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읽기의 목적은 하느님과의 만남
현대의 영적 스승이라 불리는 안셀름 그륀* 신부님은 성경 읽기의 목적을 우리가 온전해지는 것, 우리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 자기 삶과 화해하는 것, 그리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을 향해 눈을 뜨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다른 이와 함께 읽는 것도 좋다고 합니다. 가족이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법조계에서 오래 일한 지인은, 밤 11시가 되면 온 가족이 함께 기도하고 그날의 복음을 읽는다고 합니다. 이 시간에는 밖에서 생활하는 자녀나 외국에 유학하는 자녀도 온라인으로 함께한다고 했습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은 성경 읽기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을 낱낱이 연구하거나 저자의 신학을 자세히 고찰하는 일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공부할 때 유념해야 할 좋은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텍스트를 내 삶에 비추어 읽고 스스로 되묻는 일입니다.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말씀이 내 안에 일으키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 마음을 움직이는 대목은 어디일까요? 성경을 해석할 때는 성경 언어의 비유성을 유념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모든 언어는 본질적으로 체험의 표현입니다. 성경 언어는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한 체험을 비유로 표현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성경 말씀을 비유로 보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성경 말씀을 비유로 받아들이면 누구의 해석이 옳은지를 두고 다투는 위험에 빠지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닙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입니다.”
* 1945년 독일에서 태어난 안셀름 그륀 신부는 1965년부터 1974년까지 성 오틸리엔과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부터 각종 영성 강좌와 심리학 강좌를 두루 섭렵하고 1975년부터는 교부들의 영성을 연구하는데 특별한 관심을 쏟았다. 1976년부터 다채로운 영성 강좌와 강연뿐 아니라 저술에 힘을 쏟아 지금까지 많은 책을 저술했다. 현재 유럽의 영적 지도자로 불린다. (출처: 위키백과)
각자 다르게 전달되는 말씀의 의미
어떤 분들은 성경이 어렵다고 하시고 또 어떤 분들은 성경 공부가 아주 재미있다고 하십니다. 성경의 말씀이 꿀처럼 달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하루도 성경을 읽지 않으면 못 견딜 정도로 성경에 중독되었다고 말합니다. 신앙의 눈이 아니라 학문의 연구 수단으로 성경을 공부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성경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것입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우리가 성경에 더 가까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이 어렵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주 유익하다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신비롭게도 사람마다 다르게 전달이 됩니다. 제가 얼마 전에, 창세기 강의를 오랜만에 다시 하게 되었는데 이전과 전혀 다르게 다가오더군요. 과연 말씀이 살아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미사 때마다 모두 같은 복음을 듣지만, 나중에 들어 보면 사람마다 감동하는 부분이 다른 것도 그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열고 들어야 합니다.
“읽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배울 수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잘 읽는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성경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저의 체험을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오래전에 가좌동 성당(지금의 ‘가재울 성당’)에서 저녁 8시마다 창세기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잘 아는 할머니 한 분이 강의 첫날부터 성당 맨 앞에 앉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성경도 없이 맨손으로 오셔서 앉자마자 주무시는 겁니다. 조는 게 아니라 대놓고 주무셨습니다. 저는 첫날부터 그 모습이 계속 신경이 쓰였습니다. 할머니는 그다음 시간에도 주무셨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주에는 강의가 끝나자마자 제가 그 할머니를 따라가 이야기했습니다. “할머니, 제 강의 조금 알아들으시겠어요?” 했더니 그분은 “아휴!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하시길래 난 이때다 싶어, 차마 오시지 말라고는 못 하고 “힘드시고 고단하신데 저녁 늦게 뭐 하러 성당에 성경 공부하러 오세요. 그냥 집에서 편히 쉬세요.” 했더니 그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아니야 그래도 앉아있으면 마음이 편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 나중에 그 뜻을 깨닫게 되었고 마치 망치로 뒷머리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여태까지 성경 공부를 마치 수학이나 물리 등 학교 공부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조목조목 다 이해해야 하고 앞의 내용을 알아야 뒤로 진도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신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하느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고 하느님께서 어떻게 우리와 관계를 맺고 계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마음에 새기며 그 의미에 맛 들이면, 내 안에 살고 계신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인도로 쓰인 책이므로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그 뜻과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초대, 우리 각자의 상황에 맞춰 다가오는 성경의 메시지는 성령의 크나큰 선물입니다. 각자 자리에서 하느님을 만나 그분이 초대하시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마음을 열고 이 순간 하느님이 나에게 하시고자 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나에게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
성경을 읽다 보면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나옵니다. ‘아담’이 누구인지, 아담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요셉의 이야기가 지나간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현재의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나에게 편지를 써 주었다고 한다면 그 편지가 나와 관계되는 것이고 편지를 준 사람이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면 더 소중하게 대할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지금 나에게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나와 밀접하고 나에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보석도 그 값어치를 알아보는 사람에게만 가치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나에게 가치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마치 낯선 길을 알려 주는 지도처럼, 또 요즘에는 자동차를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경도 인생의 지도, 내비게이션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길만 알면 되나요? 길은 희미하게 보이지만 도저히 걸어갈 힘이 없다든지, 어둠 속에서 빛이 없다면 길을 제대로 가기가 어렵습니다. 캄캄한 길을 걸을 때 작은 반딧불도 우리의 발길을 지켜 줍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는 깨달음이라는 성령의 빛이 있어야 합니다. 전에 계속 읽었던 부분인데도 어느 순간 내 마음을 ‘탁’ 건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를 ‘아하, 이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오는 때, 우리 영혼에 빛이 들어오는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 자체가 기도라고 생각하고 성경 이해에 대한 지혜를 구하고 그 지혜로 세상을 보면 더욱 밝고 분명하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