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

영성과 신심

결국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

번아웃과 하느님의 침묵 속에서 깨달은 신앙의 신비

2026. 0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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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련의 한가운데에서는 이 고통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어떤 고통은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물러납니다.

십자가 위 예수님의 외침과 부활 앞에서 희망의 자리를 함께 찾아보세요.

 


 

고등학교 2학년 2학기가 되었을 때 저는 미래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예비 신학생 모임을 나가고는 있었지만, 처음에는 사제가 되고 싶다는 진지한 마음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즐거움이 더 컸던 듯합니다. 그래서 2학년을 마치면 예비 신학생 모임을 그만 나가야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습니다. 당시의 저는 판사가 되고 싶기도 했고, 외교관도, 문학 선생님도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제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전혀 없지는 않았기에, 하느님께 길을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아주 중요한 시기였지만, 저는 아침저녁으로 학교 경당에 들러 성체 조배를 하며 하느님께서 저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냐고 여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도해도 답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답답한 마음에 하느님께 사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사제가 되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제발 한마디만 해 달라고. 아니면 감실 문이 벌컥 열리든, 무엇이든 좋으니 작은 표징이라도 좀 보여 달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침묵, 혹은 하느님의 부재만이 느껴지는 그 답답함과 메마름 속에서 저는 점점 지쳐 갔습니다. 아무도 없는 경당에서 홀로 엎드려서 빌었다가, 침묵하시는 하느님께 짜증을 냈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기도하다가, 또 투정을 부리기 일쑤였습니다.

 


 

침묵 속에서 사라지는 시련

 

지금에 와서 그 시간이 시련의 날들이었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부끄럽지만, 당시의 저에게는 무척이나 괴로운 나날이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에 저의 미래를 두고 어떤 식으로든 하느님과 결판내고 싶은데, 그분은 계속해서 침묵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제 마음속에 답답함과 조급함이 부풀어 올라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요. 여전히 하느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저는 처음의 다짐과 달리 예비 신학생 모임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왜인지 그 이유를 잘 알 수 없지만 저의 마음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너는 예전부터 절대적인 진리를 찾고 싶어 했잖아? 만약 네가 속한 천주교에서 진리에 가장 가까운 길이 있다면, 그건 사제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토록 제가 듣고 싶었던 하느님의 대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왠지 모르게 제 마음속에 확신이 생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시련은 끝났습니다. 하느님의 대답도, 특별한 기적도 없이 말입니다. 결국 하느님의 답을 듣지 못했기에, 어쩌면 신학교에 간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이 아니라 제 생각이나 판단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 마음을 짓누르던 근심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바랐던 방법은 아니었지만, 명쾌한 답을 들은 것도 아니었지만, 시련은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시련은 때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지나간다

 

제가 독일 유학 시절에 겪은 시련이었던 번아웃 증후군 역시 그렇게 끝나 버렸습니다. 몇 달 동안 방에 틀어박혀 휴대 전화만 들여다보고 있었던 저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시체처럼 침대에 누워만 있던 저였는데,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정확히 언제, 어떤 이유로 번아웃이 사라졌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라졌는지 저는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제가 죽지는 않았나 살펴보며 저를 챙겨 주던 다른 한국 신부님들의 사랑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저를 위해 멀리 한국에서 기도해 주시던 신자분 덕택이었을 수도 있겠지요. 끝없이 무너져 가는 저를 바라보시던 하느님 아버지의 애타는 사랑과 자비 덕분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제가 다시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고, 다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시련이 정확히 언제 어떻게 찾아왔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도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때의 저는 죽을 만큼 괴로웠습니다. 처절할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지나간 일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그때를 돌아보며 미소 지을 수 있고, “그땐 그랬지.”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조차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시련이 끝나 버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겪은 두 체험을 통해서 저는 결국 언젠가는 시련도 고통도 지나간다.’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언제일지, 어떤 식일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시련은 결국 언젠가 끝나게 됩니다. 시련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는 무지가 우리를 더욱 지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 무지가 우리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일들은 결국 지나가는 일들입니다. 끝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련 속에서도 이 또한 결국 지나간다.’라고 믿는 것은, 그 시련을 조금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견딜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물론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말씀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희석하지 못하는 아픔도 분명 존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아픔도 있으니까요. 모든 시련과 고통이 언젠가 끝난다고 말씀드리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끝이 없는 시련도, 죽을 때까지 나를 뒤따르는 아픔도 분명 존재하니까요. 저의 개인적인 체험에 기대어 고통을 겪고 계신 모든 분의 아픔을 이해한다고 말씀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저, 끝없어 보이는 고통이 어느 순간 끝나기도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혹여나 제가 겪은 일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는 마음으로 저의 체험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고통의 의미를 묻는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건네는 희망

 

만약 끝없는 시련이 닥쳤을 때도 여전히 믿음과 희망을 품을 수 있겠느냐고, 저 자신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언젠가 끝나리라는 희망조차 없는 시련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생각의 끝자락에서 예수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던 사나이, 손과 발을 꿰뚫는 못에 박힌 채 십자가에 처절하게 매달린 사나이, 알몸으로 군중의 조롱을 감내하며 마지막 숨을 내뱉었던 사나이.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신학적으로는 예수님의 이 마지막 외침이 시편 22장의 첫 구절이며, 그 시편이 결국 하느님께 대한 찬미로 끝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저는 예수님의 이 외침이, 끝없는 시련을 마주하는 모든 인간의 존재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부르짖음과도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견딜 수 없이 큰 시련과 고통을 겪는 모든 사람은 결국 하느님 앞에서 고통의 의미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을 탄원의 형태로라도 던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결국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을 끝으로 마지막 숨을 내쉬셨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고, 끝없는 시련과 고통이 결국 승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알고 있지요,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보여 주신 그분께서 계시기에, 우리는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영원 앞에서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시련 앞에서 제가 이 희망을 간직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주님께서 주신 이 희망을 간직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시련 가운데 계신 모든 분의 손을 꼭 잡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주 미약하나마 저의 온기를 나누어 드리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이 희망을 우리 안에 심어 주시기를, 저희 함께 기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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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대전교구 사제. 독일에서 카리타스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생을 양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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