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특집 ① 성모님의 침묵은 우리에게 희망을 가르친다

신학 칼럼

월간 특집 ① 성모님의 침묵은 우리에게 희망을 가르친다

새해의 문턱, 성모님의 생애를 통해 되새기는 신앙의 태도

2026. 0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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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특집 ‘새로고침

 

2026년 새해 첫날이 밝았습니다!☀️

월간 특집 '새로고침'은 익숙해진 신앙의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고,

마음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작은 멈춤의 시간이에요. ⏸️

 

오늘은 주님께 온전히 응답하신 성모님의 선택을 따라가며 

한 해를 맞이하는 믿음의 자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모님의 삶을 따라, 올해의 첫걸음을 내디뎌 볼까요? 👣

 


 

모든 것이 낯설고 생경하기만 하던 유학 초기, 시간이 허락할 때면 당시 머물던 기숙사에서 그리 멀지 않았던 루브르 박물관을 찾고는 했습니다. 평소 미술에 소질도, 특별한 관심도 없던 저는 박물관 구석구석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어렸을 적 미술 교과서에서나 보았을 법한 그림이나 조각 등 유명 작품들을 발견하는 데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그림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르 게르친(Le Guerchin)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이탈리아의 화가 죠반니 프란체스코 바르비에리(Giovanni Francesco Barbieri, 1591-1666)의 <성모 마리아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성 베드로(Saint Pierre pleurant devant la Vierge)>라는 작품이었습니다. 

 

미처 그 제목을 몰랐더라도 그림이 전해 주는 분위기는 너무도 명확했습니다. 머리는 반쯤 벗겨진 나이 지긋한 모습으로 묘사된 베드로 사도가 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슬퍼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럽고 한탄스러워 공허한 자책과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얼핏 제목만 보면 그림의 중심인물은 베드로 사도처럼 여겨지지만, 제 시선은 줄곧 그 곁에 자리한 성모님께 머물렀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는 베드로와는 확연히 대조되는 모습으로, 극도의 슬픔과 눈물에 흰자위와 코끝이 지칠 대로 발갛게 된 성모님의 허망한 시선은 초점을 잃은 채 그림 구석의 어딘가를 향하고 있습니다.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얼굴은 단순히 슬픔이라는 말로 축약되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모든 것을 체념하고 감내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그 모습에 한참을 머물고 있노라니 성모님의 온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루카 2,35) 듯한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을, 성모님께서는 시메온을 만났던 그날 감히 예견하실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당신 삶의 모든 의미들을 헤아리실 수 있었을까요?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어머니 성모님의 신앙

 

하느님께 당신 전부를 봉헌하신 성모님께도 꿈 많은 어린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상황에 맞게 인간적인 상상을 덧붙여본다면, 멋진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꿈, 당신을 닮은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아가는 소박한 꿈을 그리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모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오직 예수님만을 위해 한평생을 살아가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응답하셨던 그날 이후, 성모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놀라운 체험을 하셨습니다. 서서히 일어나는 신체적 변화와 태동, 온갖 위험 속에서도 아기를 보호하시는 성령의 손길을 통해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계획이 이미 당신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달으셨으며, 그래서 매 순간 놀랍고 경이로운 사건들을 놓치지 않고 마음에 새기며 그 의미를 하나하나 소중히 당신 안에 담아내고 계셨나 봅니다. 

 

한편으로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온전히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하신 성모님의 증거 방식은 분주하고 외적인 말, 또는 어떤 몸짓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저 조용히 마음속에 간직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목동과 동방박사들의 방문을 받으셨을 때, 시메온의 예언을 들으셨을 때, 잃었던 예수님을 황망히 찾아 헤매다 성전에서 다시 찾으셨을 때에도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동안 감내하신 모든 사건을 관통하는 감춰진 신비의 실마리를 발견하려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담아내시고, 모든 것을 묵상하셨으며, 하느님 안에서 그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셨습니다. 

 

철저하게 아들 예수님을 위한 삶을 살기로 작정하신 성모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매를 맞으며, 피를 흘리면서 고통스럽게 십자가에 못 박히는 아들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비참하게 다 이루어진 후에도 아드님과 함께 걸어온 여정의 마지막 의미를 찾으려 하십니다.

 

거대한 박물관 어느 한편을 차지하던 그림을 발견한 그날 이후 저는 마음이 번잡할 때면 다시금 그곳을 찾아 슬픔과 희망이 교차하는 성모님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며, 비탄을 억누른 채 곱게 두 손을 포개어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셨던 어머니의 신앙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새해를 여는 신앙의 모습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1월 1일은 단순히 새해 첫날이 아닌, 주님 성탄 대축일로부터 시작된 8일 축제의 성대한 옥타브가 끝나는 날입니다. 이 8일간의 축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창조하신 첫날과 같은 날입니다. 교회는 선조들의 원죄 이후 인류가 간절히 기다려 온 구세주의 탄생을 기념하는 이 축제의 마지막 날을 그분의 어머니와 밀접하게 연관시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온 누리에 도래하였음을 기뻐하는 찬송의 옥타브 가장 마지막에 우리가 성모님을 기억하는 것은 참으로 합당합니다.

 

올 한 해는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우리 앞에 펼쳐질까요? 행복하고 기쁜 일들만큼 아파하고 슬픈 일들도 우리 삶 구석구석을 채워나갈 것입니다. 2,000년 전 성모님께서 간직하셨던 하느님을 향한 희망이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도 소중히 간직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실의 어려움이 나를 포기하게 만들고 힘겹게 하더라도, 태중의 아들을 품던 순간부터 매일을 희망으로 살아 내신 성모님의 믿음은 우리가 닮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모범이 되어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보이신 곰곰이 생각에 잠기신 모습은 가장 성숙한 신앙의 표현이자 시련의 어려움을 겪은 후에 찾아오는 믿음의 결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어머니에게서 이와 같은 모습을 배웁니다.

 

예수님의 성탄은 화려하고, 요란하며, 시끌벅적한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조용하고, 경건하며, 묵묵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아드님께서 현존하시는 방식과 동일하게 말없이 아드님 곁에 함께하셨습니다. 당신의 피조물을 향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극명하게 드러난 이 영광의 시기에, 우리도 하느님의 사랑을 재발견하고 그 사랑의 의미를 음미했으면 합니다. 성모님께서 침묵 중에 하느님의 영광을 헤아리셨듯이, 우리 역시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침묵 속에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모님의 전구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보잘것없음이 우리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그분의 가난이 우리의 화려함을 뒤엎으며, 그분의 부드러움이 우리의 무감각함을 일깨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새해에는 세상 모든 이에게 내리는 그분의 사랑을 더 많은 이가 깨달아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깃들기를 청해 봅니다. 힘 있고 많은 것을 가진 이들만이 잘 사는 이기적인 가짜 평화가 아니라, 선한 이와 가난한 이가 함께 평화로울 수 있는 하느님의 진짜 평화, 그런 평화가 많은 이들에게 내려지기를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함께 두 손을 포개어 청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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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인천교구 사제.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그들과의 일상에서 저의 학생 시절을 반추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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