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열쇠는 문을 열지 못합니다

성경 이야기

녹슨 열쇠는 문을 열지 못합니다

연중 제21주일│교회가 다시 붙잡아야 할 ‘사명’

2026. 0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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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히 묵상해 봅시다.

 

  • 나는 정말 하늘나라의 열쇠를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 교회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곳일까요, 아니면 먼저 찾아가는 곳일까요?
  • 오늘 우리의 교회는 예수님을 얼마나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을까요?

 


 

하늘을 여는 첫 번째 열쇠

 

베드로의 아부였을까?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또 그의 아부가 적중했을까?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8-19)

 

베드로는 예수님께 하늘나라의 열쇠를 직접 받은 제자이자 교회의 근간이 되었다.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교회에 하늘나라의 열쇠가 주어졌고, 이를 통해 교회는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늘에도 일어나도록 하는 매우 결정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또한 교회는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향해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개별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 완성을 향해서만 몰두하지 않는다. 지상의 나그네인 교회는 스스로 쇄신되고 정화되어 가면서 모든 피조물에게 공동체의 문을 활짝 열고 품에 안으며 하느님 나라를 향한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이렇게 정의했다.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11)

 

이러한 교회에는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늘에도 일어나도록 하는 역할을 충만하게 수행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져 있다.

 


 

기다리는 교회, 찾아가는 교회

 

최근 들어 유럽과 미국, 그리고 호주 교회에서 점점 더 많은 젊은 청년들이 가톨릭 교회를 찾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와 분석이 있지만, 그 열풍이 우리 교회에도 전해지면 좋겠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다가 이내 문만 열어 두고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바로 이어졌다.

 

교회의 모습을 생각하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하신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저는 더 좋아합니다.”(<복음의 기쁨>, 149)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안위를 떠나 용기를 갖고 복음의 빛이 필요한 모든 변방으로 가라는 부르심을 따르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120)

 

중심이 아닌 변방으로, 더 어렵고 가난한 사람을 찾아 출발하는 교회로 변모하자는 말씀이 얼마나 크나큰 영감을 주었는지 모른다. 하늘과 땅을 올바로 연결하기 위해 교회가 땅에서 매고 풀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방향을 알려 주시는 말씀이었고, 이를 위한 중요한 성찰의 기준이었다.

 


 

출석부보다 생활 기록부

 

우리 교회는 신자들도 훨씬 많아졌고 과거보다 안정적이다. 그렇지만 쉬는 교우들이 너무나 많아졌고, 교구 또는 본당에서는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데 많은 힘을 쏟는 것 같다. 오히려 우리 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야전 병원처럼 아프고 힘든 이들이 깃들며 힘을 얻어 가는 치유의 현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보다는 일부 신자들만의 전유 공간이 되거나 커피 향 가득한 우아한 공간으로 만족하려는 모습을 볼 때면 참 안타깝다.

 

또한 주일 미사 참여에 우리 신앙의 사활이 걸려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중요한 것이지만, 주일 미사 참석이 하느님 나라를 향한 출석부라면, 미사 밖에서의 삶은 생활 기록부가 될 것이다. 개근상도 중요하겠지만, 실제로 그 개근상을 받을 만큼 애써 배운 것을 펼치는 생동감 있는 현장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이 기억되고 부각되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정해진 쳇바퀴를 도는 것과 같은 영적 웰빙에만 도취되어 유혹에 빠지기 쉬울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랑의 요구와 부합하지 않는 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영성을 제시하려는 유혹, 강생의 함축된 의미와 더 나아가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적 긴장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으려는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새 천년기>, . 52)

 


 

이제 우리가 문을 열 차례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신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그래서 그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았다. 따라서 우리 교회가 이 열쇠를 이어받았다면 교회는 모든 활동을 통해 우리 공동체 안에 그리스도를 생생하게 살아 계시게 해야 한다. 관습적이고 소극적인 교회라면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지 못하는 교회가 될 것이고, 그가 가진 열쇠는 녹슬어 하늘나라의 문을 열지 못할 것이다.

 

우리 자신이 바로 교회이며, 교회인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열쇠가 쥐어져 있다. 예수님께서 생생하게 살아 계시도록 우리 스스로 쇄신하며 현장을 가진 교회가 되자. 그래서 땅에서 이루어진 일들을 하늘에도 일어나도록 하는 열쇠를 쥔 교회, 그런 우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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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의정부교구 사제. 현재 의정부교구 성소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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