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깃처럼 가볍게

영성과 신심

흰 깃처럼 가볍게

어쩌면 최선을 다해 사랑한 자가 잃는 건 아무것도 없을지도

2024.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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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물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쥐에 대한 거부감도 없어서 팔뚝만 한 회색 쥐가 돌아다녀 친구들이 놀라던 때에도 나는 그것이 생각보다 빠르고 통통하다는 데 푹 빠져 있곤 했다. 어려서는 학교 앞에서 산 병아리를 애지중지 길러 닭으로 성장시킨 다음 안고 다녔다. 작은 병아리는 따뜻한 곳을 찾아 내 품, 이상하게도 주로 겨드랑이 같은 데를 파고들었고 나는 방 안에서 걔를 꼭 안고 잤다. 흰 깃털이 아름다운 닭이었다.

 

돌아보면 내가 종교를 갖게 된 데에는 반려견 장군이를 떠나보낸 일이 계기였을 수 있다. 시추종 장군이는 여섯 살 때 유전병으로 시력을 잃고 열여덟 살까지 씩씩하게 살다가 하느님 나라로 갔다. 나의 동생이자 친구이자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였다. 며칠 전 한 번역가가 강아지가 떠나고 어떠셨어요?” 하고 물었다. 네 살 강아지를 기른다는 그는 조금 긴장되어 보였다. 나는 아직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하다가 그래도 그 일로 좋아진 점도 있다고 덧붙였다뭔데요?” 죽는 게 별로 두렵지 않아졌어요.” 우리는 잠깐 같이 웃었다. 그도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조금은 덜 걱정하게 되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상실을 껴안는다. 적어도 물리적으로는 그렇다. 영원한 것은 없어서 무엇이든 언젠가는 만질 수 없어진다. 무심히 장군이를 쓰다듬으려다가 공중에서 헛손질하고 마는 것, 그것이 내가 오랫동안 한 사랑의 결과다.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닐까? 나는 삶을 그리는 연필 선이 더 이어져야 한다고 느꼈다. 아니, ‘느꼈다를 넘는 아주 강한 간절함이었다

떠나기 전 장군이 눈은 너무나 맑고 무게는 가벼웠으며 이따금 자기 입술을 핥는 동작조차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처럼 고요했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격렬한 분리가 아니라 선득할 정도의 정적인 이행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곧 떠날 강아지에게서는 낯설고 생경한 어떤 위엄이 느껴졌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로 가는 존재들이 띠는 고유의 빛이었을까. 인간 세상에서 보면 죽음의 빛이자 그 너머에서 보면 살아남의 빛.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죽음이 덜 두려운 지금의 내가 좋으니까.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믿는 거예요?”

수녀님과의 첫 대화에서 나는 수녀님이 어떻게 수녀원에 입교하셨는지를 들었다. 십 대의 어린 나이였는데, 수녀원에 계신 분과 손 편지를 나누면서 자신의 소명을 깨달았다고 하셨다. 그 과정을 상상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희망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늘 나를 기분 좋게 만드니까. 그 뒤 이어진 대화 중에 수녀님은 그렇게 해서 이렇게 오랫동안 하느님을 모시고 있어요. 죽어서 다음 생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하며 웃으셨다. 어떤 회의나 의문이 담긴 말은 물론 아니었다. 그저 그 당시 비신자였던 내가 부담스러워하지 않게 배려하는 화법에 가까웠을 뿐이다.

 

성당에 나간다고 하자 주위 여기저기서 사실 나도 세례받았어, 내 세례명은 이거야, 나 주일학교 교사 출신이야, 하는 고백이 줄줄이 이어졌다. 내 주위에 그리스도교 신자가 꽤 많았구나 싶어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몇 달간 그런 얘기를 듣던 나는 어느 날 소리쳤다

아니 근데 다녔다는 사람은 있는데 다니는 사람은 왜 한 명도 없는 거야?” 

새로 시작하는 일에 우선적으로 집중하는 성격상 나는 그런 냉담자 친구들을 회유하기 위해 애썼다. 그 어려운 세례를 받았으면서 왜 안 나가, 엄마랑 같이 다니면 좋지 않아, 주일 저녁에도 미사가 있으니까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건 문제가 안 되잖아.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짓던 복잡한 표정을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다. 성당을 나가지 않는 이들의 마음에는 교회에서 겪은 인간관계의 문제가 있다는 걸.

 

언니, 정말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믿는 거예요?” 

소설가들이 모여 있는 어느 자리에서 후배가 물었다. 예비자 교리를 기다리던 때였고 새 세상을 만난 초심자 특유의 확신과 기쁨이 넘치던 시절이었다있는데, 우린 다 못 가.”  나는 딱 잘라 말했다왜요?” 

나는 오상의 비오 신부님* 책에서 읽은 어느 사제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는 미사에 늦거나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등의 실수로 연옥에 가 있었다. 나는 평생 하느님을 섬기며 일한 사제도 연옥에 가는 판에 누가 천국에 갈 수 있겠느냐며 나름의 의견을 피력했다.

더구나 우리는 소설가잖아. 천국은 영 가망이 없지.” 

나를 포함해 소설가들은 마음의 지옥을 품고 사는 이들이다. 스스로 만들기도 하지만 세상이 밀려와 담긴 지옥, 폭력을 비롯한 인간의 수많은 죄와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욕망, 그로 인한 냉소와 자조, 무력감, 불신, 허무, 하지만 그런 존재들이 보여 주는 포기할 수 없는 영혼의 빛. 겉으로 보면 조용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만 소설가들은 늘 그런 인간의 마음들을 겪어내고있다. 마치 무대에 불려 올려가 있는 배우처럼, ‘인간이기에 가능한 모든 드라마를 글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위험한 메소드연기는 매우 자주 우리의 실제 삶이 되기도 한다.

* 이탈리아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로 1918년 예수님의 성흔을 받았으며, 2002년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갑자기 밀려온 종교의 세계

예비 신자 교리를 받기 전의 나를 떠올리면 마치 유년 시절처럼 아득한 기분을 느낀다. 잘 모르고 떠든 것에 대해 부끄러워지기도 하지만 그때만 할 수 있었던 말들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그때 성경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문학적 비유로 읽어야 한다는 집사람과 싸우기도 했다. 그것이 픽션”, “가공같은 인간의 일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신자는 아니지만 꽤 오래전부터 관련된 책들을 읽어 온 터라(그는 문학평론가다) 그는 내 반응에 당황했다

그건 가톨릭에서도 이미 하는 얘기야.”

그런 소리 하지 마, 나는 하느님을 느껴. 내 어깨를 실제로 감싸신다고! 정확히 여기, 왼쪽 어깨!”

그때의 내 마음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후배들 앞에서는 이미 확신이 선 것처럼 의연하고 자연스러운 척했지만, 갑자기 밀려온 종교의 세계에 사실 혼란을 겪고 있었는지도. 세속의 중력에서 빠르게 빠져나오고 싶다는 욕심이 마음의 급격한 비탈을 만들어 내고 있었을 것이다.

 

정식 예비 신자도 그렇다고 비신자도 아니던 시절, 성당에 군종 신부님이 오셨다. 초코파이를 위해 주일마다 종교 시설에 나갔다는 선배들의 회고담이 강론 중에 확인되었고, 군에서는 빠르면 한 달 정도면 세례를 받는다는 말에(예비 신자 교리 기간에 민감해 있던 때라) 귀가 솔깃해지기도 했다. 나는 언니에게 나중에 조카가 입대하면 꼭 세례를 받으라고 당부했다. 사회에 나와 받으려면 힘드니까. 그때 나는 세례를 무슨 일종의 스펙처럼 생각한 것 아닐까. 군종 신부님은 마지막에 군 사목 활동을 위한 정기 기부를 요청했고 나도 신청서를 썼다. 그리고 며칠 뒤 전화가 왔다. 신청자란에 세례명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 세례를 받기 전이라고, 하지만 성당에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 그러시군요.” 

그분은 무언가를 생각하듯 천천히 말씀하셨고 내 통장에서는 기부금이 빠져나가지 않았다. 그 무렵에는 의아하고 당혹스러웠지만 지금은 그 일이 꽤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일종의 배려로.

 

하느님께서 넓혀 주신 내 삶의 퍼즐 판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 미사 참석에 기쁨을 더해 준 건 성당 마당의 앵무새장이었다. 앵무새장을 본 것도, 주인을 거느린앵무새와 만난 것도 처음이었다. 첫 만남 때 나는 조금 거리를 두고 앵무새를 지켜보았다. ‘어이라는 말을 자주 해 이름이 어이였다. 그러고 돌아서는데 연세가 있는 교우 한 분이 한탄하듯 말씀하셨다.

오래 서 있기에 기도하는 줄 알았는데, 앵무새를 보고 있었구먼.”

앵무새장 옆에 성모자상이 있고, 일단 성당에 오면 신자들이 그 앞에서 기도와 인사를 드린다는 사실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한마디 듣고 나서는 인사를 하고 앵무새장을 구경했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더니 내가 또 다른 반려동물을 들인 줄 알고 팔로워들이 축하를 건네기도 했다. 그때는 세례성사를 무사히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던 터라 성당 앵무새라고 해명도 못했다. 다만 성당에 동물이 있는 것이 무엇보다 큰 환대처럼 느껴졌다. 그 앵무새의 주인은 신부님이었고 얼마 뒤에는 냥줍을 한 신부님이 집사 찾는 공고를 내기도 했다. 직접 홍보도 하셨다.

이 고양이를 임보해 보니 보통 고양이가 아닙니다. 울 때 아메에엔하고 울어요.” 

나는 미사가 끝난 뒤에도 그 말을 떠올리며 혼자 웃었고 그 신심 가득한 고양이가 좋은 집사를 만났으면 싶었다. 정말 누군가가 들였는지 공고는 내려갔다.

 

이렇듯 성당에는 예상치 못한 많은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종교 생활이 내가 필요로 하는 몇 개의 퍼즐을 맞추어 주리라 막연히 기대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끌어와 내 삶의 퍼즐 판을 넓혀 주셨다. 교회는 다가감의 속도를 조절했고 때론 물리쳐 나를 생각하게 했다. 혼란을 겪게 하고 갈등하게 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51)라는 구절처럼.

교회는 새 신자가 자기 기준이나 의심 없이 입문하는 것을 오히려 경계했다. 《성경》은 하느님 말씀이지만 인간의 기록이기에 다른 문헌들이 그렇듯 문학적으로, 사료적으로 해석되고 연구될 수 있었다. 강론 시간에 신부님께 직접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집사람과 오해를 풀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고 우리의 믿음이 해를 입는 것이 아니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으로 계시지만 말씀이 하느님인 것은 아니니까. 적어도 내 이해로는.

 

새장 곁으로 다가가면 어이는 흰 날개를 퍼덕여 나를 반기고 몸을 틀어 살갑게 인사한다. 손가락을 넣으면 다가와 자기 몸을 쓰다듬을 수 있게 허락한다. 그렇게 따뜻한 어깻죽지와 목덜미를 더듬다 보면 어느덧 내가 기억하는 또 다른 작은 몸들이 떠오른다. 눈을 감아도 눈동자의 검은빛이 다 가려지지 않아 눈꺼풀이 푸르던 병아리나, 소설을 쓰는 내 발치를 지키다 지루해지면 무릎으로 올라왔던 내 작은 개. 마음이 흔들리면 옆으로 시선을 옮겨 어린 예수님의 손을 잡고 있는 마리아님을 바라본다.

 

어이는 배고프지 않으면서도 견과류를 부리에 물고 등으로 옮겨 후드득 떨어뜨리는 이상한 장난을 좋아한다. 이제 나는 그런 어이를 나무라기도 한다. 먹을 걸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어이는 들은 척도 않고 같은 장난을 하며 나를 천진하게 바라본다. 오래전 나의 동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랑 뒤에 상실만이 남는다는 건 나의 터무니없는 비관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최선을 다해 사랑한 자가 잃는 건 아무것도 없을지도.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슬픔은 묽어지고 흰 깃처럼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는 여전히 죽음이 두렵지 않아진다.

 

Profile
2009년 <한국일보>로 등단해 《너무 한낮의 연애》(2016), 《경애의 마음》(2018), 《대온실 수리 보고서》(2024) 등의 소설과 《식물적 낙관》 등의 산문집을 냈습니다. 작고 단순하고 환해지기 위해 분투 중이며, 밤마다 가톨릭 책을 읽다가 잠에 들어 가족들에게 ‘재야 신학자’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60여 종의 식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식집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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