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은 끝내 올바른 인생길을 찾는다

철학 탐구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은 끝내 올바른 인생길을 찾는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록》 (1)

2026. 06.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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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가 지식을 대신하는 시대, 교양은 무엇을 위해 필요할까요? 

  • 교양은 왜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을까?
  • AI 시대에 다시 묻게 되는 인간다운 앎과 성숙의 조건
  • 《고백록》에서 시작하는 그리스도교 고전과 교양의 여정

 

연재를 새롭게 시작하며

 

우리 시대에 교양의 진가를 알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많은 이에게 교양은 진부하거나 아예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만큼 사회 내에 교양의 가치에 대한 회의가 깊숙이 퍼져 있고, 교양에 대한 인식이 편협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실천적이며 관조적인 앎으로서의 교양은, 정신적이고 영적인 갈망을 가진 인간의 자기실현과 행복에 있어 기초이자 지표입니다. 인간됨과 인간에게 고유한 지혜와 앎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고민하게 되는 AI 시대에 교양의 참된 의미를 음미하는 것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그렇기에 교양에 냉소적인 시류를 거슬러 교양을 옹호하는 반시대적인 고찰을 시도하고자 합니다. 또한, 교양의 길은 예나 지금이나 고전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기에, 고전을 읽고 새기고자 합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연재는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는 그리스도교 고전의 숲을 거닐며 오늘날 우리에게 교양이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음미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고전 안에서 교양의 길을 찾기에 앞서 교양에 대한 우리의 혼란스럽고 부정적인 선입견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양에 대한 비판적 시선들

 

현대 사회에서 교양은 학창 시절에 의무적으로 배워야 하는 상식 정도로 여겨지거나 생활에 별 이득이 없는 지식으로 폄하되고는 합니다. 대학의 교양 수업시간 낭비라 주장하고, 취업에 도움이 되는 더 쓸모 있는 과목으로 대체하라고 요구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대학은 자유 학예학과의 전통을 이어 오는 인문학과 순수 과학 과목을 폐지하거나 통합하기도 합니다. 피상적인 효용과 쓸모를 넘어 교양이 지닌 심오한 무용함을 옹호하는 태도는 현실에 대한 무지나 위선, 한가한 이상주의로 치부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교양에 대한 추구가 일종의 현학주의나 자기과시, 자기애적 나르시시즘으로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교양이 하나의 이념이나 구별 짓기(피에르 부르디외)의 기제로 지목되어 비판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독서나 예술 감상같이 교양을 대표하는 활동에서 이러한 양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 비하면 현대에는 공공 도서관이나 다양한 연주회와 전시회를 통해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시민들이 교양 활동에 접근하기가 용이합니다. 그런데 정작 책을 읽고 예술을 즐기는 것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필수적이고 보편적인 교양으로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때때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문화적 취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며, 희소한 명품처럼 소유할 수 있는 욕망의 대상이 되거나, 시대의 한 관심사에서 멀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표지로 변질됩니다.

 

사회학자들은 텍스트 힙이 사회적 관계망에서 소비되는 양상을 분석합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스타급 클래식 연주자의 공연에 관객이 몰리는 현상을 분석합니다. 이 안에서 그들은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우리 시대를 읽기도 하고, 문화적 소비를 통해 확인되는 사회 계급적인 우월감과 낮은 자존감을 은폐하고자 하는 욕망을 읽기도 합니다. 물론 순수하게 좋아하고 즐기는 마음에서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설령 약간의 과시적 태도나 유행을 좇는 모습이 있어도 큰 흉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소비와 자기 연출이 일상화된 현대 사회에서 문화 활동을 통해 도야를 포함하는 교양의 길을 제대로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교양과 속물주의혹은 문화 산업의 복잡한 관계를 비판하고 성찰하는 것은 근대 말에 시작된 문화 철학의 주요 과제이며 여전히 완전히 해명되지 않은 난제입니다. 교양을 고급문화에 국한하고 대중문화와 구분하는 이분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여러 측면에서 극복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중문화는 교양의 개념 안으로 적절히 포괄되고, 여흥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적 성숙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새롭게 전개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과거에 교양의 내용으로서 사유와 도야에 뿌리내렸던 예술적 창작물들이 단지 소비와 과시의 대상으로 물화되는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윤리적 통찰과 분리된 문화적 교양은 사실 교양의 원의미인 인간의 자기 형성에 기여하기 어렵고, 이는 교양의 의미에 의문을 갖는 이유가 됩니다.

 


 

《고백록》에서 시작하는 이유

 

설령 교양의 중요함을 제대로 인식하여, 교양이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인간의 품격을 높이는 원동력이라고 평가하더라도, 모든 이가 교양을 익히고 향유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회적 환경을 감안하면, 교양은 소수의 특권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이는 여가의 문제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회의는 교양을 소중하지만 삶에서 필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부차적인 차원에 속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양은 가치 있을 뿐더러, 한 인간으로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따라서 모든 이가 교양을 함양하고 향유하는 사회적 조건을 마련하는 것은 공동체의 시급한 과제에 속합니다.

 

고전을 통해 교양의 길을 찾는 여정을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위대한 고전 《고백록》에서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교양이 한가하거나 부수적인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이의 내면에 있는 진실되고 절박한 갈망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아우구스티노 성인에게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유스티노, 클레멘스, 오리게네스 같은 위대한 교부들에게서 신학적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마찬가지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전수된 교양의 세계 안에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백록》에서 유례없이 생생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정신적 방황 속에서 교양을 습득하고 성찰하는 여정이 어떻게 그에게 도전이 되었고, 되었는지, 신앙과 윤리적 회심의 계기가 되었는지를 들려줍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진리를 끊임없이 찾는 이가 숱한 오류와 방황 속에서도 마침내 올바른 인생길을 찾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것이야말로 교양의 참된 의미입니다. 이제 다음 화에서 《고백록》을 통해, 교양을 공부하고 습득하는 과정이 인격과 신앙을 형성하고 성숙시키는 여정과 어떻게 교차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 아티클에 어울리는 책 한 권

 

 

로마노 과르디니의 시선으로 풀어낸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록

과르디니와 함께 고백록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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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의정부교구 사제. 독일에서 종교 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에서 <최대환 신부의 음악 서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책과 예술, 산책을 좋아하며,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강의하고 글을 씁니다. 제가 쓰고 말하는 일들이 이웃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복음 선포의 활동이 되기를 희망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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