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한마디 건넬 용기

성경 이야기

사랑한다면, 한마디 건넬 용기

연중 제23주일│잘못을 외면하지 않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교회 공동체

2026. 09.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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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히 묵상해 봅시다.

 

  • 나는 누군가에게 잘못을 이야기할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나요?
  • 나는 다른 사람의 충고를 받을 때 어떤 모습인가요?
  • 우리 공동체가 서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곳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완벽한 사람들만 모인 곳일까요?

 

교회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받아 새롭게 태어나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기로 결심한 이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거룩한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 이상理想에 늘 미치지 못합니다. 교회 안에도 여전히 죄와 허물, 갈등과 상처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요.

 


 

못 본 척할 수 없는 사람

 

오늘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러한 현실 앞에서 예언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줍니다. 주님께서는 예언자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에제 33,7)으로 세우셨습니다. 파수꾼은 위험을 보고도 침묵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누군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데도 모르는 척한다면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죄인의 죽음을 바라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죄인이 회개하여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적하고 잘못을 일깨워 주는 일의 목적은 단죄가 아니라 회개이며,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뒤에서 한마디? 예수님께서는 먼저 만나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복음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형제의 잘못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마태 18,15)

 

우리는 종종 상대에게 직접 말하기보다 뒤에서 흉을 보거나 소문을 내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상처를 더 깊게 하고, 당사자를 더욱 완고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일대일의 만남을 요구하십니다. 그를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를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한 번 더, 돌아올 기회를

 

그래도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다시 한번 설득하라고 하십니다.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마태 18,16)

 

이것 역시 그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다시 올바른 길로 돌아설 기회를 한 번 더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에도 끝내 공동체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마지막으로 교회에 알리라고 하십니다.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마태 18,17)

 

더 이상 개인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고 다 괜찮은 건 아니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이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는다면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라고 하십니다.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마태 18,17)

 

이는 누군가를 영원히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때로는 일정한 거리를 둘 필요가 있음을 뜻합니다. 실제로 바오로 사도도 공동체 안에 방치된 죄가 공동체 전체를 병들게 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랑하기 때문에 때로는 분명한 경계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움이나 복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고 다시 공동체와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잘못한 이를 쉽게 포기하지 않고, 그가 다시 돌아오도록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무슨 말보다 어떤 마음

 

그런데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반드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끝까지 지고 살아야 할 빚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의 빚이라고 말합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로마 13,9)

 

이 말씀 안에 모든 계명이 요약됩니다.

 

형제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도,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는 일도 결국 사랑이 없으면 비난과 배제가 되고 맙니다. 반대로 참된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권고는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다시 세웁니다.

 


 

넘어뜨리는 공동체가 아니라, 일으켜 세우는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만 모인 곳이 아니라, 서로의 약함과 상처를 품고 함께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슬퍼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누군가가 잘못했을 때 손가락질하며 정죄하는 곳이 아니라, 그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잘못을 눈감아 주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랑은 방임이 아니라, 때로는 아프더라도 진실을 말하고 잘못된 길에서 돌아오도록 돕는 용기를 포함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출발점과 마지막 목적은 언제나 사랑이어야 합니다.

 


 

이번에는 나를 돌아볼 차례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형제의 잘못을 보았을 때 정말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고했는지, 아니면 내 분노와 불편함을 쏟아 내는 방식으로 비난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 누군가의 허물을 들었을 때 그것을 치유의 계기로 삼기보다 소문과 판단의 재료로 삼지는 않았는지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반대로 내가 잘못했을 때 다른 이의 충고를 겸손히 받아들이기보다 자존심과 고집으로 귀를 닫아 버린 적은 없었는지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모두 교회 안에서 서로에게 그런 형제, 그런 자매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군가를 넘어뜨리는 말보다 일으켜 세우는 말을, 단죄보다 회개와 구원을 바라는 마음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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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춘천교구 사제. 현재 교구장 비서 겸 사무국장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달리기를 좋아해 매일 아침 10km, 주말에는 30km정도를 달리며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합니다. 때로는 힘들지만, 그 고비를 넘어서면 ‘러너스 하이’라는 큰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죽을 것 같이 힘든 순간’에도 곧 기쁨이 찾아오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으며 오늘도 기쁘게 달리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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