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이라고 모두 ‘밀’은 아니다

영성과 신심

신앙인이라고 모두 ‘밀’은 아니다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가라지의 비유가 묻는 ‘참된 신앙’

2026. 0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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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히 묵상해 봅시다.

 

  • 나는 참된 신앙인인가요, 아니면 신앙인처럼 보이는 사람인가요?
  • 공동체 안에서 나는 어떤 존재로 기억되고 있나요?
  • 나는 지금도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남은 잘 보이는데 나는 왜 안 보일까?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아무런 도구 없이 자기 얼굴을 직접 보는 것입니다. 거울이나 사진 등을 보면 가능하지 않은가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도구의 도움 없이 오직 자신의 두 눈으로 자기 얼굴을 직접 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어쩌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바라볼 수 없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역설적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더 살펴보기 위해 노력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체 구조상 우리는 자신을 직접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눈에 잘 보이는 타인은 쉽게 판단하고 평가하면서도, 정작 자신을 성찰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자기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찰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이 과정은 신앙인의 영성 생활에서 필요한 과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라지를 왜 그냥 두실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밭의 주인은 밀을 뿌렸지만,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고 합니다. 가라지는 어릴 때는 밀과 쉽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 자라고 나면 밀과 가라지를 구별할 수 있지만, 이미 뿌리가 서로 얽혀 있어 밀에 피해를 주지 않고 가라지만 따로 뽑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마태 13,29-30)

 

이 어려운 문제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답을 내리십니다. 밀과 가라지를 함께 자라게 두었다가 수확 때에 구분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언뜻 보기에 효율적인 선택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실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의 삶과 신앙의 여정에 빗대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밭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밭에서 자라는 작물들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유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밀과 가라지를 가려 내지 않으십니다. 비록 가라지가 유해 작물이고 아무런 이득을 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끝까지 자라도록 내버려두십니다.

 

이는 우리가 아무리 가라지처럼 보잘것없고 부족한 모습이라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쉽게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함께하신다는 크나큰 자비를 보여 줍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죄인에게도 의인과 똑같이 사랑을 베푸십니다. 이것이 한편으로는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가라지와 밀이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가라지를 가려 내십니다. 그렇기에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실 뿐 아니라 정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혹시 내가 그 가라지라면

 

그러나 가라지에게도 똑같은 햇빛이 비추어지고 밀과 함께 자란다는 사실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되어 수확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끝까지 자신이 참된 밀인지, 아니면 섞여 있는 가라지인지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추수 때가 되어야 비로소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가 드러납니다. 심판의 순간이 다가오면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가라지였는지, 밀이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매주 성당에 나가고, 기도하며 하느님을 만나고, 교회 공동체를 위해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매주 성당에 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무조건 밀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이었는지, 아니면 밀인 척 자리를 차지하면서 교회의 수확을 방해하는 가라지는 아니었는지 성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정하기 싫은 나를 만나는 용기

 

우리가 아무리 고통스럽고, 보기 싫고, 인정하기 싫은 자기 모습을 마주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자신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성찰하며 공동체를 위해 헌신해 나간다면, 우리는 마침내 로 수확되어 하느님과 함께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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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현재 동성중학교에서 지도 신부를 담당하고 있으며, WYD 지역 조직 위원회 봉사자부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목 현장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의 전인적인 성장을 이끌기 위한 교육적 고민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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