 땅’이라 불리던 갈릴래아 변두리의 저잣거리에서 주로 활동하셨습니다. 우리 또한 통속적이고 세속적인 문화라 할지라도 그 안에 복음을 담아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한때 로마 황제의 위엄을 찬양하던 오르간이 지금은 교회의 가장 전통적이고 공식적인 악기로 자리 잡은 것처럼 말입니다. 교회는 세속 문화를 배척하기보다 그 속에서 선한 것을 찾아내고, 때로는 수용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복음과 세상의 접점을 찾아내려는 노력, 그것이야말로 교회가 맡은 복음화의 소명입니다. 교회사는 이를 증언합니다. 전례뿐 아니라 언어적·신학적 차원에서도 복음화는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고, 그 결과 오늘의 교회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교회가 이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가장 귀한 복음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천국 문을 스스로 걸어 잠그는 고루하고 이기적인 집단으로 비칠 것입니다.
*신부님이 불러 주시는 <백만송이 장미>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37UQi9biq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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