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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기를 내어라”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아 한국 순교 성인의 믿음과 용기를 돌아보았습니다.
순교 성인들의 믿음과 용기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하느님의 현존을 바라보고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영안과 영이에 대해 알아봅니다. |
용기, 그리고 눈과 귀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마태 13,16)
순교자들의 생애를 한 단어로 표현해 본다면, 저는 ‘용기’라는 단어를 꼽고 싶습니다. 신앙이라는 소중한 유산을 이어받은 우리가 순교자들의 모범처럼 용기를 드러낼 수 있는 모습은 무엇인지 되새겨 봅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신앙인임을 증거할 수 있는 그 용기는 어떻게 발휘될까요? 저는 우리의 신체 부위 가운데서 ‘눈’과 '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눈’과 ‘귀’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가장 위대한 기적
저는 가끔 사색에 잠기곤 합니다. ‘내가 박해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그 자체가 하나의 큰 축복이라고……그리고 지금의 제 모습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만일 내가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부모님의 엄격한 신앙 교육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만일 그랬더라면, 나는 과연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느님께서는 부모님을 당신의 일꾼으로 쓰시어, 제가 집안에서 자연스럽게 신앙 교육을 받도록 친히 이끌어 주셨습니다. 저는 성직자로서 성소의 시작을, 즉 하느님 부르심의 시작을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바로 그 순간부터라고 확신합니다. 지금 돌이켜 보아도, 이는 제 삶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인 것 같습니다.
나와 하느님을 연결하는 도구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저는 신앙인으로서 자연스럽게 눈과 귀라는 신체 부위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제가 되고 나서는 눈과 귀에 대한 집중도가 훨씬 더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왜 눈과 귀가 중요할까요? 눈과 귀는 나와 하느님을 연결해 주는 필수적인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영안과 영이가 뜨이던 순간
하느님의 현존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영안(靈眼)’이라고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를 ‘영이(靈耳)’라고 합니다. 제가 영안과 영이가 뜨였을 때, 비로소 사제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돕는 일꾼이 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눈과 귀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마태 13,16)
여기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시는 눈과 귀는, 영적인 눈과 영적인 귀를 가리킵니다.
현실에서 다른 이들이 볼 수 없는 하느님의 형상이 실제로 눈에 보이고, 다른 이들이 들을 수 없는 하느님의 음성이 실제로 귀에 들린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과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초능력을 지녔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신앙적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을 지녔다는 의미입니다.
하느님의 신호에 집중하기
영적인 능력이란 신앙인이라면 자발적인 노력으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하느님께서는 매 순간 우리에게 텔레파시를 보내고 계시는데 그 텔레파시에 응답하려면 우리의 집중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내가 하느님께 얼마큼 집중하는지에 따라서, 우리의 영적인 눈이 환하게 열리고 우리의 영적인 귀가 시원하게 뚫립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만물을 통해 당신의 흔적과 발자취를 남기고 계시고, 말씀과 성사를 통해 당신의 뜻을 외치고 계십니다.
눈과 귀에 달린 천상의 기회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앞으로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영적인 눈과 영적인 귀를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일상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하느님의 음성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지상을 살아가지만 이미 천상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여러분의 눈과 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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