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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주를 손에 쥐고”
10월 묵주 기도 성월을 맞아, 묵주 기도가 우리 삶에 건네는 위로와 이끄심을 돌아봅니다.
신앙의 길에서 우리는 때때로 방향을 잃고 막막해집니다. 그럴 때 묵주를 손에 쥐고 성모님의 손을 잡아 보면 어떨까요?
성모님과 함께 걷다 보면, 어느새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예수님께로 다시 한 걸음 가까워질지도 모릅니다. |
엄마의 손을 놓쳤던 날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훨씬 전으로 기억합니다. 다른 일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꽤 규모가 있는 옷 가게 앞이었던 것 같은데, 큰 할인 행사를 했는지 수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의 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 앞을 지나가다가 인파에 한눈을 판 사이 어머니 손을 놓치고 말았죠.
손을 놓쳤다는 것도 모른 채 사람들을 구경하다, ‘아차, 엄마!’ 하고 정신을 차렸을 때, 제 눈높이에는 수많은 사람의 다리와 손이 보였습니다. 가장 엄마 손처럼 보이는 손을 잡고 “엄마!” 하고 불렀는데, 웬 젊은 누나의 얼굴이 쑥 내려와서 웃더니, “난 네 엄마 아닌데?” 하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당황한 저는 잘못 잡은 손을 후다닥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그 짧은 인생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가장 큰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습니다. 수많은 어른 속에서 엄마 손을 놓치고 길을 잃어 혼자 남겨진 느낌 말입니다.
금세 어머니께서 저를 찾아내셨지만, 그 순간의 두려움과 막막함은 제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엄마 손을 한 번 놓치고 길을 잃어 본 뒤로는 ‘엄마 손을 다시는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마음속에서 길을 잃다
그런 기분이 또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내적으로 말이죠. 그때도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였는데, 갑자기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제게는 너무나 불행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의문을 품었죠.
“성당에 열심히 다니신 할아버지께서 왜 불행하게 돌아가셨을까?”
“선하신 하느님께서 계신다면 왜 이런 일을 가만히 보고만 있으실까?”
“하느님이 정말 계실까?”
이런 의문들과 함께 제 내면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괜한 죄책감만 스며들고 있었죠. 고등학교에 올라가던 해 겨울, 주일 학교 피정에 가게 됐고, 고해성사 때 그동안 품었던 죄책감을 신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하느님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잠깐 침묵하신 뒤 신부님께서 물으셨습니다.
“기도해 본 적이 있으세요?”
저는 “네.”라고 대답하려다가,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성당에 다니며 여러 기도문을 입으로 많이 외우기는 했지만, 진심으로 기도한 적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없는 것 같아요.”
“그럼 묵주 기도 5단을 보속으로 기도해 보세요.”
처음으로 ‘기도하러’ 성당에 가다
그때의 저에게는 꽤나 무거운 보속이었습니다. 피정이 끝나고 며칠 후, 큰마음을 먹고 보속을 실천하러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전까지 성당에는 항상 무슨 일이 있어서 갔습니다. 아무 일도 없이 오로지 기도하기 위해, 아무도 없는 성전으로 들어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평일 오후, 기도하는 몇몇 분을 제외하면 거의 텅텅 빈 성전에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아름다운 빛이 여러 색깔을 띠며 비치고 있었습니다.
성수를 찍고 성전 안으로 한 발짝 들어가는 순간, 왠지 모를 아찔함이 느껴졌습니다. 지금도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마치 땅이 잠시 흔들린 듯하기도 했고 순간적인 어지럼증에 쓰러질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에 압도된 듯한 그 느낌이 썩 나쁘지는 않았죠.
성전 뒤편 의자에 장궤틀을 내리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번엔 기도를 정말 제대로 해보자.’
그런 마음으로 묵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기도를 제대로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기에, 나름 할 수 있는 대로 묵주알을 정성껏 굴리며 각각의 기도문과 그 말마디에 온 정신을 집중했습니다. 중간에 분심이 들면 다시 처음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죠. 기도할 줄 모르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여기 계시는구나”
그렇게 무릎을 꿇고 묵주를 잡은 채 성모송을 반복하며 묵주 기도 5단의 중반쯤에 이르렀을 때부터 아주 따뜻한 위로가 느껴졌습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비유하자면 따뜻한 햇볕이 저를 비추고 있는 것처럼, 혹은 아주 큰 어른이 제게 ‘괜찮다, 괜찮아’라고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죠.
눈물이 났습니다. 성전에는 아무도 없고 저 혼자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느님께서 여기 계시구나!’ 하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습니다. 그렇게 묵주 기도를 마친 뒤에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모든 일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겠구나.’
할아버지의 불행해 보이던 죽음을 제 얄팍한 머리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묵주기도를 하고 나니 받아들일 수 있게 됐습니다.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요. 길을 잃은 듯했던 두려움과 막막함은 사라지고, 제 길로 돌아온 기분이었습니다.
밤의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욱 밝게 보이고,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야 비로소 제 길을 찾아 나서듯이, 역설적이게도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을 때 저는 하느님의 현존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묵주를 잡으면 성모님께서 손을 잡아 주신다
신학교에 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묵주를 손에 쥐고 기도할 때 성모님께서 제 손을 잡고 예수님께 데려가 주신다는 것을 말이죠.
신학교에서는 저녁 식사 후에 대침묵이 시작되면 삼삼오오 모여 묵주를 손에 쥐고 신학교 교정을 산책하며 묵주 기도를 바칩니다. 이 습관이 남아 사제가 되어서도 묵주를 손에 쥐고 성모님께 제 손을 잡아 달라 청하며 제가 사는 동네를 걷습니다.
성모님의 손을 잡고 걷다 보면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차분해집니다. 제 손을 잡은 성모님께서 때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로 저를 데려가 눈물을 흘리게 하시고, 때로는 하느님의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저를 데려가 위로를 전하게 하십니다.
묵주 기도를 할 때 성모님께서는 제가 잃어버렸던 길을 다시 찾도록, 잠시 잊어버렸던 주님을 다시 찾도록 저를 데려가십니다.
어릴 때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제가 아무 데나 가서 놀고 있어도 어떻게든 저를 찾아내던 어머니처럼 성모님께서는 어떻게든 당신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찾아내고야 마십니다.
성모님께서도 예수님을 잃어버리신 적이 있습니다
수많은 파스카 축제 인파 가운데 어린 예수님을 잃어버리셨던 성모님께서는 사흘 동안 애타게 찾아다니신 끝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되찾으셨습니다.
저 역시 종종 그렇듯 성모님께서도 예수님을 잃어버리신 적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습니다. 그러면서도 성모님께서는 끝내 예수님을 찾아내고야 마신다는 사실을 되뇌며 묵주를 잡을 때 큰 용기를 얻습니다.
길을 잃었다면 성모님과 걸어 보세요
예수님을 뒤따르는 우리의 여정에서도 길을 잃고 예수님을 놓치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일까, 어떤 선택이 주님을 따르는 길일까. 마음이 복잡해지고 막막함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거창한 고민이 아니더라도 종종 울적해지는 날이면 손에 묵주를 쥐고, 성모님의 손을 잡으며, 엄마 손을 잡은 어린아이처럼 밖에 나가 산책해 보세요.
묵주 기도를 하며 주님께서 주신 따뜻한 햇빛과 시원한 바람을 느껴 보세요. 성모님과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면 어느새 성모님께서 나를 가야 할 길로 데려가 주시고, 복잡한 마음을 다독여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성모님과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며 그분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겠지요.
오늘, 여러분께 손을 내미는 성모님과 함께 동네 한 바퀴 산책하러 가 보는 건 어떠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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