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사제 이야기] 조금 더 온도를 높여 줘 사랑에 날 던지게

영성과 신심

[새 사제 이야기] 조금 더 온도를 높여 줘 사랑에 날 던지게

식어 버린 두려움의 자리 위에 피어난 더 뜨거운 사랑의 부르심

2026. 0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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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제가 된다는 것은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출발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부족함과 두려움을 안은 채 사랑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일이었습니다. 지난 100일 동안 식어 버린 불안의 자리에서, 하느님께서는 영혼들을 향한 더 뜨거운 사랑을 키워 주셨습니다.

 


 

지난 2, 오래도록 상상하고 기도하며 기다렸던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신학생으로서의 10, 그 이전 동성고등학교 예비 신학생 시절,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어린 시절 빛바랜 장래 희망란 한편에 늘 자리하고 있었던 가톨릭 사제라는 그 이름이 마침내 저의 삶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고 100일이 되는 때를 특별하게 여깁니다. 아기가 태어난 지 100일째 되는 날 백일잔치를 열어 기념하고, 군인들은 입대 후 100일 즈음에 첫 휴가를 나와 지나온 시간을 돌아봅니다. 사제로서 100일이 넘는 시간을 살아온 지금, 저에게도 지나온 발자취를 차분히 돌아볼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보면 짧았을지 모르지만 결코 그냥 흘러간 시간이 아니었음을 확신하기에, 제 안에서 무엇이 식었고 또 무엇이 더 뜨거워졌는지 그 양면을 정직하게 마주해 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잘 지낼 수 있을까

 

사실 이 부르심의 길 위에 늘 감사함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불과 몇 년 전, 부제품을 앞두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저 자신의 초라함이 불현듯 엄습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제 성소라는 거대한 벽 앞에 좌절했습니다. 기쁨이 넘칠 것 같았던, 아니 기뻐야만 할 사제의 삶을 떠올렸을 때 부담스럽고 두려워서 도망치고 싶기도 했습니다.

 

내가 신자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내가 과연 하느님의 도구로 쓰일 수 있을까?

 

저는 인간적인 걱정들로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그 광야 같던 시간은 하느님께서 주신 자비의 기회였습니다. 동기들과 선배 신부님들,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무엇보다 저를 향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달으며 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따뜻한 본당의 체온, 이 순간이여 영원하라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로 사제가 된 지금, 그 시절 저를 짓누르던 인간적인 불안감과 두려움은 다행히도 차갑게 식어 내렸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은 걱정이 식은 자리에, 더할 수 없이 뜨거운 하느님의 이끄심에 대한 신뢰와 사목적 열정이 피어올랐습니다. 특히 첫 부임지인 목동 성당에서 만난 신자분들은 저의 열정에 거대한 불을 지피는 원동력이 되어 주셨습니다. 어린이부터 청년,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순수하게 하느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그분들은, 단지 새 신부라는 이유만으로 저에게 과분한 사랑을 쏟아 주시고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십니다. 그 사랑 앞에서 저는 신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을 나누려 했던 인간적인 욕심과 강박을 내려놓았습니다. 사제는 지식을 전하는 이가 아니라, 직접 기도하고 체험하며 확신한 하느님의 사랑을 삶으로 살아 내고 나누는 존재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를 내려놓은 자리에 가장 뜨거운 열기로 남은 것은 영혼들을 향한 사랑입니다.

 


 

소중했던 내 양 떼, 다시 안녕

 

특히 이번 5월 한 달간, 첫영성체 집중 교리를 하며 매일 만났던 아이들의 순수한 눈망울을 잊지 못합니다. 아이들의 신앙에 첫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그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이 깃들기를 바라며 동반했던 그 시간은 저에게 거대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사제라는 삶의 무게를 온전히 짊어지게 되면서, 제 안에서 아쉽게 식어 버리거나 놓치고 있는 무언가도 정직하게 고백해 봅니다. 신학교 시절에는 당연하게 누렸던 충분히 침묵하고 잠심(潛心)할 수 있는 시간이 사목 현장의 바쁜 일상 속에서 많이 부족해졌음을 느낍니다. 때로는 몰려오는 성무에 치여, 제 앞에 마주한 신자분들의 깊은 진심과 아픔을 온전히 정성껏 헤아리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라는 핑계 뒤에 숨어, 정작 가장 중요한 영혼들의 목소리를 스쳐 지나친 것은 아닌지 서글픔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이는 홀로 하느님 앞에 머무는 고요가 사목적 분주함에 치여 식어 버리지 않도록, 매 순간 저를 정돈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사제로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부르심의 연속입니다. 신학생 시절의 10년이 사제가 되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면, 사제로서의 100일은 그 부르심이 제 삶 속에서 구체적인 사랑으로 살아 움직이는 밀월의 시간이었습니다.

 

나약한 저를 도구로 선택해 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신비에 감사드리며, 잠심의 부족함은 더 깊은 기도로 채우고, 신자들을 향한 성찰은 더 큰 사랑으로 갚고 싶습니다. 제 안의 이 뜨거운 부르심의 열기를 목동 성당의 양들과 함께 아낌없이 나누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오늘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루카 22,42)

 

저의 서품 성구는 겟세마니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구절 속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고자 하시고 허락하신 것에 더 큰 사랑이 담겨 있다는 믿음의 확신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무책임한 회피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입니다.

 

저도 예수님처럼 온 마음과 의지로 하느님께 순종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말씀을 서품 성구로 선택했습니다. 따라서 이 서품 성구에는 주님의 도구로 살고자 다짐했던 그 변함없는 마음이, 스스로의 의지보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기도하고 고민하며 양들을 이끌 수 있기를 희망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사진 ⓒ 이재헌 임마누엘 신부

 


 

🙏 함께 기도해 주세요.

 

사제의 첫 계절은 새 사제들의 첫 사목과 신앙의 여정을 함께 나누는 연재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전해 준 이재헌 임마누엘 신부님이 처음의 부르심을 잊지 않고,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신자들에게 전하는 사제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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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목동성당 보좌 신부로 사목 중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끊임없이 기도하며 묵상하고, 그 뜻 안에서 신자들과 함께 걸어가는 사제가 되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축구와 테니스, 러닝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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