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의 의미

성경 이야기

“주님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의 의미

사도행전 9장에 나타난 바오로의 회심이 오늘 우리 삶에 묻는 것

2026. 0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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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분 안에 만나는 바오로의 회심의 의미

 

  • 사울은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극적인 회심을 경험합니다.
  • 사도행전 9장은 박해자였던 사울이 어떻게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 그의 회심에 담긴 빛과 어둠’, ‘새로운 창조의 의미를 오늘 우리의 신앙과 함께 살펴봅니다.

 


 

당신이 태초에 말한 첫마디는 빛이었습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성경에는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결정적인 질문을 던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신비로운 존재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갈망이거나, 메시아를 알아가는 역동적인 과정이며, 때로는 예수님의 권위에 직면했을 때 터져 나오는 실존적 물음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요한 8,25)라고 물었지만 정작 그분이 누구신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반면 모세와 야곱은 하느님의 이름을 물었고, 그 질문을 기점으로 그들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여기,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 하나로 인생의 항로가 가장 극적으로 바뀐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사울입니다.

 


 

위협하는 자 사울

 

사울은 스테파노가 돌에 맞아 순교하는 비극적인 현장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성경은 스테파노를 죽이려는 증인들이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두었다고 전합니다(사도 7,58). 그들이 사울의 발치에 옷을 쌓아 놓은 것으로 보아, 사울은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이던 해방민들의 회당(사도 6,9) 신자들과 긴밀한 관계였을 것입니다. 사울은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울은 유다교의 전통을 위협하는 새로운 종파, 그 길’(사도 9,2)을 따르는 이들을 박멸하는 데 광적인 열성을 보였습니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잡아 가두었고(사도 8,3), 심지어 대사제의 권한을 빌려 예루살렘에서 240km나 떨어진 다마스쿠스까지 원정을 떠나려 했습니다. 그곳의 디아스포라 회당에 숨어든 신자들까지 샅샅이 잡아 오겠다는 심산이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을 없애려는 사울의 열망은 가히 살인적이었습니다. 그는 위협과 살기를 마치 숨 쉬듯이뿜어내고 있었습니다(사도 9,1). 종교적 열정이 눈먼 분노와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역사(민수 25,6-8의 피느하스, 1마카 2,23-27의 마타티아스)가 이미 보여 준 바 있습니다. 구약의 열혈 신앙인들이 그러했듯이, 사울 역시 하느님을 향한 비뚤어진 열정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을 반드시 제거해야 할 숙적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주님은 누구십니까?

 

사울 일행은 기세등등하게 다마스쿠스로 향합니다. 데카폴리스의 주요 도시이자 번창한 상업 중심지였던 그곳에서, 사울은 대사제의 서한을 들고 유다 사회에 이단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강력한 소탕 작전을 벌일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마스쿠스에 가까워졌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번쩍이는 빛이 사울을 둘러쌉니다. 거대한 자연의 경이, 혹은 하느님의 현현 앞에 놀란 사울은 땅에 거꾸러집니다. 눈을 뜰 수 없는 강렬함 속에서 소리가 들려옵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사도 9,4) 예수님께서는 시각이 아닌, 귀를 찌르는 목소리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사울은 이 압도적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내뱉은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사도 9,5)라는 말은, 아직 예수님을 신적 구원자로 고백하는 신앙의 언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전 존재를 뒤흔드는 미지의 절대자를 향한 두려움 섞인 비명이자, 정체성을 묻는 다급한 질문이었습니다.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들려온 대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사도 9,5)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박해받는 신자들과 완벽하게 동일시하셨습니다. ‘그 길을 따르는 자들을 잡아 가두던 사울의 행위는, 실상 예수님을 직접 찌른 박해였다는 선언입니다. 이는 일찍이 루카 복음에서 하신 말씀의 실현이기도 합니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루카 10,16)

 

이제 사울은 거대한 모순과 직면합니다. 하느님을 위해 일한다고 확신했으나, 정작 하느님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계신 예수님을 박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체성을 밝히신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모호하고도 무거운 명령을 내리십니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사도 9,6)

 

거창한 소명도, 위대한 파견의 메시지도 없습니다. 그저 가서 수동적으로 기다리라는 명령뿐입니다. 이로써 박해자 사울의 단단했던 자아는 완전히 해체됩니다. 역사의 주도권은 사울의 손에서 미끄러져 주님께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사람들을 묶고 끌고 가려던 능동적인 박해자가, 이제는 타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눈먼 자가 되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회심의 본질이 있습니다.

 

사울이 마주한 계시의 결과는 철저한 박탈이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사울은 동료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들어갑니다. 그의 실명은 빛의 강렬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영적인 맹목 상태였던 그의 내면을 보여 주는 강력한 상징이었습니다. 사울은 그렇게 거대한 어둠을 안고 도시로 걸어 들어갑니다.

 


 

한 인간을 향한 우주적 재창조

 

신약 성경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을 꼽으라면 단연 이 다마스쿠스 길 위의 만남일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이 사건을 바오로의 회심이라는 엄숙한 제목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의 첫 페이지를 펼쳐 이 장면을 가만히 겹쳐 보면, 사울을 덮친 그 눈부신 이 사실은 한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대대적인 우주적 재창조사건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도행전의 이 장면은 창조의 첫날과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이룹니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창세 1,2-3)

 

예수님을 만나기 전 사울의 내면은 분노와 독선, 적개심으로 뒤엉켜 있었습니다. 이는 창세기가 묘사하는 창조 이전의 상태,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는 혼돈이자 어둠이 심연을 덮은상태와 일치합니다. 스스로 빛 가운데 있다고 자부했으나 실상은 깊은 영적 암흑 속에 있었던 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둠으로 가득 찬 세상에 대고 빛이 생겨라.” 하고 외치시며 무질서를 잡고 창조를 시작하셨습니다. 다마스쿠스 길 위에서도 똑같은 창조의 신비가 재현됩니다. 박해의 에너지가 최고조에 달했던 사울의 어둠 속에, 하느님께서는 태초에 쓰셨던 바로 그 창조의 빛을 다시 한번 꺼내 드시어 그를 사방으로 둘러싸셨습니다. 빛이 생기자 어둠이 물러가듯, 그 신적인 빛은 사울의 그릇된 명분과 종교적 교만을 순식간에 날려 버렸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빛을 경험한 사울이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한 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는 사실입니다(사도 9,9). 그 사흘간 사울은 철저한 암흑 속에 머물렀지만, 그것은 파멸의 어둠이 아니었습니다. 태초의 물 위를 감돌던 하느님의 영()이 마침내 사울의 내면을 감돌며, 그를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빚어내시는 거룩한 창조의 시간이었습니다. 훗날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서간을 통해 왜 그토록 새로운 피조물을 목 놓아 외쳤는지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2코린 5,17)

 


 

우리의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마음의 꼴을 갖추지 못하고, 독선과 상처라는 어둠이 심연처럼 내면을 덮칠 때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그 혼돈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무력감에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다마스쿠스로 향하던 사울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어둠이 가장 깊어질 때, 창조의 그 강력한 빛을 들고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외침에 들려오는 주님의 목소리는 우리를 단죄하는 심판의 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제 혼돈과 어둠에서 나와, 내가 만든 생명의 빛 속에서 살아가라.”고 초대하시는 주님의 다정한 재창조의 선언입니다.

 


 

참고문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김재혁역, 민음사, 2025.
  • D. Marguerat, Gli Atti degli Apostoli 1, EDB, Bologna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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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성경 공부는 하느님과 예수님을 만나는 길이기도 하지만, 내 자신이 누구인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 주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게 합니다. 저에게 성경은 무한히 펼쳐진 우주와 같습니다. 그 안에서 끊임없는 질문을 만나며, 그 모든 답이 하나로 이어지는 신비로운 여정을 떠나는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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