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왜 마지막까지 “아버지”를 부르셨을까?

성경 이야기

예수님께서는 왜 마지막까지 “아버지”를 부르셨을까?

절망 대신 신뢰를 선택하신 십자가의 기도

2026. 0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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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분 안에 만나는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와 십자가의 의미

 

  • 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아버지를 부르셨을까?
  • 성전 휘장이 찢어진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 백인대장은 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 아니라 의로운 분이라 고백했을까?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윤동주, <십자가> 중에서

 

세상을 그리 잘못 살아온 것 같지 않은데도, 삶이 통째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순간이 있습니다.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어둠과 도무지 걷힐 것 같지 않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 우리는 처절하게 피 흘리며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루카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바로 그 어둠 속을 걷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하느님의 나지막한 응답입니다.

 


 

어둠이 온 땅을 덮다

 

낮 열두 시쯤 되자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루카 23,44)

 

대낮의 어둠입니다. 하루 중 해가 가장 높이 떠서 눈부셔야 할 정오에, 세상은 도리어 세 시간 동안 빛을 잃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 기이한 현상을 단순한 기상 이변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 신호로 제시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대낮의 어둠은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과 주님의 날을 예고하는 전통적인 상징이었습니다. 아모스 예언자 역시 일찍이 이렇게 선포한 바 있지요.

 

그날에 나는 한낮에 해가 지게 하고 대낮에 땅이 캄캄하게 하리라.”(아모 8,9)

 

이 어둠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붙잡히시던 순간에 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이 권세를 떨칠 때다.”(루카 22,53)

 

십자가 위를 뒤덮은 대낮의 어둠은 우연이 아닙니다.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향해, 어둠의 권세가 부리는 마지막 발악인 셈입니다.

 


 

성전 휘장이 찢어지다

 

어둠이 짙게 깔리는 동안, 루카 복음사가는 성전 휘장 한가운데가 두 갈래로 찢어졌다는 또 하나의 놀라운 사건을 전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문학적 장치가 발견됩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숨을 거두신 에 휘장이 찢어지지만, 루카는 이 순서를 뒤바꿉니다. 예수님의 죽음보다 먼저 어둠이 닥치고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집니다. 왜 루카는 이 사건의 순서를 바꿨을까요?

 

루카는 예수님의 죽음 이후를 절망이 아닌, 구원의 서사로 그리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과 하느님 사이를 가로막던 성전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역사를 예수님의 마지막 숨결 앞으로 과감히 당겨 놓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음이 어둠에 패배한 실패가 아니라, 하느님의 철저한 주도권 안에서 이루어지는 승리임을 보여 줍니다. 어둠의 권세가 아무리 기세를 올려도, 하느님께서는 이미 당신의 구원 행동을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로 외치십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이 구절은 시편 31편의 간절한 기도 문구를 인용한 것입니다. 제 목숨을 당신 손에 맡기니”(시편 31,6)라는 의인의 고백에, 루카는 예수님의 심장과도 같은 단어 하나를 더 얹었습니다. 바로 아버지입니다.

 

마르코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라며 시편 22편의 가장 절망적인 심연을 절규하셨습니다.

 

그러나 루카가 그리는 예수님은 다릅니다. 고통의 극점에서도 끝까지 아버지를 부르십니다. 배신당하고, 조롱받고, 살점이 찢겨 나갔지만, 그분의 입술에는 처절한 절망 대신 끝없는 신뢰의 기도가 머물러 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자아를 잃지 않고, 죽음 앞에서도 아버지를 향한 신뢰를 끝내 지켜 내는 분. 이것이 루카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예수님의 초상입니다.

 

본래 시편 31편은 박해 속에서 하느님의 구원을 청하던 의인의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평생을 의인으로 살아오신 당신의 삶을, 이 마지막 기도를 통해 온전히 완성하십니다.

 


 

의로운 분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자, 곁에 있던 백인대장이 입을 엽니다.

 

"정녕 이 사람은 의로운 분이셨다.”(루카 23,47)

 

이 고백은 마르코나 마태오 복음의 고백과는 전혀 다른 무게감을 지닙니다. 다른 복음서에서 백인대장은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 마태 27,54)라고 외치지만, 루카의 백인대장은 예수님을 의로운 분(δίκαιος, 디카이오스)”이라고 일컫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루카 복음의 수난기 내내 빌라도는 세 번이나 그분의 무죄를 선언했고(루카 23,4.14.22), 헤로데 역시 잘못을 찾지 못했으며(루카 23,15), 함께 못 박힌 죄인조차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루카 23,41) 하고 고백했습니다. 백인대장의 말은 이 긴 무죄 선언의 거대한 마침표입니다.

 

둘째는 이 단어가 지닌 뜻의 깊이 때문입니다. 루카 복음에서 의인이라는 칭호는 하느님의 뜻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묵묵히 기다렸던 이들, 즉 즈카르야와 엘리사벳(루카 1,6), 시메온(루카 2,25), 아리마태아 요셉(루카 23,50)에게만 허락된 아름다운 칭호였습니다.

 

더 나아가 구약의 지혜서 2-5장에서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박해받고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지만, 결국 하느님의 손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고난받는 의인을 예고합니다.

 

루카는 예수님을 바로 그 의인의 완벽한 성취로 고백합니다. 세상의 모든 불의와 박해 앞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신뢰를 잃지 않는 태도, 그 가장 고결한 의로움안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던 사람들

 

예수님의 엄숙한 죽음 앞에서 십자가 아래 모인 이들의 시선이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백인대장은 하느님을 찬양했고, 구경하러 왔던 군중들은 가슴을 치며 슬퍼하며 돌아갔으며, 갈릴래아에서부터 동행한 여인들은 멀리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습니다(루카 23,47-49).

 

루카 복음사는 이들의 모습을 결코 스쳐 지나가는 단역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무언가를 목격한 이 사람들은 곧바로 다음 이야기인 사도행전의 위대한 주인공들로 부활합니다. 여인들은 빈 무덤의 첫 목격자가 되고, 가슴을 치던 군중들은 성령 강림 후 베드로의 설교를 들어 찬란한 회개의 주역이 되며, 백인대장의 고백은 사도행전 10장의 코르넬리우스라는 첫 이방인 신자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루카의 시선은 십자가라는 거대한 죽음 앞에서도 언제나 부활이라는 미래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올바르게 본 것이 곧 변화의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십자가 앞에서 무엇을 고백하는가?

 

십자가 아래의 백인대장은 참으로 역설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도, 유다인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분을 처형한 권력의 최전선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의 논리와 권력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께서는 철저한 패배자이자 사형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백인대장은 그 비참한 죽음의 순간에서 하느님의 거룩한 현존을 보았고, 그분을 의인이라 고백했습니다.

 

루카 복음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이 죽음 앞에서 무엇을 보고 있으며, 무엇을 고백하느냐?”

 

참된 신앙은 때로 세상의 계산법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모순 앞에서 잉태됩니다. 십자가는 세상의 눈에 완전한 실패처럼 보이지만, 루카는 그 처절함 속에서 아버지를 향한 의인의 완전한 신뢰를, 그리고 그 신뢰에 마침내 응답하시는 하느님의 숨결을 읽어 냅니다.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고통의 한복판에서, 아버지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으셨던 예수님의 마지막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패배처럼 보이는 그 자리에서 정녕 이분은 나의 주님이시며, 의로운 분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신앙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참고 문헌

  • R.E. Brown, The Death of the MessiahII, AYBRL, New HavenLondon 2010.
  • J.A. Fitzmyer, The Gospel According to Luke X-XXIV, AB 28A, Garden City 1985.
  • J.B. Green, The Gospel of Luke, NICNT, Grand Rapids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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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성경 공부는 하느님과 예수님을 만나는 길이기도 하지만, 내 자신이 누구인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 주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게 합니다. 저에게 성경은 무한히 펼쳐진 우주와 같습니다. 그 안에서 끊임없는 질문을 만나며, 그 모든 답이 하나로 이어지는 신비로운 여정을 떠나는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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