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사제 이야기] 저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있었습니다

영성과 신심

[새 사제 이야기] 저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있었습니다

사제의 길을 더욱 뜨겁게 만든 ‘조건 없는 사랑’

2026. 08. 26
읽음 639

15

8

🌱 사랑은 얻어 내야 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부족하면 버려질까 두려워 더 잘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먼저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그 사랑을 깨달으며 부르심의 의미도 달라졌고, 이제는 그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랑에도 자격이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찬미 예수님! 저는 지난 17일에 사제품을 받은 이진우 베드로입니다. 교우분들이 주시는 과분한 사랑에 흠뻑 젖어 있는 새 사제로서 기쁨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던 과정, 그리고 사제로서 제 안에 뜨겁게 타오르는 열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압박을 받곤 합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비로소 대접받고 인정받는 사실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과거의 저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남들보다 뛰어난 성과를 내거나, 사제 지망생으로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만 하느님께도, 사람들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언제든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마음 한구석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사랑과 신앙이 생동감이라기보다는, 머리로만 이해되는 이론적인 지식이나 지켜야 할 의무에 가까웠습니다.

 


 

렉시오 디비나, 숨 막히던 시절 찾아온 숨구멍

 

그 완고하고 차가웠던 마음의 틈새로 하느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처음 스며들었던 것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중압감으로 초조함이 가득했던 수험생 시절, 교리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했던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 모임은 저에게 작은 숨구멍이 되었습니다. 매주 정해진 시간에 모여 복음 말씀을 천천히 읽고, 마음을 울리는 구절을 묵상하며, 각자의 삶과 연결되는 점들을 진솔하게 나누는 가운데 제 안에서 서서히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성경 텍스트를 넘어 살아 숨 쉬는 하느님의 위로를 느끼기도 하고, 곁에서 같은 고민을 나누는 친구들의 고백에 깊이 공감하며 큰 힘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성경 말씀 안에서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공동체와 마음을 나누었던 체험은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는 데 큰 용기가 되었습니다.

 


 

인생을 바꾼 하나의 말씀

 

그러나 신학교에 들어가서도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죄책감, 그리고 깊은 무력감이 올라와 길을 잃고 헤맸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묵상 중 한 구절의 복음 말씀이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그 순간, 눈물과 함께 거대한 영적 깨달음이 온몸을 감쌌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잘하고 완벽해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저의 모자란 모습 그대로를 하느님께서 먼저온전히 사랑해 주시며 저를 껴안고 계셨습니다. 죄를 지어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는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결코 당신의 손을 놓지 않으시고 저를 당신의 사랑 안으로 끊임없이 부르고 초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느님의 사랑은 화려한 장미꽃뿐만 아니라 들판의 이름 없는 작은 풀꽃에도 온 힘을 다해 쏟는 자비로운 사랑이었습니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시는 체험을 통해 지나온 모든 힘들었던 과정이 저를 무너뜨리려는 시련이 아니라, 오히려 저를 성장하게 하고 겸손하게 만드시려는 하느님의 은총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어디서나 선을 이끄시는 주님의 섭리를 곱씹다 보니, 제 안에서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열망이 일었습니다. 저와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괴롭히며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제가 거저 받은 이 과분한 사랑을 전하는 사제로서 제 평생을 온전히 투신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그렇게 타오른 사랑의 체험은 제가 사제의 길을 걸어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사제가 되어도 흔들립니다

 

그러나 사제가 된 후에도 사목 현장에서 문득문득 습관적인 강박이 고개를 들곤 합니다. 그래서 오랜 영적 갈증과 아픔이 곧바로 해소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전히 좋은 사제임을 무언가로 증명해 내야 할 것만 같고, 제 노력이 부족한 것만 같아 미안하고 자책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도 많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제가 무언가를 스스로 해내서 하느님의 사랑을 쟁취하려 했던 오만함과 조바심을 내려놓기로 다짐합니다. 저의 약함을 겸손히 인정하며 주님의 자비에 저를 온전히 맡기고 그저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데 힘쓰려 합니다. 그러기 위해 제 삶의 중심인 미사와 성사에 집중합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우리를 받아들이고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미사와 성사 안에서 가장 깊이 만나고 깨닫습니다. 저는 매일 제대 위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성사를 집전하며 그 신비롭고 과분한 사랑을 되새기려 합니다.

 


 

말씀에서 시작해 성사로 이어지는 소명

 

한편으로는 마음속 강박과 지치는 일상에서 미사와 성사에 온 마음을 쏟기가 얼마나 힘든지 또한 깊이 체감하곤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이 거룩한 성사의 은총 밖을 겉돌지 않고, 더 깊이 빠져들고 흠뻑 젖어 들게 하려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성경 말씀에 대한 깊은 체험이 저를 사제의 소명으로 이끌었듯이, 이러한 고민은 교우분들 역시 성경 말씀을 먼저 깊이 체험하고 맛봄으로써 미사와 성사에 더 온전히 참여하게 될 수 있고, 그 신비 안에 온 삶이 아름답게 젖어 들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일상 안에서 만나고 간직하는 성경 말씀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미사와 성사 안에서 하느님을 더 깊이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돕는 것, 그것이 바로 저라는 사람에게 맡기신 하나의 소명이 아닐까 합니다.

 

이 소명을 구체적인 사목 현장에서 실천하기 위해 청년들과 교사회를 대상으로 청년성서모임을 하거나 소공동체 성서모임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만나고 묵상하며, 그 체험을 공동체와 진솔하게 나누는 과정에서 힘을 얻는 이들을 보는 것이 저에게는 성화의 과정이 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불을 밝히는 일

 

얼마나 많은 교우분이 모였을까?

교우분들이 얼마나 만족할까?

 

과거의 저였다면 이러한 질문으로 저 자신을 평가하며 또 다른 강박에 시달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모든 활동은 제 능력을 과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저 교우분들이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더 가까이 느끼고 체험하도록 돕는 순수한 통로일 뿐임을 믿기에 그러한 유혹에 시달리지 않게 됩니다. 그저 교우분들이 하느님의 사랑에 눈뜨도록 돕는 그 모든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비할 데 없이 좋고 행복합니다.

 

교우분들이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나누는 데 저를 헌신하는 것, 바로 그것이 사제인 제 영혼에 가장 순수하고도 뜨거운 열기를 가져다줍니다. 특히 우리 교우분들이 삶의 무게와 상처 속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읽고 나누며, 그 안에서 영적으로 기쁘게 성장해 가는 모습을 곁에서 바라볼 때면 깊은 감사를 느낍니다.

 

삶이 너무 괴롭고 지쳐 때로는 하느님을 멀리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성경 말씀 안에서 다시 일어설 위로와 힘을 얻는 모습을 볼 때면 저 또한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그렇기에 저는 앞으로 어떤 사목지에 가고 어떤 소임을 맡게 되더라도, 교우분들과 함께 성경 말씀을 읽고 나누는 소공동체 성서모임을 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끝까지 함께 걷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이 넓은 세상 속에서 오직 단 한 명의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고 구원하시기 위해 부족한 저를 바로 이 자리에 부르셨을지도 모른다는 거룩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마음에 품습니다. 비록 저는 여전히 보잘것없는 들판의 작은 풀꽃 같은 존재이지만,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기억하며 저에게 맡기신 거룩한 부르심에 헌신으로 응답하고 싶습니다. 또한 교우분들이 성경 말씀과 성사 안에서 주님의 끈질기고 따뜻한 사랑을 발견할 때까지, 그 곁을 지키는 겸손한 동반자로 늘 함께 기도하며 걷고 싶습니다.

 


 

🙏 함께 기도해 주세요.

 

<사제의 첫 계>은 새 사제들의 첫 사목과 신앙의 여정을 함께 나누는 연재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전해 준 이진우 베드로 신부님이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 안에 머물며, 그 사랑을 많은 이에게 전하는 사제로 기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 함께 읽으면 더 좋은 아티클

 

 
 
Profile
인천교구 사제. 부평4동성당에서 보좌 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작은 꽃, 소화 데레사 성녀의 삶을 바라보며 하느님을 사랑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이 함께 본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