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백성의 역사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을 모르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 신앙생활에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 저자들은 성령의 감도를 받아 성경을 썼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성경의 원저자는 하느님이십니다.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로마 1,16)이며 우리를 진정한 행복으로 초대하는 성경, 성경 저자들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한 그 말씀은 무엇일까요?
*사제, 신학자, 번역가, 그리고 역사학자인 예로니모 성인(342~349년)은 높은 학식과 언어 능력이 출중해서 히브리어, 그리스어, 그리고 아람어로 쓰인 구약 성경과 신약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는데 훗날 가톨릭 성경으로 인식된 불가타를 탄생시켰다. 또한 그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윤리, 성경 공부와 수도 생활 방식을 교육했다. 교회에서는 존엄한 증거자라는 칭호와 함께 많은 이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다.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등 그리스도교 내 대부분의 종파에서는 그를 성인으로 공경한다. (출처: 위키백과)
성경을 신약, 구약으로 나누는데 여기에서 ‘약(約)’은 약속입니다. 말뜻 그대로 약속의 책, 새로운 약속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느님이 인간과 약속하셨는데, 인간이 자꾸 그 약속을 깨트립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약속을 다시 갱신해 주십니다. 하느님이 인간과 어떤 계약을 맺고 그것이 어떻게 이행되었고, 이행되지 않았을 때 어떠한 벌이 내렸고, 어떤 기회가 다시 주어졌는지 성경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구약 성경은 아브라함에서 모세, 다윗 그리고 예언자들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계약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역사 안에서 하느님과 어떤 계약을 어떻게 맺었고, 그 계약에 충실했는지 아닌지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 특히 구약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다인들과 이스라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작가들은 유다인들의 역사와 지리, 또 문화적 배경 안에서 하느님의 업적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란 인간 사회가 거쳐 온 변화의 자취 또는 기록입니다. 인류는 역사를 바탕으로 오늘을 살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다른 민족의 역사와 비교할 때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구원사, 구세사입니다. 하느님의 모든 활동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인간의 삶 속에 하느님께서 어떻게 개입하시고 어떤 활동을 하시며 어떻게 구원으로 이끄셨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가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역사’입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우리 구원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굳건한 믿음의 근원, 탈출기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체험은 이집트에서의 탈출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끌어내셨다는 체험은 이스라엘 전체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체험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주신다는 강한 믿음은 오늘날까지도 지속됩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유다인들은 죽음을 앞둔 가스실에서도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들의 강론을 듣고, 성경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의 근원이 ‘탈출기’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당시의 환경, 상황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한 사람이 경험한 어떤 사실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겪은 역사이며, 사실입니다. 특히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실을 표현하는 방식이 시대에 따라서 차이를 보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많은 부분은 당시의 신화적인 표현 양식을 사용하지만, 성경의 사건이 신화는 아닙니다. 성경의 사건을 표현하는 데 신화적인 양식을 이용했을 뿐입니다. 또한 성경을 읽다 보면 많은 부분이 단절되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거나 비슷한 환경 속에서 살았다면 이러한 표현이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는 많은 부분 구약 성경과 단절되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대, 문화적인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저자의 이야기를 듣는 당시의 청중들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구약 성경의 많은 글은 그 시대의 언어적인 습관이나 생활 풍속,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어 지금과 차이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고려해서 성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의 창조 설화를 읽을 때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여기서 이야기하는 의미를 파악해야 합니다. 또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르치려는 그 이야기의 목적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창조 설화가 과학적 진리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창조 설화에는 이스라엘의 오랜 역사적인 신앙 체험, 즉 하느님께 대한 체험이 농축되어 있고, 이 체험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 내려오다가 당시에 쓰이던 여러 문학 형태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을 담은 구약 성경
구약 성경은 특히 현세의 이야기가 많은데 우리 인간이 겪는 온갖 체험, 하느님과의 관계, 남녀 관계, 생로병사,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 나에게 빚보증을 서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좋은 부인은 어떻게 선택해야 하나? 등 구체적인 인간의 삶에 대한 지혜로운 해답이 구약 성경의 지혜문학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 저자들은 삶을 통해 얻은 교훈과 진리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공동체의 체험을 문자로 기록하여 후대에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구약 성경의 저자들은 이교적 관념이나 표상까지 잘 인용하며, 이교적 표상들을 빌어 하느님의 말씀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였습니다. 물론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의 다신교 사상은 배제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세 오경의 성경 저자들은 고대 근동 지방의 신화들을 하느님 신앙의 문학적 표현 양식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역사의 단계마다 당신의 말씀과 뜻을 전달하기 위해 지도자들과 예언자들을 파견했습니다. 맨 처음 성조들을 통해서 말씀하셨고 그 후에는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서 그다음에는 판관들, 왕들,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역사(행적)와 지도자나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고 생활 안에서 하느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의 말씀을 모두 다 전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한마디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인간은 그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보다 믿음을 가지고 찾고 구하고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책입니다. 시인이며 영성 신학자였던 고(故) 최민순 신부님**은 ‘주님 오늘의 나의 길에서’라는 시에서 믿음을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험한 산이 옮겨지도록 기도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 고갯길을 올라가도록 힘을 주소서.
주님 저희가 가는 길에서 부딪치는 돌이 없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넘어지게 하는 돌을 발판이 되어 가게 하소서.
주님 오늘에 걷는 길에서 평탄하고 넓은 그런 길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 벼랑길도 주님과 함께 걷게 하소서.”
** 최민순(요한, 1912~1975) 신부는 시인이며 학자, 영성가로 존경받고 있다. 1912년 10월 3일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출생하여 1935년에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가톨릭 대학의 신학부의 전신인 천주공교신학교 교수로 봉직하면서 수필과 시를 쓰고, 번역서를 냈다. 1953년 성신대학의 교수로 활동하면서 저술 활동을 했고 그의 공동 번역 성서의 시편 번역은 오늘날에도 비교할 수 없는 업적이 되었다. (출처: 대구역사문화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