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많은 일이 우연히 시작되었다. 살면서 나 자신이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잘 모른 채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소설가는 어려서부터 손꼽아 기다려 오던 지점이니까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고 하지만, 내가 천주교 신자가 되다니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대모님이 되었다.
“나는 내가 대모님이 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친구 J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면 말문이 조금 막힌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곁에 있는 친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추억이 있다. 너무 많아서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함께 흘려보낸 그 숱한 날들. 그 J가 남편과 함께 세례를 받은 것이다.
J의 그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겨울에 있을 세례식을 준비해 왔다.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싱가포르에 갔을 때는 성당 옆 성물 가게에서 축하 카드를 샀다. 상점에서는 첫영성체, 첫 세례, 유아세례 등 마음을 전할 순간순간들을 위한 기념 카드를 팔고 있었다. 아직 교리 공부 중인 J가 무사히 세례를 마치면 여기에 축하의 말을 적어야지 생각했다. 그날이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리스도인들끼리 하는 농담 중 하나는 “천주교는 교리를 확장할 야심이 없는 것 같아!”다. 공간으로 들어온다고 바로 환영받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절차가 있고 때론 그 절차가 허들로 작동한다. 하지만 형식이 곧 내용을 뜻하기도 하여서 어느덧 나도 그 과정의 필요를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내 마음을 형식으로 드러낼 기회라는 것을.
그런데 어느 날 J가 대모님이 되어 달라고 했다. 본당에서 대모님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당연히 하겠다고 나섰다. 대모, 대부는 새로운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 뒤로 걸어갈 때까지 동행하는 사람이다. 대모님께 배운 것이 있기에, 나는 내가 대모님이 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그럼 나도 겨울에 대모님 김장 김치 먹을 수 있겠네!”
매 겨울마다 김장 김치를 선물받는다는 것을 아는 J가 농담했다.
“나는 사 줄게.”
한 번도 김치를 담가본 적 없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깨끗하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
세례 의식 가운데 ‘흰옷 입음 예식’이라는 것이 있다. 깨끗하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로 미사포 같은 흰 천을 두르는 의식이다. 내가 대모님께 선물받은 것처럼 나 역시 친구를 위해 새 미사포를 열심히 찾았다. 친구에게 가장 어울리는 미사포를 찾는 데는 이틀이 꼬박 걸렸다. 어떤 건 미사포가 너무 화려해서, 어떤 건 꽃무늬가 너무 작아서, 어딘가 내 친구와는 어울리지 않아서 장바구니에 담겼다가 삭제되기를 반복했다. 같이 세례를 받는 친구의 남편에게는 탁상 십자고상을 준비했다.
모두 다 세례식 날 대모님께 내가 받은 것들이었다. 그걸 고스란히 되돌려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괜히 내가 기특했다. 그리고 동시에 대모님께 감사했다. 대학생 시절 강변가요제에 출전도 하신 대모님은 여러 면에서 존경하게 된다. 한발 물러서서 다가오는 세심함, 그러면서도 갖춰져 있는 통찰력,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간파하시는 넓은 마음까지. 친구는 세례식 날을 알려 주며 “혹시 너 바쁘면 얘기해.”라고 나를 배려했다.
“이거보다 중요한 일이 뭐가 있어?”
내 마음은 정말 그랬다. 그런데 막상 세례식 날이 되었을 때 나는 조금 늦게 집에서 출발했다. 세례 연습이 있는 시간까지 딱 맞추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연습일 뿐이니까 친구는 괜찮다고 했지만 입이 바싹바싹 말랐고, 전철역에서 내리자마자 머리가 산발이 되도록 달렸다. 왜 나는 손꼽아 기다린 날에는 오히려 지각을 할까. 그 중요함이 오히려 허들이 되는 걸까. 12월의 그날은 바람이 좀 차게 불었다. 목동 어딘가를 달려가는 내게는 그 칼칼한 추위도 문제가 아니었다.
마침 뛰어들어 갔을 때 대모님과 세례자가 함께 들어가는 의식이 시작 중이었다. 나는 가방을 냅다 던지고 바로 행렬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 자연스럽게 원래 그 줄에 서 있었던 것처럼 친구의 어깨를 잡았다. 신부님이 “스텔라” 하고 부르며 도유 연습을 진행하셨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리디아가 세례명이라고 들어서 미사포 주머니에 그렇게 이름을 새겨 왔는데 스텔라라니?
“이모 하나도 안 늦었다. 딱 그때 들어왔어!”
친구의 딸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어린이 연이가 놀라워했다. 우리는 복도로 나가 세례식이 시작되기까지 잠시 쉬었다. 나는 우리 성당에 비하면 정말 큰 성당이라는 둥, 늦어서 정말 미안하다는 둥, 수선을 떨다가 물었다.
“근데 왜 스텔라고 부르시지?”
“아 맞다, 나 스텔라라고 세례명 바꿨어.”
“뭐?”
우리는 미사포 주머니를 내려다보면서 어차피 필기체로 자수되었으니까 괜찮다고 서로 위로했다. 스텔라는 사실 내가 처음 친구에게 권한 이름이었다. 바다의 별이라는 뜻으로 마리아님을 부르는 또 다른 칭호.
그렇게 스텔라의 대모가 되었다
그런데 세례 시작 몇 분 전, 정작 내 미사포가 없었다. 분명히 가방에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없이 오느라 빼먹었나? 나는 벌떡 일어나 아래층 성물 가게로 달려갔다.
그때 어느 한 장면이 떠올랐다. J의 결혼식 날이었다. 십여 년 전 돌아가신 J의 엄마는 당연히 나를 잘 아셨다. 우리가 10대를 지나 20대를 건너 계속 단짝이라는 것을. 당연히 나는 친구 결혼식에 들러리를 섰고 내내 종종 쫓아다녔다. 그러다 J의 엄마가 들고 계신 핸드백의 나무 손잡이 부분이 부서진 걸 발견했다.
“어머님, 이거 떨어졌어요.”
J의 엄마는 잠시 당황하다가 한 손으로 그 손잡이와 가방을 움켜잡으셨다. 그렇게 하니 원래 클러치백이었던 것처럼 보였고 나는 그 임기응변에 감탄했었다.
성물 가게로 내려간 나는 와중에도 예쁜 것을 고민하다가 하나를 사 가지고 와서 머리에 썼다. 오래도록 곁에 있어 준 친구에게 사실 나는 마음으로 미안한 일이 있었다. 엄마가 아프셔서 마음고생할 때 나도 하는 일이 너무 안 풀려서 제대로 도와주지 못한 점이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슬픔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같이 더 울어 줄 걸, 같이 더 화내줄 것, 긴긴 이야기 다 들어줄 걸 하는 후회가 들 만큼. 친구는 엄마를 잃는다는 과정을 사실상 혼자서 견뎌 낸 셈 아닐까.
친구의 기억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왠지 그 외로운 길에 나는 친구 곁에 없었다는 자책감을 항상 품고 있었다. 내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랬어, 하고 혼자 미안해하면서 그때로 돌아간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부질없는 감정에 빠지기도 했다.
친구가 엄마가 된다는 건 처음 친구가 대모님이 되어 달라고 했을 때처럼, 이상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내가 느꼈던 그 미안함을 되갚기 위해 하느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 아닐까. 그렇게 나는 스텔라의 대모가 되었다. 세례 의식이 끝나고 우리는 성당 마당으로 나와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구유 안을, 함께 들여다보았다.
* 김금희의 <작은 은총들>을 마칩니다. 소중한 이야기를 나눠 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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