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문학을 권하다

가톨릭 예술

프란치스코 교황, 문학을 권하다

‘인문학자’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양의 힘(3)

2025. 0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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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교양의 시간> 시리즈 프란치스코 교황, 교양의 원천을 찾아서에서 이어집니다.

 


 

문학의 힘

 

인문학자로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양이 신앙생활에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예로 위대한 문학 작품의 영향력을 들고 있습니다. 교황에 따르면 문학은 신앙의 진리를 인격 안에 내면화하고 삶 안에서 창조적으로 실천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교황은 여러 저서나 강론 등에서 이러한 견해를 자주 언급하였고, 이를 종합하여 선종 전 해인 2024년에 <양성에서의 문학의 역할>이라는 서한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신앙인의 자아 인식, 세계와 타인에 대한 태도, 그리고 거룩한 신비에 대한 감수성의 형성에 기여하는 문학의 소중한 역할을 신학적, 철학적, 영성적으로 성찰하고 문학을 권하는아름다운 문헌입니다. 애초에 교황은 이 서한을 사제 양성 과정에 대한 제언으로 구상하였지만, 훌륭한 문학 작품을 읽는 경험이 미래의 사목자에게만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신앙인에게 매우 권장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 서한의 대상을 확장하였다고 밝힙니다.

 

교황은 개인의 인격 성숙의 여정에서 소설과 시를 읽는다는 것이 가지는 가치를 모두 함께 생각하자고 초대합니다. 교황은 독서를 점점 더 유행에 뒤진 여가 활동처럼 여기는 이 시대에 독서는 여전히 그 중요성을 잃지 않았으며, 자극적인 취미들이 줄 수 없는 잔잔하지만 깊고 지속적인 기쁨과 위로를 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멋스럽게 독서의 즐거움을 예찬합니다.

 

종종 휴일의 무료한 시간에, 인적 없는 동네의 한적함과 무더위 안에서, 좋은 책을 찾아서 읽는 일은 유익하지 못한 선택들을 멀리하게 해 주는 오아시스를 우리에게 마련해 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권태나 분노, 실망이나 실패의 순간들에 내면의 평온함을 구하는 데에 기도가 도움이 안 될 때에도 한 권의 양서는 마음의 평화를 찾기까지 우리가 그 풍랑을 다스리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2)

 


 

서사는 인격 성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교황에 의하면 독서는 인격이 성숙되는 과정에서 든든한 토대가 되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강박이나 조급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롭고 여유 있는 내면의 공간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인격의 성숙이란 내면에 상상력과 성찰과 공감의 힘이 풍성하게 깃들고 깊어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인격의 형성에 있어 서사(narrative)’와의 지속적 만남은 큰 역할을 합니다.

 

사건과 인물들이 다양하게 얽히고 전개되는 서사를 통해 우리는 윤리적 선택의 상황들과 마주하고 그 과정에서 가치관을 형성해 갑니다. 실제 경험이 한계가 있기에 우리는 수없이 많은 작품을 통해 다양한 상황들을 대신 체험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체험에 그치지 않고 감정 교육으로 이어집니다. 서사들에 영향받고 응답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나름의 판단 기준을 형성해 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서사와의 만남은 주로 영상 매체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보다는 독서가 더 내면을 확장하고 풍요롭게 하는 데 적합하다고 말합니다. 즉각적이고 몰입을 요구하는 영상과 달리 독서는 독자들이 자신의 상상력과 사유를 개입할 수 있으며, 서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문학 작품들은 단선적인 서사 구조, 직설적인 견해와 사실만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와 깊이 있는 감정 표현, 인물과 세계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담아내는 특성 때문에 인격 성숙에 가장 적합한 서사 양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전 문학 작품들은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대표적인 독서 대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탁월성을 널리 인정받는 고전 문학들은 교양을 도야하는 데 핵심을 이룹니다. ‘느림여백을 허용하는 문학 작품의 감상을 통해 형성되는 교양은 현학적인 지식이나 문학적 즐거움만이 아니라 인격의 성숙을 지향합니다.

 

인격 성숙은 신앙 성숙과 상보적이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위대한 문학을 가까이하는 독서 습관이야말로 신학생 양성에 있어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과정이라 권고합니다. 나아가 모든 신앙인들에게 이를 영적 성장을 위한 좋은 길로 제시합니다. 교황은 신앙인에 있어 문학의 가치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문학은…… 한 개인의 신비 안에서, 더 이상 환원할 수 없는 그 핵심에서 솟아납니다.”(5)

 


 

영적 성장의 동반자, 문학

 

이 서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영성적 성장을 위해 문학이 주는 유익에 대해 살피고 있습니다. 그리면서 그 모범을 교부들에서 찾습니다. 교부들은 자신들의 삶의 자리였던 후기 고대에 교양의 내용이었던 그리스, 라틴 문학들을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를 설득력 있고 감동적으로 전달하고 선포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에서 우리는 신앙이 문화 안에 자리 잡아야 하고, 신앙을 전하는 것은 시대의 훌륭한 문화적 산물들을 존중하고 그와 대화하는 것이라는 해석학적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황에 따르면 바오로 사도가 아레오파고스에서 아테네 철학자들에게 그들의 사상과 문학에 익숙한 언어로 신앙의 진리를 선포했을 때, 교회는 이미 이러한 원칙을 받아들이고 실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황은 신앙 선포에 있어 문학의 유익함을 강조하며 기초 신학자 르네 라투렐의 언급을 인용합니다.

 

문학이 인간 내면의 심연에 빛을 비추면, 계시가 그리고 신학이 그 뒤를 이어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그 심연을 꿰뚫고 들어오시어 빛을 비추시는지를 설명하는 역할을 맡습니다.”(13)

 

문학은 문화를 매개로 하여 신앙으로 초대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그 신앙이 추상적이거나 세계로부터 도피적인, 영지주의적이고 영신주의적 성향으로 기울지 않도록 구체화하는 데 큰 영향을 줍니다. 교황은 사랑이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은 그분의 육신을 보는 것이며, 이는 역사와 현실 안에서 타인을 만나는 것이고, ‘열정, 감정, 느낌, 도전과 위로의 말씀, 어루만지고 치유하시는 손길, 해방시키고 격려하는 눈길, 환대, 용서, 의분, 용기, 담대함을 감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문학적 체험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람과 사람을 잇다

 

독자는 문학 작품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함께 체험합니다. 등장인물의 운명을 함께 따라가면서 우리는 인생의 소중한 지혜를 깨닫기도 하고, 용기와 관대함, 초연함을 배우기도 합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체험하거나 가늠하기 어려운 심오한 인간 감정과 사유의 심연을 탐험합니다. 이렇듯 문학 작품을 통한 대리 경험은 우리가 내면을 개방해 은총을 수용하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나아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학 작품이 다른 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타인에 대해 진실된 감정을 가지게 할 뿐 아니라,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음과 생각을 확장해 준다고 말합니다. 이는 겸허한 마음,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 참된 가치를 추구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에서 비롯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교황은 문학이 보편적이면서도 다원적이라고 말합니다. 일상에서 훌륭한 문학을 가까이할 때 진리를 추구하면서도 타인의 다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독서는 시간을 때우는 피상적 행위가 아닙니다. 교황은 마르셀 프루스트와 같은 문호나 생 티에리의 윌리엄이나 장 조세프 쉬랭 같은 교회사의 중요한 위치를 영성가, 미셀 드 세르토와 같은 현대 사상가들을 인용하면서 강조했듯, 독서란 소의 되새김질처럼 위대한 문학 작품을 주의 깊게 대하면서, 음미하고 숙고하며 통찰과 감동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정신적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을 비추는 문학의 힘

 

문학 작품을 진지하게 대하는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따르면, 영적 식별을 위한 훈련의 시작입니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구경꾼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 자기 자신의 내면적 메마름과 공허와 대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위대한 문학은 독자의 인격 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인생의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근본적인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문학의 영적인 힘을 말할 수 있습니다.

 

문학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느님의 진리를 향한 끝없는 그리움을 향해 인간의 마음을 열어 줍니다. 이 역시 문학의 영적인 힘입니다. 이에 대해 교황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신학자이자 예수회 사제였던 카를 라너의 아름다운 논고인 <사제와 시인>을 인용하며 문학의 힘이 지닌 영적인 차원을 환기합니다.

 

시인의 말은 이름 없는 것을 부릅니다. 이 말은 부여잡을 수 없는 것을 향하여 뻗어 갑니다.”

 

인격 형성과 영적 성장에 있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는 문학의 힘은 단지 추상적인 추론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책을 사랑하고 깊은 독서 체험을 하면서 얻은 통찰입니다. 다음 화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많은 영향을 준 문학 작품들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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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의정부교구 사제. 독일에서 종교 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에서 <최대환 신부의 음악 서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책과 예술, 산책을 좋아하며,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강의하고 글을 씁니다. 제가 쓰고 말하는 일들이 이웃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복음 선포의 활동이 되기를 희망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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