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목한 사상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목하는 중요한 사상가로 프랑스의 예수회 사제이며 사회학자, 문화비평가, 종교사학자인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 1925~1986)를 들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출 직후 여러 언어권 예수회 언론을 대표해서 스파다로와 대담을 가지면서, 자신의 문화적, 사상적 배경이나 예술적 취향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히 이야기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대담은 곧 《나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솔, 2014)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여전히 ‘교양인’ 프란치스코를 아는 데 좋은 참조가 됩니다.
이 대담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젊은 수사 시절 이미 미셸 드 세르토가 주해한 예수회 최초의 사제이자 초창기의 중요한 영성가인 베드로 파브로(Petrus Faber, 1506~1546) 성인의 저서인 《비망록》이 자신의 영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합니다. 이는 내적 식별과 함께 타인에 대해 중용과 온화함, 경청과 대화의 자세를 가지는 덕목을 함축합니다.
또한 미셸 드 세르토가 높이 평가한 또 다른 중요한 예수회 영성가인 장 조셉 쉬랑 (Jean Joseph Surin, 1600~1665)의 ‘일상의 신비주의’에 공감하기도 합니다. 미셀 드 세르토는 생애의 끝까지 예수회원으로 남았지만, 자주 프랑스 예수회 및 교회의 공식 입장과 갈등 관계를 빚기도 했고, 교회 내 보다는 오히려 교회 밖에서 미셸 푸코에 비견될 문화 비평의 선구적 연구자로 인정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교황으로서 종종 미셀 드 세르토를 언급하고, 긍정적 평가를 하는 것은 의외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얼마나 폭넓고 선입관 없으며 날카로운 사상의 감식력을 가졌는지를 알려 줍니다. 《복음의 기쁨》에 나오는 식별의 기준에서도 미셸 드 세르토의 사상이 공명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라는 유명한 명제는 미셀 드 세르토가 초창기에 ‘산책’과 같은 일상성의 주제를 사회학적 연구를 통해 새롭게 의미를 부여했던 작업을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적 여정과 교양의 형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유의 대가로는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 1885~1968)을 꼽아야 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랫동안 과르디니의 사상을 가까이해 왔고, 그에 관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기도 했었습니다. 여러모로 과르디니의 지적 여정과 사유 방식, 그리고 신학과 철학의 방법론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과르디니는 20세기의 중요한 신학자 중 한 명이지만, 다른 중요한 신학자들과 달리 조직신학이나 교부학의 관점에서 신학을 혁신시킨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앙의 실천과 묵상의 영역에서 새로운 시야를 열어 주었습니다. 강론과 전례, 복음의 묵상이 그의 신학의 중심에 있습니다. 과르디니는 또한 종교 철학의 대가로서 계몽주의와 근대성이 인간에게 끼치는 여러 현상을 그 핵심에서부터 짚어 나가면서, 정신적 차원에서의 치유와 쇄신의 길을 모색하였습니다. 과르디니의 사유에는 문학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식견이 큰 역할을 하는데,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공유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르디니의 사유 중에서 서로 다른 ‘극성’들을 포괄하는 것에 각별한 관심이 있습니다. 과르디니가 보여 주듯, 다양성과 통일성 같은 서로 대립되는 ‘극성’들이 공존하는 것을 인내하면서 그러한 대립 안에서 오히려 의미를 발견하고 대화의 동기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극성의 대립은 생각을 어느 정도 미완성의 상태로 남겨 놓게 되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르디니에게서 이러한 ‘미완성적인 생각’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스스로를 완전하다고 여기는 사유와 태도는 고립되고 독단적인 이데올로기로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르디니가 사변적인 이성을 넘어서서 ‘마음’을 아우르는 사유 능력인 ‘정신’을 강조하는 것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공감하는 중요한 관점입니다. 이는 일찍이 블레즈 파스칼이 ‘마음의 논리’라는 표현으로 통찰한 것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현대의 위대한 지성이자 제1차 바티칸 공의회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존 헨리 뉴먼 성인(John Henry Newman, 1801~1890)이 되살린 통찰이기도 했습니다. 그 역시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매우 강한 인상을 남긴 사유의 대가입니다. 《렛 어스 드림》(21세기북스, 2020)을 보면, 과르디니와 뉴먼에게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얼마나 중요한 지성적 통찰을 얻게 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칼 라너, 한스 큉과 함께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현대 신학의 가장 중요한 대표자로 꼽히는 스위스 출신의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Hans Urs von Balthasar, 1905~1988)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유의 대가입니다. 발타사르는 신학에 있어 ‘미학’의 차원을 새롭게 제시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존재의 초월적 요소 중에서 인간의 구체적 감성에 호소하는 ‘아름다움’이라는 범주를 강조합니다. 선은 ‘아름다움’의 차원이 결여될 때, 그 매력을 잃게 된다는 발타사르의 통찰은 윤리와 신학에서 형식주의를 경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장과도 일치합니다. 발타사르의 신학적 미학이 조명하는 초월적 아름다움의 구체적 체험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는 식별의 원리인 ‘실재가 관념보다 더 중요하다.’에도 잘 부합된다고 할 것입니다.
한편, 발타사르는 ‘진리는 교향악’과 같다고 말하며, 다양성 속의 일치를 말하는데,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존중하면서도, 결코 상대주의나 현상주의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올곧은 갈망과 추구를 강조하는 것과 상통합니다. 발타사르는 신학자로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문학적 소양을 가진 인물입니다. 여러 프랑스어 가톨릭 문학의 고전들을 독일어로 번역하였고, 또한 그리스와 라틴 교부들의 작품과 여러 프랑스어 가톨릭 문학의 고전들을 독일어로 번역하였고, 그의 신학적 대작들에는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신학과 철학의 대가만이 아니라 수많은 문학의 고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발타사르의 초창기 저서들에는 독일 낭만주의의 종교적 요소들에 대한 독창적 해석들이 담겨 있습니다. 문학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타사르의 사유에서 큰 매력을 느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예술의 숲을 걷다
많은 이에게 ‘교양인’이자 ‘인문학자’ 프란치스코 교황을 친근하고 매력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은 예술을 향유하고, 예술을 통해 인생의 의미와 신앙의 본질로 다가서는 모습입니다. 교황은 여러 대담집과 만남의 자리에서의 대화에서 교황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 작품들을 열거하는데, 이를 통해 그가 예술을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하며,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빅토리오 데시카나 페데리코 펠리니와 같은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 영화들과, 바흐, 모차르트, 바흐, 슈베르트, 바그너 등의 독일어권 대중음악, 풋치니를 비롯한 이탈리아 오페라, 아스토르 피아졸라 등 아르헨티나의 누오바 탱고 등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언급하고 이에 관해 설명하는 내용들을 접하면, 그가 예술을 통해 얻은 문화적 교양을 어떻게 사목적인 실천과 식별에 선용하는지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가장 친숙하고 소중한 교양의 원천은 문학일 것입니다. ‘인문학자’ 프란치스코 교황을 높이 평가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도 그가 문학에 관한 감수성과 교양이 인간의 삶, 신앙인의 실천에 있어 본질적인 요소라는 것을 독창적이고 심오하게 통찰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베르나노스, 만초니 같은 위대한 작가들에게서 윤리와 영성에 대해 중요한 것을 배웠으며, 보르헤스와 같은 뛰어난 현대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많은 영감을 얻었음을 여러 번 밝혔습니다.
이제 프란치스코 교황은 작년에 신학생 양성에 관한 제언이자, 이를 넘어 모든 신앙인의 자기 양성에 도움을 주기 위해 작성한 서한인 <양성에서의 문학의 역할>에서 문학적 교양이 가진 의미에 대해 폭넓으면서도 명료하게 종합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이 서한을 중심으로 ‘인문학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유를 살펴보고, 신앙인에게 문학적 교양의 중요성에 대해 성찰해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