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특집④ 언젠가는 저도 ‘사람책’이 되고 싶습니다

가톨릭 예술

월간 특집④ 언젠가는 저도 ‘사람책’이 되고 싶습니다

책과 사람 사이에서 배운 사랑의 언어

2026. 0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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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품식 날 가슴에 품었던 말씀, 병상에서 원망했던 구절, 떠나는 날 받았던 한 아이의 편지까지. 때로는 위로가 되었고, 때로는 질문이 되었으며, 때로는 다시 살아갈 힘이 되었습니다.

 

20대에도, 40대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신부님. 언젠가는 자신도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되는 사람책으로 남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 책과 사람 사이, 한 사제가 평생 붙들고 살아온 문장들을 함께 따라가 봅시다.

 


 

26년째 붙들고 있는 한 구절

 

내가 그 사람입니다. 당신과 말하고 있는 내가.”

 

제 서품 성구는 요한 복음서 426절입니다. 원 성경을 직역하듯이 번역한 표현이라 지금의 성경 번역과는 조금 다릅니다(*현재 성경: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저는 신학교 시절에도 이 구절을 좋아했습니다. 축제 주제를 공모할 때도 이 말씀을 냈는데, 실제로 뽑힌 적도 있습니다. 빈 항아리를 들고 물을 길으러 나온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을 예수님께서 다독여 주시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이 구절을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 뒤로 몇 년 동안 고민했지만, 결국 서품받을 때도 여전히 같은 마음이어서 이 말씀을 서품 성구로 선택했습니다.

 

저는 2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 성경 구절 안에서 살아갑니다.

 

신부가 된 뒤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연민과 배려와 사랑으로 말을 건네고 싶었습니다. 어떤 순간들은 오히려 저를 구원해 주었고, 어떤 순간들은 제 마음의 불을 다른 이들과 나누어 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가장 밑바닥이었던 날, 다시 읽힌 말씀

 

지금 다시 서품 성구를 고를 수 있다면, 요한 복음서 2026절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여드레 뒤에

 

토마스 사도가 가장 힘들고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시간을 기억하게 만드는 구절입니다. 저는 제자들에게 그 시간이 있었기에 예수님의 부활이 더 간절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희망처럼 느껴졌거든요. 저에게 이 말씀은 죽음과 부활을 함께 배우게 해 준 구절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말씀이 위로였던 것은 아닙니다.

 

평안하냐?(마태 28,9)

 

한때는 이 구절이 너무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뇌경색이 왔고, 말을 잃어버린 채 6개월 정도 성모병원 요양사제관에 머물렀습니다. 저는 한순간도 평안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 말씀이 밉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일어나고 나니, 같은 구절이 저에게 힘을 주고 저를 붙들어 주더군요. 그 사실이 지금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요즘 제가 가장 자주 떠올리는 말씀은 루카 복음서 2232절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베드로 사도에게 하셨던 말씀이지요. 저는 요즘 이 말씀을 자주 떠올리며, 나는 지금 무엇 하러 이곳에 왔나?하는 질문을 계속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어떤 문장은 책에서, 어떤 문장은 사람에게서

 

제 삶을 바꾸어 놓은 문장은 성경 안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윌리엄 폴 영이 지은 《오두막》이라는 책의 한 문장도 오랫동안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다음 주말에 오두막에 있을 예정이니까 날 만나고 싶으면 찾아와요.

 

사실 그 오두막은 유괴된 딸의 마지막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입니다. 사랑이 멈춰 버린 죽음의 장소에 하느님께서 초대하시는 내용이었기에 더욱 깊이 다가왔습니다.

 

사목 현장에서도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문장이 있습니다.

 

얼마 전 사목했던 본당을 떠나면서 평소 아끼던 주일 학교 친구에게 소중한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중 한 부분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이렇게 멋진 분을 만나서 같이 밥도 먹고, 가끔 어리광도 피우고, 함께 웃고, 기도하고, 미사를 할 수 있어서 하느님께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도 그 말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 문장이 제가 무엇 하는 사람인가를 알려 주는 것 같거든요.

 


 

일보다는 사람에, 사람보다는 사랑함에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너를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나를 사랑하고, 일보다는 사람에, 사람보다는 사랑함에 집중하기를 바랍니다.”

 

이는 제 삶의 신호등 같은 말들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평생의 세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세상의 좋은 책들을 최대한 많이 읽어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이 멋진 세상을 천천히 돌아보는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사랑이 가득한 하느님의 사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20대에도, 30대에도, 40대에도, 그리고 50대 후반인 지금도 여전히 제 손에는 책이 있습니다. 그만큼 제 손을 거친 책들에,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 주신 분들께 빚을 많이 졌습니다.

 

앞으로도 책을 사는 데 아끼는 마음이 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 자신도 멋진 사람책이 되어 조그맣게 주위를 비추는 존재로 남았으면 합니다.

 

함께 나눌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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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서울대교구 대신학교에서 영성 지도를 맡고 있습니다. 큰 아픔을 겪은 뒤로는 해마다 한 번 이상 여행을 떠나며 삶의 기쁨을 새롭게 배우고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일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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